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구조회국(Population Reference Bureau)에 따르면 지금까지 지구상에 살았던 현생인류의 수는 대략 1천억 명쯤입니다. 이들 중 나와 같은 사람은 몇 명이나 있었을까요? 놀라지 마세요! 일란성 쌍생아를 제외하면, 나와 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현생 인류가 약 20만 년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나와 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거죠. 물론 앞으로도 나와 같은 사람이 태어날 확률은 없습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사람을 포함한 대부분의 고등 동식물은 두 세트의 염색체를 가진 2배체 생물입니다. 하지만 정자나 난자와 같은 생식세포는 감수분열을 통해 염색체 수를 절반으로 줄여서, 각각 한 세트의 염색체만을 갖습니다. 이 과정에서 엄마와 아빠로부터 각각 받은 염색체가 무작위로 섞이는 현상, 즉 패섞기가 일어납니다. 카드를 섞을 때 가능한 서로 다른 조합의 수를 상상해 보면, 염색체 패섞기가 얼마나 다양한 결과를 낳을지 짐작할 수 있죠. $2n=4$인 가상의 생물을 예로 생각해 봅시다. 이 생물은 엄마로부터 빨간색 염색체 두 개, 아빠로부터 파란색 염색체 두 개를 받아 총 네 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습니다. 감수분열이 시작되면, 이 상동 염색체들이 짝을 지어 세포의 중앙에 배열됩니다. 이때 배열의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같은 색끼리 나란히 배열되거나, 서로 엇갈려 배열될 수도 있죠. 무작위로 배열된 상동염색체가 분리되면서 네 종류의 서로 다른 염색체 조합을 가진 생식세포가 만들어집니다. 염색체의 무작위 조합, 즉 염색체 패섞기가 일어난 것이죠. 사람의 체세포에는 23쌍, 즉 46개의 염색체가 있습니다. 감수분열 과정에서 23쌍의 상동 염색체가 분리되어 23개의 염색체를 가진 생식세포가 만들어지죠. 이때 염색체 패섞기를 통해 무려 $2^{23}$인 약 838만 가지의 서로 다른 염색체 조합을 가진 정자와 난자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면, 이들 조합이 곱해지므로 약 70조 가지의 서로 다른 염색체 조합이 가능해지죠. 단순한 패섞기 과정이, 어마어마한 유전적 다양성을 만드네요! 유성생식을 하는 생물이 더 다양한 자손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상동염색체의 교차, 즉 뒤섞기입니다. 엄마로부터 받은 빨간색 염색체와 아빠로부터 받은 파란색 염색체를 단순하게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두 색을 뒤섞는 것이죠. 감수분열 초기에 상동염색체 쌍은 서로 달라붙어 세포의 중앙에 배열됩니다. 이때, 두 염색체의 DNA가 서로 교차하여 연결되지요. 그 결과 빨간색 염색체와 파란색 염색체의 DNA가 뒤섞여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경우, 이 교차가 염색체당 평균 1~2회 정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렇게 염색체 패섞기와 뒤섞기까지 고려하면, 우리가 만드는 정자와 난자의 유전자 조합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해집니다. 여기에 진화적 변이, 즉 돌연변이까지 더해지면 개체군 전체의 유전적 다양성은 더욱 커지죠. 그래서 무한히 다양한 유전자 조합을 가진 사람들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당연히 나와 똑같은 인간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감수분열 덕분에 지구상의 모든 인간은 유일무이한 존재로 태어납니다. 내가 가진 유전체 정보는 오로지 나만 가진 특별한 것이죠. 어떤 유전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을, 또 다른 유전체는 스티브 잡스(Steven Jobs, 1955~2011)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가진 특별한 유전체는 어떤 능력을 발휘하여 인류에 공헌을 하게 될까요? 유전체에 담긴 정보는 개인의 성격과 기질, 성향, 재능 등에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사람의 운명이 유전체로만 결정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정체성은 개인이 성장하며 겪는 다양한 경험과 학습, 수행 등으로 결정됩니다. 이는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유전과 환경 논쟁의 핵심이기도 하죠. 유전체는 고유한 잠재력, 즉 일종의 틀을 제공하지만, 개개인의 정체성은 뇌 속의 뉴런 네트워크에 의해 결정됩니다. 인간의 뇌에는 약 1천억 개의 뉴런이 있고, 이들이 약 1천조 개의 시냅스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 시냅스는 학습과 경험을 통해 형성되고 변화합니다. 내가 가진 유전체 정보와 학습으로 형성된 뉴런 네트워크가 결합해, 나는 독특하고 소중한 존재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