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남긴 아주 오래된 문자 중 하나인 수메르의 쐐기 문자는 말 그대로 ‘쐐기 모양’을 점토판에 새겨 넣어 만든 것이었습니다. 갈대를 깎아 만든 도구로 단단한 점토판에 한 글자, 한 글자 새기는 과정은 상상만 해도 손끝이 저릿해집니다.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겠죠. 그러나 종이의 발명은 기록 방식에 대혁신을 가져왔습니다. 가볍고 다루기 쉬운 종이는 정보를 적고 보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획기적으로 줄였습니다. 이후 인쇄술이 발전하면서 인류가 남길 수 있는 기록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오늘날 정보를 기록하고 저장하는 데 널리 쓰이는 방법 중 하나는 전자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USB나 SSD 같은 저장 매체는 막대한 양의 정보를 담을 수 있습니다. 과거라면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양의 정보를 보관하고, 전송하며, 심지어 실시간으로 편집까지 합니다. 기록 저장 방식으로 인류의 역사를 구분한다면, 우리는 점토판 시대와 종이 시대를 넘어 전자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전자 시대에도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습니다. 바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입니다. 금속 안의 전자는 꽤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금속 도선 안에서 전자는 전압 차이에 따라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이 이동 경로는 결코 매끄럽지 않습니다. 물질 속에는 전자의 이동을 방해하는 여러 장애물이 있어, 전자는 곧장 나아가지 못하고 자주 방향이 흐트러집니다. 이 과정에서 전자가 전기장으로부터 얻은 에너지 일부가 물질에 전달되고, 그 결과 열이 발생합니다. 이 열을 줄열(Joule Heat)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전자의 흐름이 방해받기 때문에 전기 저항이 생기고, 그 결과 전기 에너지 일부가 열로 바뀝니다. 깨끗한 구리에서도 전자가 방해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는 평균 거리는 수십 나노미터 정도입니다. 이는 전자가 아주 작은 금속 내부에서도 여러 원자 사이를 부딪치지 않고 피해 지나갔다는 의미입니다. 이 정도면 ‘교통사고가 드물다’라고도 볼 수 있겠으나, 그럼에도 전기 저항에 따른 열 손실은 여전히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덕분에 전기난로는 따뜻해지고, 스마트폰 같은 전자기기도 오래 쓰면 열을 냅니다. 훗날 인텔을 공동 설립한 고든 무어(Gordon Earle Moore, 1928~2023)는 1965년 집적 회로의 부품 수가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이후, 이 예측은 흔히 ‘집적 회로의 트랜지스터 수가 약 2년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라는 무어의 법칙으로 알려졌습니다. 성능은 좋아지고, 크기는 작아지며, 비용은 줄어드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법칙은 전자 기술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경험적 법칙은 늘 그렇듯이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반도체에서 트랜지스터 크기만 줄인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으니, 바로 인터커넥트 병목현상입니다. 반도체 회로 내부에는 트랜지스터뿐 아니라, 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인터커넥트라고 하는 미세한 도선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습니다. 트랜지스터가 아무리 작아져도, 결국은 도선을 통해 전기 신호가 이동해야 합니다. 도선이 얇아질수록 저항이 커지며 전기 신호의 이동이 느려지고 열이 더 많이 발생합니다. 결국 열 손실이 커지면서 성능 한계가 드러납니다.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열 손실과 저항이 적은 대체 물질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AMD 최고경영자로도 유명한 리사 수(Lisa Tzwu-Fang Su, 1969~)는 IBM 연구원 시절, 알루미늄 대신 전기 저항이 더 낮은 구리를 인터커넥트에 적용하는 연구에 참여했습니다. 덕분에 반도체 성능은 또 한 번 도약할 수 있었고, 지금도 구리 도선은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리 기반 인터커넥트도 계속된 소형화로 인해 다시 한계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점토판 시대에 비하면, 종이의 발명은 분명 정보 기록의 에너지를 크게 절감한 혁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전자 시대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믿기 어려울 만큼 작은 부피에 많은 정보를 빠르게 쓰고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기술을 비교하며 미래의 기술도 훨씬 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 기대의 바탕에는 전자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도체 기술은 점점 더 뚜렷한 물리적 한계와 마주하고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도 예전만큼 빠르게 이어지기 어려워졌습니다. 인터커넥트 병목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저항과 열 손실이 작은 신물질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핀(Graphene),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tube)와 같은 혁신적인 소재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고 할 돌파구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소재마다 각기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기 저항이 아예 없는 물질도 존재합니다. 초전도체라고합니다. 언젠가 먼 미래에는 초전도체가 전력 전송 문제를 획기적으로 바꿔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은 전자 대신 완전히 다른 원리를 활용하는 기록 매체의 등장을 기대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빛을 이용하는 광학 집적회로 혹은 전자의 전하가 아닌 스핀 정보를 활용하는 스핀트로닉스(Spintronics) 기술 등이 있습니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입자들을 이용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자 시대를 넘어서 펼쳐질 미래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