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자란 형제자매인데도, 키가 눈에 띄게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부모는 평균 키인데 자녀 중 한 명은 크고, 다른 한 명은 작은 경우도 있지요. 반면 일란성 쌍둥이는 거의 비슷한 키로 성장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분명 키에는 유전적 요소가 작용하지만, 그 패턴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키가 크고 어떤 사람은 작을까요? 부모가 키가 작아도 자녀는 크게 자랄 수 있을까요? 키는 어떻게 결정되는 걸까요? 형질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결정됩니다. 먼저, 혈액형처럼 하나의 유전자 변이만으로 결정되는 형질이 있습니다. 이런 단일 유전자 형질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집단으로 나뉘어 분포하지요. 반대로, 키나 몸무게처럼 여러 유전자가 함께 작용하는 형질도 있습니다. 이를 '다인자유전(polygenetic inheritance)'이라고 하며, 각각의 유전자가 작은 효과를 보태 최종 형질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형질은 집단 내에서 평균값을 중심으로 정규분포 곡선을 이루게 됩니다. 즉, 뚜렷이 갈라지는 분포인지, 연속적인 분포인지가 형질의 유전 방식을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다인자유전을 설명할 때 키만큼 좋은 주제는 없을 것입니다. 키는 단순해 보이는 형질이지만, 유전학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이지요.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의 많은 복잡한 형질들이 가진 유전적 특징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둘째, 매우 정확한 측정이 가능합니다. 셋째, 건강에 직접적 위험이 없고 측정이 간단해 대규모 자료 수집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키는 얼마나 강하게 유전되는 것일까요? 즉, 나의 키는 부모의 키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나의 노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유전율(heritability)'이라는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유전율은 특정 형질을 결정하는 데 필요한 유전적 요인의 비율을 뜻하며, 0부터 1 사이의 값을 가집니다. 값이 1이라면 그 형질은 완전히 유전 변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뜻이고, 0이라면 완전히 비유전적으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형질은 유전성과 환경 요인의 복합적인 작용으로 정해지므로, 유전율은 대개 0과 1사이의 어느 수치를 띠겠지요. 키의 경우, 여러 연구에 따르면 유전율이 약 0.7~0.9로 나타납니다. 영양, 의료 등 환경 요인이 나머지 0.1~0.3을 차지하죠. 대체로 부모와 자녀의 키는 비슷하지만, 어떤 가정에서는 자녀가 부모보다 훨씬 크거나 작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키의 유전율이 1이라면 자녀들의 키가 부모님의 키의 평균값과 동일하게 나올까요? 아닙니다. 자녀들의 키는 여전히 다양하게 나타날 겁니다. 이는 다인자유전의 핵심 특성 때문이죠. 부모는 키를 크게 하는 변이와 작게 하는 변이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자녀는 그 조합을 무작위로 물려받기 때문에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결국 유전율은 형질의 절대적 결정률이 아니라, 유전적 요인이 형질 결정에 기여하는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이해해야 합니다. 유전 변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그 기능입니다. 각 변이는 특정 유전자의 발현이나 단백질 기능에 영향을 미쳐 형질에 변화를 줄 수 있지요. 그렇다면 어떤 변이가 키에 영향을 주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현재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GWAS, 즉 ‘전장유전체연관분석법(Genome-wide association study)’입니다. 이름 그대로, 유전체 전체에서(genome-wide) 특정 변이와 형질 간의 연관성을 찾는(association study) 연구 방법이죠. 많은 사람들의 키와 유전자 정보를 비교한 후 특정 변이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키 차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해당 변이와 키의 '연관성'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백만 개에 달하는 변이들을 동시에 분석하는 것이 GWAS입니다. 2005년 처음 도입된 이후, GWAS는 다인자유전에 의한 복합형질 연구에 필수적인 방법이 되었습니다. GWAS에서 밝혀진 변이 정보를 개인별 유전자 데이터에 적용하면, 개인별 점수를 매길 수 있습니다. 이를 다유전자 위험 점수(PRS, polygenic risk score)라고 부릅니다. 이 방법은 키나 몸무게뿐 아니라 당뇨병, 치매 같은 특정 형질에 대한 예측이 가능합니다. 물론 예측력은 연구 대상과 인종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그러나 복합형질의 예측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발전입니다. 물론 GWAS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GWAS가 밝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통계적 ‘연관성’이지, ‘인과관계’가 아닙니다. 즉, 특정 변이가 있으면 키가 조금 더 큰 경향이 있다는 의미일 뿐, 그 변이가 키를 직접 크게 만든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대부분의 GWAS 연구는 유럽계 인구를 중심으로 수행되어 왔기에, 한국인을 비롯한 동아시아인들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인류 전체를 아우르는 보다 정확한 유전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키라는 단순한 형질 속에도 이렇게 복잡한 유전적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의 키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수백만 개의 유전 변이가 모여 완성한 거대한 모자이크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