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을 나누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좋아하는 반려동물을 기준으로 한다면 강아지 파와 고양이 파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굳이 말하자면 강아지 파에 속하는데, 그 이유는 강아지를 특별히 좋아해서라기보다는 고양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양이는 도도한 발걸음으로 집안을 쏘다니며, 사람의 시선에는 아무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반가움을 표현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고양이의 행동 방식은 저에게는 이상(異常)하게 느껴집니다. 공기 중을 떠돌아다니는 기체 분자들의 움직임은 마치 고양이처럼 자유롭고 예측하기 어려운 움직임을 보입니다. 기체 중에서도 아주 이상적인 고양이다운 움직임을 보인다고 가정한 모델을 이상(理想) 기체라고 합니다. 이상 기체는 실제 기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단순화한 가상의 모델입니다. 이상 기체는 분자 간 상호작용을 완전히 무시하고, 각 분자가 자유롭고 무작위로 움직인다고 가정합니다. 실로 고양이의 움직임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기체도 상온과 상압에서는 이상 기체와 매우 유사하게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대기의 주요 구성 요소인 질소와 산소는 이상 기체 방정식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따릅니다. 현실에서도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상온에서 기체의 거동은 이상 기체가 잘 설명하지만, 온도가 극저온으로 낮아지면 기체는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열에너지가 줄어들고, 입자들은 점차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고전역학이 아닌 양자역학적인 기체, 즉 양자 기체의 세상이 나타납니다. 양자역학의 세계로 들어서면, 기체는 구성 입자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뉩니다. 바로 페르미 기체와 보스 기체입니다. 이 두 기체는 극저온 환경에서 각각 완전히 다른 성질을 드러냅니다. 페르미 기체는 '페르미온(Fermion)'이라는 입자로 구성된 기체입니다. 페르미온은 전자, 양성자, 중성자처럼 물질을 이루는 입자들입니다. 고양이에 빗대어 이야기하자면, 페르미온은 매우 호전적인 고양이와 같습니다. 호전적인 페르미온들은 자기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절대 타협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호전적인 나머지, 두 페르미온이 같은 양자 상태에 공존하는 것은 상상 불가입니다. 이 규칙을 파울리의 배타 원리라고 합니다. 각자의 영역이 어느 정도 보장될 때는 페르미온은 말썽을 부리지 않고 이상 기체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합니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지면 서로 자기 영역을 한자리씩 차지하려는 듯한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플랑크 상수($h=6.626×10^-34J∙s$)입니다. 만약 페르미온들이 밀집되어 공간이 비좁아지면, 각 입자는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는 듯 서로 겹치지 않으려 하고, 결국 강한 압력을 만들어 냅니다. 페르미온이 호전적이라면, 보손은 비교적 온순한 종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자, 헬륨-4 원자 등이 보손의 예입니다. 보손은 파울리 배타 원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온순한 입자들도 사실 심상치 않은 특이 행동을 합니다. 온도가 충분히 낮아지면, 보손들은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찾아서 한자리에 뭉치려고 합니다. 서로 밀어내려는 생각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한곳에 뭉쳐 완벽히 일치된 동작으로 군무를 추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 흥미로운 양자 상태는 보스(Satyendra Nath Bose, 1894~1974)와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이 1920년도에 제안하였고, 그들의 이름을 따서 보스-아인슈타인 응축, 줄여서 BEC라고 부릅니다. 1995년 에릭 코넬(Eric Allin Cornell, 1961~)과 칼 위먼(Carl Edwin Wieman, 1951~)은 루비듐 원자를 170 나노 켈빈까지 냉각시켜 BEC를 구현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상 기체는 단순한 모델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기체의 물리적 특성을 잘 설명합니다. 하지만 저온에서는 입자들의 양자 본색이 드러납니다. 양자 기체는 페르미온 기체와 보손 기체로 나누어집니다. 이상(理想) 아래 숨겨져 있는 이상(二相)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