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표면에서는 바람이 해류를 만들어냅니다. 파도가 일고 거품이 튀는 역동적인 표층에서 해수는 빠르게 움직입니다. 이런 표층 해류는 예전부터 항해에 이용되어왔고, 비교적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인공위성을 통해 관측한 수온 분포나 해수면 고도 자료를 이용해 표층 해류를 고해상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래 평균 수심 3,700미터에 달하는 깊고 어두운 심층에서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집니다. 빛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 해수는 고요하게,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1872년부터 1876년까지 전 세계 바다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영국의 챌린저호(HMS Challenger) 항해에서 관측한 결과는 이 깊은 바다가 차가운 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차가운 물들은 기온이 낮은 고위도 해역에서 기원했을 것이라고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표층의 빠른 해류와 달리 거의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물들이 실제로 어떤 경로를 따라 얼마나 오랜 시간에 걸쳐 이동하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습니다. 바다에는 비슷한 온도와 염분을 가진, 즉 동일한 물리적 성질을 가진 물들이 거대한 덩어리를 이루며 움직입니다. 이를 수괴(water mass)라고 부릅니다. 이런 물덩어리들이 바다 속 어느 깊이에 자리 잡는지는 물의 무게, 즉 밀도에 달려 있습니다. 차가우면서 염분이 높은 물일수록 밀도가 높아서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습니다. 북대서양의 차가운 바람과 낮은 기온 때문에 해수가 차가워지면, 이 물은 무거워져서 밑으로 가라앉습니다. 북대서양 북쪽에 위치한 래브라도해(Labrador Sea)와 그린란드해(Greenland Sea)에서 가라앉은 물은 바닥까지 내려가 점점 남쪽으로 흘러갑니다. 반대로 남극의 로스해(Ross Sea)와 웨델해(Weddell Sea)에서는 표층수가 찬바람에 의해 냉각되고, 해빙이 형성되면서 염분이 높아집니다. 해빙이 형성될 때 얼음 결정 바깥으로 염 이온들을 내보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형성된 해수는 바닥까지 가라앉으며 북쪽으로 이동합니다. 남극 해역에서 가라앉은 물은 북대서양에서 가라앉은 물보다 밀도가 높아 그 아래로 파고들어 바닥에 위치합니다. 이를 남극저층수(Antarctic Bottom Water)라고 부르고, 북대서양의 물은 북대서양심층수(North Atlantic Deep Water)라고 부릅니다. 태평양에서는 남극 해역에서 가라앉은 해수가 북태평양까지 이동합니다. 심층의 해수는 위층 해수와 혼합되면서 점점 표층으로 이동하고, 결국 다시 북대서양이나 남극 해역으로 돌아와 순환 고리를 완성합니다. 표층 해류는 위성 관측이나 직접적인 해류 측정으로 비교적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화학적 추적자도 표층 해류 연구에 사용되지만, 심층 해수의 이동을 추적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수천 미터 깊이에서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해수의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훨씬 긴 시간 척도의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심층에서는 해수가 수백 년에서 수천 년에 걸쳐 이동하기 때문에, 해수에 녹아 있는 화학 물질들이 이 긴 여정의 흔적을 고스란히 기록하게 됩니다. 실시간 관측이 주를 이루는 표층 해류 연구와 달리, 심층 순환 연구에서는 화학적 추적자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도구가 되는 것이죠. 해수에 녹아 있는 산소인 용존산소(dissolved oxygen)를 살펴보겠습니다. 이 산소는 해수가 바다 표면에서 대기와 만날 때 물에 녹아들어갑니다. 하지만 해수가 일단 깊은 곳으로 가라앉으면 더 이상 대기로부터 산소를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용존산소는 동물들의 호흡과 미생물의 유기물 분해에 사용되어 점점 농도가 감소합니다. 대양 심층 여러 곳에서 측정한 용존산소 농도를 보면, 북대서양 심층에서 가장 높은 값을 보입니다. 이 해수가 남쪽으로 이동해 남극 해역을 거쳐 북태평양에 도달할 때까지 용존산소 농도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해수로 공급되는 질산염($NO_3^-$)이나 인산염($PO_4^{3-}$) 같은 영양염의 농도는 용존산소와 반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증가합니다. 이들의 지역적 분포로부터 대양의 심층수는 북대서양에서 남하해 남극 해역을 거쳐 북태평양까지 이동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여정에 걸리는 시간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방사성동위원소라는 자연이 준 시계를 사용하면 됩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방사성 붕괴로 인해 반감기라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원래 있던 양의 절반으로 줄어듭니다. 해수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CO_2$)의 방사성탄소($^{14}C$) 함량은 해양 심층에서 주로 방사성 붕괴에 의해 결정됩니다. 북대서양 심층과 북태평양 심층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의 방사성탄소 함량을 측정해 비교하면, 이동하는 동안 방사성탄소가 얼마나 붕괴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두 해역의 방사성탄소 연령은 대략 1,500년가량 차이가 납니다. 이 결과는 한 번의 여정에 대략 1,000~2,000년 단위의 시간이 소요됨을 보여줍니다. 수천 년이라는 거대한 시간 단위로 움직이는 심층수 순환이지만, 이 느리고 거대한 흐름도 변화를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수명으로는 감지하기 어려운 이 순환이 실제로는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가 변하면 심층수 형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북대서양에서 빙하가 녹아 담수가 유입되어 해수의 밀도를 낮추면 심층수 형성이 제약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심층수 형성이 느려지면 표층 해류도 영향을 받습니다. 북쪽으로 흐르며 열을 공급하던 표층 해류의 흐름이 영향을 받으면 그 주변 해역의 기후도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해양학자들은 이러한 거대한 순환이 현재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국제 해양 관측 네트워크인 아르고(ARGO) 프로그램과 또 심해에 계류된 해류 측정장치들을 이용하여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