여기 어떤 대학의 생명과학 연구실이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이 각자 분주하게 실험을 하고 있군요. 한 학생은 영하 70도의 냉동고에서 샘플을 꺼내와 자리에 앉더니, 수술용 라텍스 장갑과 마스크까지 꼼꼼하게 착용합니다. 그리고 온도에 민감한 샘플이 조금이라도 상할까 봐 세심하게 실험을 진행하고 있네요. 반면 다른 학생은 상온에 방치되어 있던 샘플을 비닐장갑만 낀 손으로 자연스럽게 집어듭니다. 특별히 긴장하지도 않고, 훨씬 편한 자세로 실험을 이어갑니다. 두 학생들에게 지금 실험에 사용하는 샘플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같은 대답을 합니다. “핵산 샘플이에요.” 하지만 막상 어떤 핵산인지 물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제 샘플은 RNA이고, 저 친구 샘플은 DNA입니다.” RNA와 DNA는 모두 인산, 염기, 그리고 5탄당으로 이루어진 뉴클레오타이드가 사슬처럼 길게 연결된 핵산입니다. 구성 성분만 보면 거의 비슷해 보이지만, 왜 이렇게 다루는 방식은 많이 다를까요? 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진짜 요인은 무엇일까요? RNA와 DNA의 화학적 성질 차이는 5탄당의 구조에서 시작됩니다. RNA는 ‘라이보스(ribose)’를, DNA는 ‘디옥시라이보스(Deoxyribose)’를 사용하죠. 디옥시라이보스는 라이보스의 2번 탄소에 붙어 있는 하이드록실기($−OH$)가 수소($-H$)로 바뀐 형태입니다. 말 그대로 ‘디옥시(deoxy)’, 즉 산소 원자가 하나 빠진 당입니다. 이 산소 원자 하나의 차이가 RNA와 DNA의 구조적, 기능적 차이를 극적으로 바꿔놓았습니다. RNA의 라이보스는 2번탄소에 하이드록시기를 가지고 있어 완전히 다른 성질을 갖습니다. 이 2번 탄소에 붙어 있는 하이드록시기의 산소는 전자쌍을 가지고 있어 친핵성을 띱니다. 친핵성이 있다는 것은 전자가 부족한 결합 부위를 향해 친핵공격을 할 수 있다는 뜻이죠. 바로 이 산소가 뉴클레오타이드와 뉴클레오타이드를 연결하는 포스포디에스터 결합의 인(P)을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RNA 가닥은 뉴클레오타이드 사이의 결합이 끊어지기 쉬워 화학적으로 더 반응성이 높고, 수용액에서 쉽게 가수분해됩니다. 온도나 pH 변화에도 쉽게 영향을 받지요. 하지만 DNA의 디옥시라이보스는 이 하이드록시기가 수소($-H$)로 대체되어 있어 친핵공격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RNA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이 안정성 덕분에 DNA는 유전 정보를 오래도록 안전하게 저장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러한 구조적 차이는 생명체의 진화 과정을 통해 서로 다른 기능적 분업으로 이어졌습니다. DNA는 높은 안정성을 바탕으로 유전 정보를 장기간 보존하는 ‘설계도 저장고’가 되었고, RNA는 이 정보를 ‘실행하는 매개체’로 기능이 다양하게 분화되었습니다. 번역 과정의 주체가 되는 라이보솜 RNA(rRNA),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전령 RNA(mRNA), 아미노산을 운반하는 운반 RNA(tRNA) 등 여러 형태로 세포내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RNA가 단일 가닥 구조를 기반으로 화학적으로 더 유연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DNA로부터 RNA를 거쳐 단백질로 정보가 전달된다는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에 등장하는 RNA들뿐 아니라, 최근에는 마이크로 RNA(miRNA), 긴 비번역 RNA(lncRNA)처럼 유전자 발현을 정교하게 조절하는 RNA들의 중요성도 계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RNA는 불안정하지만 구조적으로 유연하다는 특성을 바탕으로, 생명체 내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분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RNA와 DNA의 단 하나의 산소 원자 차이는 생명 진화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습니다. 지구에 가장 처음 등장한 생명체가 가지고 있었던 정보 분자는 단백질도, DNA도 아닌 RNA였습니다. 아주 오래전, 생명체가 처음 태동하던 시기에는 RNA가 유전 정보 저장 기능과 효소로서의 촉매 기능을 담당하며, 북치고 장구치고 혼자 모든 역할을 다하던 시대가 있었죠. 이 시기의 생명체들을 ‘RNA 세계(RNA world)의 생명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생명체가 점점 복잡해지고, 유전 정보의 양이 늘어나면서 수용액에서 쉽게 가수분해되는 RNA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졌습니다. 더 안정적으로 정보를 저장할 분자의 등장이 필요해진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분자를 처음부터 만드는 대신, 생명체는 기존의 유전물질인 RNA를 약간 변형하고 개량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등장한 분자가 바로 DNA인거죠. DNA는 RNA와 비교해 두 가지 중요한 변화를 거쳤습니다. 첫 번째는 라이보스 대신 디옥시라이보스로 바뀌면서 이번 탄소의 하이드록시기가 사라졌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염기를 유라실에서 타이민으로 바꾼 점입니다. 특히 유라실 대신 타이민을 사용하게 된 변화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사이토신(C)은 생체 내에서 종종 산화적 탈아민화 반응에 의해 유라실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DNA가 여전히 유라실을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면, DNA에 존재하는 유라실이 원래부터 유전자에 있던 것인지, 혹은 손상된 사이토신에서 변형된 것인지 구분할 방법이 없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타이민은 메틸기($−CH_3$)가 하나 더 붙어 있어 DNA 복구 효소가 손상된 염기와 원래 염기를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 변화는 DNA가 더 정확하고 안정적인 유전물질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RNA에서 출발한 분자적 진화는 결국 더 안정적인 DNA로 변신하였고, 오늘날 일부 바이러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RNA 대신 D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도 해볼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 DNA가 더 안정적인 물질로 진화할 수도 있을까요?” 이에 ‘RNA가 불안정해진 이유는 $2’-OH$ 때문이니, DNA의 3번 탄소의 하이드록시기($3’-OH$)를 제거하면 더 안정적인 분자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OH$는 뉴클레오타이드가 서로 연결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자리입니다. 이 부분이 사라지는 순간, 그 분자는 더 이상 뉴클레오타이드의 중합(polymerization) 자체를 할 수 없고, 유전물질로 기능할 수도 없습니다. 즉, 현재 DNA는 이미 안정성과 기능성에 있어서 우주안에서 가장 적합화 된 분자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저 먼 우주에 존재하는 외계 생명체는 어떤 분자를 유전물질로 사용할까요? 그것도 혹시 DNA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