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첫 미국 여행에 들뜬 한국인 김씨는 JFK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뉴욕 타임스퀘어에 가고 있습니다. 일기예보를 찾아보던 김씨는 기상캐스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깜짝 놀라게 됩니다. “오늘 기온은 32도로 빙판에 주의하세요”. ‘기온이 32도인데 빙판에 주의하라고? 아니, 애초에 겨울인데 32도인 게 말이 돼?’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김씨는 화면을 주의 깊게 들여다봤고 온도 기호가 다른 것을 발견합니다. 이처럼 같은 온도를 한국에서는 섭씨, 미국에서는 화씨와 같이 다른 기준으로 표현합니다. 섭씨와 화씨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습관적으로 사용하곤 하죠. 많은 사람들이 ℃를 섭씨라 부르는 이유를 알파벳 C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는 왜 화씨라 불릴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기준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섭씨와 화씨에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씨’라는 표현은 김씨와 박씨처럼 누군가를 성으로 지칭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이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선 한자로 이뤄진 성을 기준으로 했을 것입니다. 섭씨 온도는 1742년, 극지 탐험가였던 안데르스 셀시우스(Anders Celsius)가 고안한 온도 체계입니다. 순수한 물이 어는 온도를 0도, 끓는 온도를 100도로 정하고, 그 사이를 100개로 나눠 척도를 만든 것이죠. 편리한 온도 체계와 함께 셀시우스의 이름은 실크 로드를 건너 중국으로 전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셀시우스는 서얼쓰로 불렸고, 한자 표기로 섭이사(攝爾思)가 됐습니다. 그후 우리나라에서는 섭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든 온도라는 의미로 섭씨가 됩니다. 화씨 온도는 섭씨 온도보다 18년 앞선 1724년에 탄생합니다. 섭씨 온도에 익숙한 우리에게 낯선 화씨 온도는 특별한 기준이 없는 척도로 생각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탄생 과정에는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물을 기준으로 척도를 나누는 것은 섭씨 온도와 같습니다. 섭씨 온도는 순수한 물이 어는 온도를 0도로 정했습니다. 하지만 화씨 온도는 당시 인간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차가운 온도를 0도로 정하게 됩니다. 겨울철 빙판길에 소금이나 염화 칼슘 등을 뿌리면 녹는 것을 떠올려 보세요. 이처럼 이온성 물질은 물의 어는점을 낮춰 더 차가운 온도에서 물이 얼 수 있도록 작용합니다. 염화 암모늄을 최대 농도로 물에 녹인 포화용액을 만들어 얼어붙는 온도를 화씨 0도로 정합니다. 그리고 순수한 물의 어는 온도를 30도, 사람의 체온을 90도 척도로 설정합니다. 이것은 다니엘 파렌하이트(Daniel Fahrenheit)가 고안한 것입니다. 이후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파렌하이트는 화룬하이, 한자 표기로는 화륜해(華倫海)가 됐습니다. 그후 우리나라에서는 화씨 온도로 불리게 됐습니다. 이같이 온도 체계는 덥고 추운 정도를 누구나 알아보고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어 아주 매력적입니다. 그렇다면 온도는 언제 누가 처음 생각해 냈을까요? 온도의 발명가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과학자입니다. 천칠백일년, 만유인력의 법칙과 고전 역학 등 위대한 업적을 남긴 아이작 뉴턴(Issac Newton)이 처음 제안했습니다. 당시에는 온도라고 하지 않고 열도(Gradus caloris)라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뉴턴이 창안한 열에 대한 척도라는 의미로 뉴턴도(°N)라 이야기합니다. 물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를 0°N, 물이 끓기 시작하는 온도를 33°N로 정해 두 기준 사이를 여러 개로 나눠 척도를 만든 것입니다. 이후에도 다양한 온도 체계가 등장했습니다. 화씨 온도의 근간이 되기도 했던 뢰머 온도(°Rø)는 빛의 속도를 측정했던 천문학자 올레 뢰머(Ole Rømer)가 만들었습니다. 소금물의 어는점을 0도, 물의 끓는점을 60도로 정했습니다. 뢰머라는 이름은 나묵(羅默)으로 전해져 우리나라에서는 나씨 온도로 불리게 됐습니다. 또한 알코올 온도계를 발명했던 르네 레오뮈르(René Réaumur)는 열씨 온도를 만들었습니다. 열오미이라는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죠. 얼음의 녹는점을 0도, 물의 끓는 점을 80도로 정했습니다. 프랑스 천문학자 조제프 니콜라 드릴(Joseph-Nicolas Delisle)이 고안한 드릴 온도도 있습니다. 물의 끓는점을 0도, 물의 어는점을 150도로 정해 차가울수록 온도가 높아집니다. 그밖에 웨지우드도(Josiah Wedgwood 고안), 랭킨도(William John Macquorn Rankine 고안) 등이 있습니다. 32도가 빙판길이라며 놀라던 김씨는 무사히 겨울여행을 마칠 수 있겠죠? 김씨는 더이상 미국 일기예보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섭씨’의 ‘씨’가 알파벳 ‘C’가 아닌 ‘김씨’의 ‘씨’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이처럼 이름에는 많은 정보와 역사가 숨겨져 있습니다.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던 단어에 ‘왜?’라는 질문을 던져 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질문으로 과학을 파헤쳐 매력적인 지식을 얻어온 것처럼 말이죠. 이를 알게 된 김씨의 머릿속엔 또 다른 질문이 떠오릅니다. “언젠가 내가 새로운 온도 체계를 만든다면, 그 온도 체계가 ‘김씨 온도’로 불리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