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엄마랑 눈매가 똑같다! 아빠 성격을 그대로 닮았네! 우리 집은 대대로 허벅지가 튼실해. 가족 모임에서 흔히 오가는 말입니다. 각 집안에는 유난히 반복되는 체형, 성격, 질병 경향성이 있지요. 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과 생활방식 같은 비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입니다. 어떤 형질은 부모에게서 그대로 이어지기도 하고, 어떤 형질은 무작위적인 조합 속에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런 형질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대를 건너 전달되는 걸까요? 형질은 눈 모양, 피부색, 키, 성격처럼 겉으로 관찰할 수 있는 특징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형질은 유전자만으로 완전히 결정되지 않고, 유전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때문에 자녀들은 부모의 형질을 그대로 물려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균값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형질의 많은 부분은 우연히, 혹은 무작위적으로 결정됩니다. 하지만 일부 형질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유전되며, 특정 형질이 하나의 유전 변이로 결정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변이의 유무에 따라 형질의 발현 여부가 바로 결정되겠지요. 혈액형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중 ABO 혈액형은 수혈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매우 중요합니다. 각자 혈액형에 따라 특정 항체를 생성하며 만약 다른 혈액형의 혈액이 수혈되면 응고를 일으켜 수혈자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죠. 사람은 모두 한 쌍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며, 이 한 쌍을 이루는 각각을 대립유전자(allele)라고 합니다. 하나는 아버지에게서, 또 하나는 어머니에게서 받은거죠. 예를 들어 아버지가 AA 유전자형, 어머니가 BB 유전자형이라면, 자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각 하나씩의 대립유전자를 받아 AB 유전자형을 갖게 됩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아버지가 OO 유전자형, 어머니가 AB 유전자형이라면, 자녀는 1:1의 비율로 AO 혹은 BO 유전자형을 갖게 되죠. 중요한 점은, 표현형으로 드러나는 혈액형은 단순히 유전자형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겁니다. A 대립유전자는 A 항원을, B 대립유전자는 B 항원을 만들지만, O 대립유전자는 항원을 만들지 못하지요. 따라서 AO 유전자형은 A형 혈액형, BO 유전자형은 B형 혈액형으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단일 유전자의 조합만으로 혈액형이라는 형질이 결정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로 태평양의 솔로몬 제도 주민들을 살펴봅시다. 주민들은 대부분 흑발을 가지고 있지만, 5~10% 주민들은 금발입니다. 솔로몬인은 대부분 흑인이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염색을 하지 않았는데도 금발을 가진 흑인의 모습은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유전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textit{TYRP1}$ 유전자에 위치한 단 하나의 변이가 그 원인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변이는 열성으로, 동형접합일 때만 금발 표현형이 나타납니다. 즉, 이 변이가 없으면 흑발이 되고, 부모에게서 두 대립형질 중 하나만 받아도 흑발이 되지만, 부모에게서 두 대립형질 모두 물려받았을 때만 금발이 되는거죠.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백인들의 금발은 $\textit{TYRP1}$ 유전자의 변이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전혀 다른 유전적 경로에 의해 금발이 생기죠. 즉, 솔로몬인의 금발을 일으키는$\textit{TYRP1}$ 변이는 솔로몬 섬에 인간이 정착한 이후 독립적으로 발생한 돌연변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수렴진화라고 합니다. 서로 다른 유전적 경로를 통해 비슷한 형질이 나타난 셈이지요. 마지막으로 적록색맹 유전을 살펴보겠습니다. 적록색맹을 일으키는 유전변이는 X염색체에 위치하며, 열성으로 작용합니다. 여성의 경우 하나의 염색체에 변이가 있더라도, 다른 X염색체의 정상 유전자가 기능하여 색맹이 발현되지 않죠. 하지만, 남성은 X염색체가 하나뿐이므로 변이가 있으면 바로 색맹이 됩니다. 따라서 보인자인 어머니는 색맹이 아니지만 아들에게 50% 확률로 색맹을 전달하며, 색맹인 아버지는 모든 딸에게 색맹 변이를 물려줍니다. 이런 방식의 X염색체 연관 유전은 적록색맹 외에도 약 200~300개의 유전질환에서 나타나는 패턴입니다. 혈액형, 솔로몬인의 금발, 적록색맹의 사례들을 통해 우리는 유전이 단순한 과정이 아니라, 대립형질의 우성과 열성, 성염색체의 특성 등 다양한 요인들이 얽혀 있는 복합적인 시스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사례로 원리를 이해했다면, 오늘날 유전학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일 유전자 변이뿐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상호작용, 유전자와 환경 간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하여 형질의 유전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개인 맞춤형 치료와 예방으로까지 확장되고 있지요. 가계도 속 유전은 우연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을 움직여 온 보이지 않는 질서의 증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