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즐겨 들으시나요? 저는 카페에서 공부할 때나 운동할 때, 산책할 때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자주 듣습니다. 이제 음악 없이 사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일상생활에 항상 BGM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완벽한 정적일 것 같은 광활한 우주에도 미약하지만 ‘배경음’ 같은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를 우주 전역에서 관측되는 마이크로파 배경 복사라는 뜻에서 우주배경복사(Cosmic Microwave Background, CMB)라고 부릅니다. 1960년, 미국 벨 연구소의 아르노 펜지어스(Arno Penzias, 1933~2024)와 로버트 윌슨(Robert Wilson, 1936~)은 뉴저지 들판에 세운 거대한 전파 안테나를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목적은 위성 신호를 보다 깨끗하게 수신하기 위해 장비 감도를 점검하는 것이었지만, 안테나 방향을 바꿔도 사라지지 않는 이상한 잡음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이 잡음을 없애기 위해 두 사람은 장비 결함, 뉴욕 공항 레이더 간섭, 심지어 안테나 안에 둥지를 튼 비둘기의 배설물까지 의심하며 모든 가능성을 점검했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를 내쫓고 내부를 깨끗이 청소했음에도 잡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무엇보다 하늘 어느 곳을 향해도 신호 세기가 거의 일정하다는 사실이 의문을 더했습니다. 우주 어디를 향해도, 마치 배경음처럼 같은 신호가 잡히고 있던 것입니다. 빅뱅 직후의 우주는 매우 뜨거운 ‘플라스마’ 덩어리였습니다. 전자와 양성자가 원자를 이루지 못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상태에서, 광자가 조금만 나아가도 쉽게 전자와 충돌하여 멀리 나아가지 못했고 흩어졌습니다. 따라서 당시 우주는 불투명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우주가 팽창하며 온도가 식어 약 3000 K까지 내려가자, 전자와 양성자가 결합해 원자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재결합 시기라고 합니다. 전자들이 원자핵과 결합해 빛의 진행을 막는 방해물이 줄어들자, 광자는 처음으로 먼 거리까지 자유롭게 퍼져 나갈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우주는 투명해졌습니다. 이 순간을 흔히 '우주가 맑게 갰다'라고 표현합니다. 재결합 시기에 방출된 빛은 이후 약 138억 년 동안 우주의 팽창에 따라 파장이 계속 늘어나 지금은 평균 온도 약 2.7 K의 마이크로파로 관측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주배경복사입니다. 빛이 처음으로 자유롭게 퍼져 나갈 수 있게 된 순간을 담은 거대한 사진이자, 지금도 사방에서 관측되는 우주의 ‘배경음’ 같은 흔적인 셈입니다. 우주배경복사는 우주 전체의 평균 온도를 알려 주는 ‘온도계’입니다. 빅뱅 이후 뜨거운 플라스마로 가득했던 우주는 팽창과 냉각을 거듭하며 빛의 파장까지 함께 늘렸습니다.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았던 이 빛이 마이크로파 대역으로 길어진 덕분에 우리는 우주가 얼마나 식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빛의 주파수가 낮아지고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은 북 판이 커질수록 울림이 낮아지는 현상과 비슷합니다. 우주가 계속 팽창하는 한 우주배경복사의 파장은 앞으로 계속 길어질 것이며, 그 변화 속도는 우주의 팽창률과 직접 연결됩니다. 정밀한 우주배경복사 관측을 통해 우리는 우주의 나이, 팽창 속도, 초기 밀도 요동 등 핵심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주배경복사는 빅뱅우주론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1940년대에 이미 조지 가모프(George Gamow, 1904~1968)와 랠프 앨퍼(Ralph Alpher, 1921~2007), 로버트 허먼(Robert Herman, 1914~1997)은 우주가 고온‧고밀도 상태에서 팽창해 왔다면, 현재 우주의 복사 온도는 약 5 K일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1965년, 펜지어스와 윌슨이 3 K 남짓한 균일한 전파 잡음을 발견했고 프린스턴의 로버트 다이크(Robert Dicke , 1916~1997) 연구팀은 이것이 바로 예견된 ‘옛날의 빛’임을 알아보았습니다. 놀랍도록 매끄러운 2.7 K 곡선은 '우주 전체가 한때 3000 K 정도의 뜨거운 플라스마였고, 이후 공간이 약 천 배 팽창하면서 빛이 늘어나 지금의 마이크로파로 식었다'는 빅뱅 모형과 잘 들어맞았습니다. 반면, ‘변하지 않는’ 우주를 주장한 정상우주론(steady-state)은 이런 전 우주적 흑체복사를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주배경복사의 발견 이후 설득력을 잃었습니다. 우연히 발견된 우주배경복사는 단순한 방해 전파가 아니라 빅뱅 이론을 뒷받침한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결국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배경복사의 발견을 공로로 1978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습니다. '지워지지 않는 균일한 잡음'이라 생각된 3 K 복사는 초기 우주의 모습을 간직한 가장 오래된 빛으로 밝혀졌고, 현대 관측우주론의 서막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