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마른 사람 앞에 흙탕물과 소금물 그리고 생수가 한 컵씩 있습니다. 무엇이 생수인지는 적혀있지 않습니다. 다행히 그냥 보기에도 흙먼지가 둥둥 떠다니는 흙탕물은 마실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제 그는 투명한 물이 담긴 두 개의 컵 중 하나를 집어듭니다. 순간 소금물의 짠맛이 확 올라와 얼굴을 찡그리며 뱉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남은 생수 컵을 들어 벌컥 들이킵니다. 드디어 갈증이 해소되어 살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마시는 생수는 과연 순수한 물일까요? 아닙니다. 생수에도 미네랄과 같은 이온이나 다른 물질들이 약간씩 섞여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바로 혼합물입니다. 그렇다면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증류수는 어떨까요? 불순물을 줄이기 위해 여러 번의 정제 과정을 거쳐 만든 실험용 증류수라면 드디어 순수한 물, 즉 순물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증류수 병에도 ‘100%’ 물이라고 적혀 있지 않습니다. 대신 ‘99.9 %’ 혹은 ‘99.99 %’라는 순도 표시가 적혀 있죠. 왜 과학자들조차 자신들이 만든 증류수를 100 % 순수하다고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화학에서 정의하는 ‘순물질’이라는 것은 정말로 완벽하게 순수할까요? 순물질은 한 가지 물질로만 이루어져 다른 물질이 섞이지 않은 물질을 말합니다. 이를 다시 분류하면 단일 원소로 이루어진 홑원소 물질과 두 종류 이상의 원소가 결합하여 생성된 화합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구리, 금과 같은 금속이나 산소, 질소 등의 물질은 모두 홑원소 물질에 해당합니다. 반면, 물(H₂O), 이산화 탄소(CO₂), 염화 나트륨(NaCl)과 같은 물질은 두 종류 이상의 원소가 결합한 화합물입니다. 순물질은 끓는점, 녹는점 등 고유의 특성들도 일정한 값을 가집니다. 예를 들어 압력이 1 기압일 때, 물의 끓는점은 100 ℃, 녹는점은 0 ℃로 일정합니다. 이에 비해 혼합물은 두 가지 이상의 순물질이 섞여 있는 물질입니다. 원소가 화학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순물질이 단순히 물리적으로 섞여 있다는 점에서 화합물과 다릅니다. 혼합물은 균일 혼합물과 불균일 혼합물로 나눌 수 있습니다. . 공기는 질소, 산소, 아르곤 등 여러 기체가 섞여 있는 혼합물입니다 하지만 어느 곳의 공기를 채취해도 같은 조성을 보입니다. 이처럼 성분들이 고르게 섞여 있는 혼합물을 균일 혼합물이라고 합니다. 반면 불균일 혼합물은 흙탕물처럼 그 성분들이 균일하게 섞이지 않고 측정하는 부분에 따라 조성이 다른 혼합물입니다. 물질의 특성을 이용하면 순물질과 혼합물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과 소금물을 구별하려면 끓는점이나 녹는점을 측정해 보면 됩니다. 물의 경우 가열하면서 온도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100 ℃가 되었을 때 끓기 시작하면서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반면 혼합물인 소금물의 경우는 100 ℃보다 높은 온도에서 끓기 시작하며, 끓는 동안에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조금씩 증가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물을 냉각시켜봅시다. 이 때 온도 변화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0 ℃가 되었을 때 얼기 시작하면서 다 얼 때까지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반면 소금물을 냉각시키면 0 ℃보다 더 낮은 온도에서 얼기 시작하며, 어는 동안에도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고 조금씩 내려가게 됩니다. 즉 순물질은 끓는점이나 녹는점이 일정한 반면, 혼합물은 더 높은 온도에서 끓고 더 낮은 온도에서 얼게 되며 온도도 계속해서 변화합니다. 그러므로 가열 곡선과 냉각 곡선을 관찰하면 용액이 순물질인지, 혼합물인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화학에서 ‘순물질’은 “한 가지 성분으로만 이루어진 물질”이라고 정의합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정의를 완벽하게 만족하는 물질을 찾기 어렵습니다. 실험실에서 쓰는 증류수조차 사실은 완벽히 순수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정제를 거듭해도 공기 중에 이산화 탄소가 녹아들거나, 담아둔 용기의 미세한 성분이 녹아나오기도 하죠. 게다가 물 분자 자체도 완전히 동일하지 않습니다. 바로 동위원소의 존재 때문입니다. 같은 물 분자여도 사실은 질량이 다른 물 분자들이 일부 섞여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어떤 기준으로 순물질을 판단할까요? 실제로는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순물질로 인정합니다. 불순물의 양이 무시할 만큼 적어 물질 고유의 성질에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이거나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더 이상 분리되지 않으면 순물질로 보는 것이죠. 과학자들은 물질의 순도가 중요한 경우, ‘N 표기법(nines notation)’으로 표현합니다. 가령 ‘9N’이라면 아홉 개의 9(99.9999999 %)의 순도를 의미하죠. 정밀한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실리콘은 11N이나 12N 순도까지 요구하기도 합니다. 결국 ‘순물질’이라는 개념은 완벽한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기준에서의 상대적 순수함을 의미합니다. 과학자들이 만든 기준이죠. 마치 수학에서 완벽한 ‘원’ 모양을 실제로는 그려낼 수 없지만,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상적인 개념인 것과 비슷합니다. 그럼, 이제 우리 주변의 여러 가지 물질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빵은 녹말, 설탕, 견과류 등이 섞여 있는 혼합물입니다. 불균일 혼합물인 오렌지 주스는 아래 가라앉은 성분이 잘 섞일 수 있도록 마시기 전에 흔들어주면 좋겠죠. 아름답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는 탄소로만 이루어진 홑원소 물질이지만, 그것마저도 완벽하게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