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흥미로운 책 한 권이 낙찰됐습니다. 무려 370만 달러(약 48억 원)에 팔린 이 책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과학책이 됐습니다. 바로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이 쓴 ‘프린키피아(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 1687)’의 초판입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이 책을 '인류가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위대한 지적 도약'이라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뉴턴이 이 책을 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핼리 혜성으로 유명한 에드먼드 핼리(Edmond Halley, 1656~1742)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6, 17세기 유럽에선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 일어났습니다. 르네상스 운동으로 인한 사회 변화는 과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죠. 우선 과학적 지식을 얻는 방법에 혁신이 일어났습니다. 대표적으로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의 ‘실험적 방법’과 ‘귀납적 방법’, 프랑스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의 ‘가설-연역법’이 생겨났죠. 이로 인해 2천여 년 동안 지속됐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E)의 자연 체계를 대체할 만한 체계적인 과학이 탄생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과학의 내용이나 실행 방식에서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러한 과학 혁명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 1687년 뉴턴이 출간한 ‘프린키피아’입니다. 1684년 8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연구를 하고 있던 뉴턴에게 누군가 찾아왔습니다. 천문학자 핼리였습니다. 왕립학회의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 1632~1723)이 낸 문제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찾아온 것이었죠. 렌은 로버트 훅(Robert Hooke, 1635~1703)과 핼리에게 상금을 걸고 행성 궤도 모양에 대한 문제를 냈습니다. 이 문제는 당시 과학자들이 풀지 못한 난제 중 하나였습니다. 17세기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 1571~1630)는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을 통해 행성이 원운동이 아닌 타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이는 튀코 브라헤(Tycho Brahe, 1546~1601)가 평생 동안 천체를 관측해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얻어낸 결과였습니다. 따라서 이 법칙은 관측 자료를 통해 행성 궤도의 모양을 유추했을 뿐, 왜 행성의 궤도가 타원인지에 대한 답을 주진 못했습니다. 핼리는 뉴턴에게 태양으로 향하는 인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면, 행성 궤도는 어떤 모양이 되는지 질문했습니다. 뉴턴은 타원형이라고 대답했습니다. 핼리는 문제를 바로 푼 뉴턴에게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습니다. 뉴턴은 예전에 이미 증명한 적이 있다며, 나중에 찾아서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몇 개월 후 뉴턴은 풀이가 담긴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를 본 핼리는 다시 뉴턴에게 찾아가 이 내용을 책으로 출판하라고 격려했습니다. 이후 뉴턴은 행성 궤도에 대한 논문을 작성했고, 1684년 12월 핼리를 통해 왕립학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논문이 바로 ‘물체의 궤도 운동에 관하여(De motu corporum in gyrum)’입니다. 이 논문에서 뉴턴은 타원 궤도에서 구심력은 궤도상의 물체와 초점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는 렌, 훅, 핼리를 비롯해 당시의 과학자들이 알고 싶어 했던 문제의 해답입니다. 뉴턴은 이 논문의 내용을 확장해 세 권으로 구성된 ‘프린키피아’를 쓰게 됩니다. 핼리는 뉴턴을 계속 격려했고, 출판에 필요한 비용도 마련해주었습니다. 왕립학회의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는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지원했다고 합니다. 뉴턴은 ‘프린키피아’ 1권에서 관성의 법칙, 가속도의 법칙,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제시했습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물리책에서 배우는 뉴턴의 운동 법칙의 원형입니다. 또한 만유인력이라는 단일한 힘을 통해 천상계와 지상계의 운동을 같은 운동 법칙으로 설명했습니다.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운동과 달이 지구를 공전하는 운동이 같은 원리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냈죠. 뉴턴이 만든 과학 체계는 과학에 대한 생각과 18세기 유럽 사상을 바꿨습니다.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것을 넘어 합리적이고 경험적인 면을 강조하는 계몽주의가 발현되는 계기가 됐죠. 또한 뉴턴역학으로 인해 결정론적 세계관이 펼쳐졌습니다. 이후 20세기에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확률론적 세계관이 자리잡기까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변화시켰습니다. 만약 핼리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뉴턴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의 발전은 한 과학자의 천재성에서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 사람이 천재성을 발휘하려면 여러 사람들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과학 연구를 위해 여러 사람들의 협력과 막대한 예산이 필요한 거대과학(Big Science)의 시대입니다. 과학적 능력뿐만 아니라 의사소통 능력, 리더십 등 다양한 사회적 능력도 필요한 시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