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 이온 농도 지수, pH는 산성을 얼마나 띠고 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를 가리키는 기호입니다. 산과 염기를 공부하면 반드시 마주치는 기호이죠. 사실 이 기호는 과학에 문외한인 사람에게도 익숙합니다. 화장품 광고나 음료수 성분 정보 등에도 자주 등장하고, 인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제품의 질을 평가하는 척도로서도 사용하죠. 그런데 이 pH라는 기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우선 pH를 수식으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H는 수소 이온(H+)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p는 음의 상용로그(-log10)를 뜻하는 기호로 볼 수 있는데요, 하지만 p라는 글자는 로그 함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p의 정확한 역사적 기원은 무엇일까요? 흔히 화학 교과서에서는 pH라는 기호가 ‘수소의 힘(power of hydrogen)’을 뜻하는 영문 구절의 약어에서 따왔다고 설명합니다. 아주 그럴싸한 설명이죠. 산성을 띠는 것은 수소 이온 때문이니 그 영향력을 ‘힘’으로 비유한 것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책에 따라 p에 관한 설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영어 ‘power’라고 하는 책도 있고, 프랑스어 ‘puissance’, 독일어 ‘Potenz’, 라틴어 ‘pondus’라고 하는 책도 있습니다. 하나여야 할 어원이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다소 수상하지 않나요? pH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덴마크의 화학자, 쇠렌 페테르 라우리츠 쇠렌센(S. P. L. Sørensen, 1868~1939)입니다. 그는 덴마크의 칼스버그(Carlsberg)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여러 이온이 단백질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던 와중에 수소 이온의 특별한 영향력을 발견합니다. 이후 그는 1909년 논문에서 이 수소 이온의 농도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는 개념을 제안했고, $p_H^+$라는 기호로 표현했습니다. 이 개념이 오늘날의 pH입니다. 문제는 애초에 쇠렌센이 이 논문에서 왜 p라는 기호를 선택했는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922년 이 내용을 정리하던 윌리엄 맨스필드 클라크(W. Mansfield Clark, 1884~1964)가 나름대로 짐작해서 붙인 설명이 ‘수소의 힘’이었습니다. 그런데 쇠렌센의 1909년 논문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영어 파워(power)가 나올 수 없었죠. 그래서 더 그럴싸한 어원을 부여하고 싶었던 후대 사람들이 프랑스어나 라틴어 용어라고 짐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쇠렌센이 p를 선택한 이유는 전혀 알 수 없을까요? 이것이 궁금했던 학자들은 쇠렌센의 논문을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pH 개념을 처음 제시했던 1909년 논문은 수소 이온의 농도를 정확하게 정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 방법은 두 개의 전극을 사용하는 것인데 그중 수소 이온과 연관된 전극을 가리킬 때에는 일관되게 p라는 기호를, 다른 전극을 가리킬 때는 q라는 기호를 사용합니다. 그는 수소 전극의 퍼텐셜을 $π_p$로 쓰고 수소 이온의 농도를 $C_p$로 표현한 뒤, $log_{10}(1/C_p) ∝ π_p$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 중요한 값(log10(1/Cp))을 라고 명명하면서 쇠렌센은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숫자 p에 대해 나는 수소 이온 전극과 관련된 의미를 부여했고, 그래서 $p_H^+$와 같은 기호를 쓴다.” 정리해보자면, 쇠렌센이 p라는 기호를 선택한 것은 다소 임의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수학 기호로 p와 q라는 임의의 쌍을 사용하는 것처럼, 쇠렌센은 자신의 전극 두 개에 p와 q라는 임의의 기호를 할당한 것이죠. 그리고 이 기호를 일관되게 쓰려다 보니 $p_H^+$ 같은 기호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쇠렌센이 두 전극의 기호를 반대로 썼다면 오늘날 우리가 pH 대신 ‘qH’를 쓰고 있을 수도 있겠죠. 보시다시피 쇠렌센의 원래 기호($p_H^+$)는 타이핑하기도, 인쇄하기도 번거롭습니다. 그래서 쇠렌센의 첫 논문 이후 약 10년 동안 이 기호가 다양하게 변형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조합(ph, pH, Ph, PH, Ph, PH 등)이 다 사용되었다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이후 <생물화학저널(Journal of Biological Chemistry)>의 편집자들이 1917년 이후 표기법을 pH로 통일하였습니다. 아래 첨자나 위 첨자가 없는 조합이 타이핑하기에도 나쁘지 않고 인쇄하기에도 불편하지 않은 선택이었을 겁니다. 또한 pH 외의 다른 기호들은 헷갈릴 우려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앞자리가 대문자인 ‘Ph’는 화학에서 페닐기를 뜻하는 기호로 사용되고, 둘 다 대문자인 ‘PH’는 분자식과 혼동될 수 있겠죠. 그 결과 무난한 소문자 p, 대문자 H로 구성된 기호가 선택되었고, 오늘날까지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pH 기호의 기원을 살펴보았습니다. pH의 p가 임의의 수학적 기호에서 유래했다니, 어쩐지 김이 팍 새는데요. 그래서 더 의미 있어 보이는 ‘수소의 힘’ 가설이 널리 퍼져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뒤도 맞고 그럴싸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역사적인 근거가 부족합니다. 의외로 과학 교과서에는 이렇게 근거가 빈약한 과학사 에피소드가 종종 실려 있습니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라고 해서 덥석 받아들이기보다는 한 번쯤은 스스로 출처와 근거를 확인해보는 것이 과학적 태도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