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갯벌의 진흙 바닥을 파본 적이 있나요? 삽으로 조금만 파도 검은 진흙과 함께 독특한 냄새가 올라옵니다. 달걀 썩은 냄새와 조금 비슷한 이 냄새의 정체는 황화수소입니다. 이런 냄새가 나는 곳은 대부분 산소가 부족한 환경입니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구상 대부분의 생물은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얻습니다. 하지만 일부 미생물들은 산소가 전혀 없는 환경에서도 번성할 수 있습니다. 이들을 혐기성 미생물이라고 합니다. 해저 퇴적물은 이런 미생물들의 대표적인 서식지입니다. 바다 밑바닥에 쌓인 진흙층을 떠올려보세요. 이곳은 햇빛도 들지 않고 산소도 거의 없는 극한 환경입니다. 해저면, 즉 바다 밑바닥의 면 바로 위 해수에는 산소가 비교적 풍부합니다. 하지만 퇴적물 속으로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표면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만 내려가도 산소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산소가 확산되어 들어가는 속도보다 미생물들이 산소를 소비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입니다.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분해해 에너지를 얻으려면 산화환원 반응이 일어나야 합니다. 산화환원 반응이란 간단히 말해 전자의 이동으로 일어나는 화학 반응입니다. 환원이 되었다는 것은 전자를 얻었다는 의미입니다. 유기물 분해 과정에서는 전자를 받아 환원되는 물질이 있어야 유기물이 이산화탄소로 산화되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자를 받아 환원되는 물질을 전자수용체라고 합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산소를 전자수용체로 이용합니다. 산소가 있을 때는 산소가 전자수용체 역할을 합니다. 이를 호기성 유기물 분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산소가 없어도 미생물들은 다른 화합물들을 전자수용체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미생물들이 전자수용체를 이용하는 대략의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유기물 공급량, 확산 속도, 화합물의 초기 농도, 미생물 군집 차이에 따라 ‘순서’가 흔들리거나 겹치기도 합니다. 에너지 효율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셈인데 일반적으로는 해저 퇴적물 속에서 미생물들은 산소가 고갈되면 질산염($NO_3^-$)을 먼저 이용합니다. 질산염이 질소($N_2$)로 환원되면서 질산염 농도가 감소합니다. 그다음에는 망가니즈 산화물($MnO_2$)이 이용됩니다. 고체 상태인 $MnO_2$가 환원되어 2가 망가니즈 이온($Mn^{2+}$)이 됩니다. 이 이온은 물에 잘 녹기 때문에 공극수에서 농도가 증가합니다. 공극수란 퇴적물 입자들 사이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는 물을 말합니다. 이어서 철 산화물($Fe_2O_3$)이 환원됩니다. 3가 철 이온($Fe^{3+}$)이 2가 철 이온($Fe^{2+}$)으로 바뀌면서 공극수 내 철 이온 농도가 높아집니다. 망가니즈와 마찬가지로 환원된 철 이온은 물에 잘 녹습니다. 해수에서 황산염 이온($SO_4^{2-}$)의 농도는 염화 이온 다음으로 높습니다. 따라서 질산염, 망가니즈, 철 산화물이 고갈된 후에도 황산염은 충분히 남아 있습니다. 황산염이 환원되면 황화수소($H_2S$)가 생성됩니다. 갯벌에서 나는 그 특유의 냄새가 바로 이 황화수소입니다. 황산염마저 모두 고갈되면 미생물들은 마지막 수단을 사용합니다. 탄소 자체를 전자수용체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때 메테인($CH_4$)이 생성됩니다. 이것이 혐기성 유기물 분해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미생물들이 이렇게 대략의 순서를 따르는 이유는 에너지 효율 때문입니다. 미생물들은 산소를 이용할 때 가장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질산염, 망가니즈, 철, 황산염 순으로 갈수록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점점 줄어듭니다. 가장 효율적인 방법부터 차례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한 종류의 미생물이 이 일련의 과정을 모두 수행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종류의 미생물들이 각각 다른 종류의 전자수용체를 이용하면서 살아가죠. 이용하는 전자수용체에 따라 철 환원 박테리아, 망가니즈 환원 박테리아, 황산염 환원 박테리아와 같은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럼 이 미생물들이 퇴적물에서 유기물을 얼마나 빨리 분해시키는지 알아볼 수 있을까요? 이 유기물 분해 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해수와 퇴적물 경계면에서 용존산소 소모율만 측정하면 됩니다. 용존산소란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를 뜻합니다. 언뜻 보면 이 방법으로는 호기성 분해만 측정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깊은 곳에서 환원되어 만들어진 이온들이 공극수를 통해 위로 확산됩니다. 이들이 상층부에서 다시 산화되면서 결국 산소를 소모합니다. 따라서 산소 소모율을 측정하면 호기성과 혐기성 유기물 분해 속도의 합을 알 수 있습니다. 혐기성 미생물들은 지구 역사에서 호기성 미생물보다 먼저 등장했습니다. 광합성을 하는 생물들이 나타나면서 대기와 해수에 산소가 축적되었고, 그로 인해 혐기성 미생물들의 서식지는 줄어들었습니다. 오히려 먼저 등장했던 혐기성 미생물들이 이제는 더 특별한 존재가 된 셈입니다. 미생물들은 복잡한 신경계 없이도 어떻게 각자에게 효율적인 전자수용체를 찾아 이용할까요? 이는 수억 년간의 진화 과정에서 형성된 생화학적 체계의 결과일 것입니다.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얻는 미생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살아남으면서,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생존 방식인 것입니다. 현재도 해양학자들은 이런 혐기성 과정들을 연구해 지구의 물질 순환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