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디스플레이는 나날이 화려하게 진화합니다. 디스플레이에서 놀랄 정도로 다양한 밝기와 색상을 연출하는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디스플레이를 확대경으로 보면 수백만 개의 규칙적 구조물이 화면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이를 화소(pixel)라고 합니다. 하나의 화소는 빨강, 파랑, 초록의 빛을 방출하는 부화소(subpixel)로 나뉩니다. 우리가 감상하는 영상은 수많은 색으로 이뤄져 있지만, 이를 연출하는 주인공은 고작 셋인 셈입니다. 인간은 빛을 감지해 세상을 파악합니다. 눈에 들어오는 빛의 밝기와 색상으로 사물을 구분하고, 움직임과 입체감을 감지하죠. 인간은 광범위한 전자기파 영역 중 가시광선만 볼 수 있습니다. 뉴턴의 프리즘 실험이 밝힌 것처럼 가시광선은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으로 구분됩니다. 파동의 일종인 빛은 파장으로 분류됩니다. 가시광선에서 파장이 제일 긴 빛은 빨간색, 파장이 제일 짧은 빛은 보라색입니다. 이 무지개색을 다시 합치면 흰색 빛이 됩니다. 빛을 파장별 세기로 분류해서 나타낸 데이터를 스펙트럼(spectrum)이라 부릅니다. 눈에 들어온 빛은 각막, 수정체, 유리체를 차례로 통과한 후 뒤편의 망막에 있는 시각세포에 의해 감지됩니다. 시각세포에는 밝은 환경에서 밝기와 색상을 구분하는 원추세포(cone cell)와 어두운 환경에서 희미한 빛의 명암을 감지하는 막대세포(rod cell)가 있습니다. 원추세포는 물체의 상이 맺히는 망막의 중심인 중심와, 즉 황반(fovea)에 집중적으로 존재합니다. 반면 막대세포는 황반의 주변부에 높은 밀도로 배치됩니다. 막대세포는 단 한 종류지만, 원추세포는 세 종류나 됩니다. 중요한 건 이 세 원추세포가 받아들이는 빛 감도의 특성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빨강, 초록, 파랑 빛에 대해 각각 최대 감도를 갖는 원추세포를 순서대로 L, M, S라 부릅니다. 이들이 빛으로 자극 받는 비율이 색상을, 자극 받는 강도가 밝기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입사하는 빛이 L과 M 세포를 동시에 자극한다면, 그 빛에는 빨강과 초록 성분이 있는 것입니다. 뇌는 이 빛을 노랑 빛으로 인식합니다. 물론 이건 과도하게 단순화한 설명입니다. 세 원추세포가 느낀 자극은 망막 속 다양한 세포들을 통해 복잡한 신호 처리를 거칩니다. 이후 뇌의 시각 피질로 전달되고 종합적 판단이 이루어집니다. 원추세포가 세 종류라는 사실은 상당히 다른 스펙트럼을 가진 빛이 같은 색으로 느껴지는 원인입니다. 야외 촬영을 나간 감독이 노란색 해바라기를 찍습니다. 해바라기 잎이 노란색인 이유는 잎에서 반사된 햇빛의 스펙트럼에 주로 빨강과 초록 성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TV 화면에 재현된 해바라기가 보내는 빛은 촬영 감독이 촬영한 실제 해바라기의 빛과 같을까요? 당연히 다릅니다. TV의 스펙트럼은 적록청 부화소들이 만든 삼원색 빛을 혼합하기 때문에 스펙트럼의 형상은 달라집니다. 하지만 이 스펙트럼도 빨강과 녹색 빛 위주로 이뤄져 있고, 원추세포 중 L과 M 세포를 주로 자극한다는 점은 같습니다. 즉 스펙트럼이 다르더라도 세 원추세포를 자극하는 정도가 같으면 인간은 동일한 색으로 느낍니다. 이것이 야외에서 보는 다채로운 색상을 디스플레이 화면에서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세 원추세포를 임의의 비율로 자극하는 방법만 찾으면 인간이 감지하는 빛의 색상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세 원추세포의 감도가 가장 좋은 빛의 삼원색을 적당히 섞으면 인간이 감지하는 색상을 거의 다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디스플레이의 세 부화소가 빛의 삼원색을 방출하는 이유입니다. 인간 눈의 구조와 시각 체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았던 과거에도 빛의 삼원색을 적당히 조합하면 다양한 색을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한 과학자들이 많았습니다. 20세기 초 국제조명위원회는 색상을 수로 표현할 수 있는 국제 표준을 제안했고, 현재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x, y 색좌표로 구성되는 색도도(chromaticity diagram)가 있습니다. 디스플레이 화소 내 삼원색 빛을 섞어 재현할 수 있는 색상의 영역을 색역(color gamut)이라 합니다. 색역이 넓을수록 디스플레이 화면의 색감이 풍부해집니다. 색역을 넓히는 대표적 방법은 스펙트럼의 폭이 좁아 단색광에 근접한 광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디스플레이 기술은 더 얇고, 더 크고, 더 선명한 화면을 구현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더 풍부한 색감을 재현하며 색역을 꾸준히 확대해 왔죠. 액정표시장치(LCD)처럼 백라이트를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는 백라이트의 광원을 개선함으로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디스플레이는 새로운 유기물질을 채택함으로써 보다 순수한 빛의 삼원색을 내고자 했습니다. 오늘날 디스플레이의 부화소에서는 빛의 삼원색만 나옵니다. 미래의 디스플레이에는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 색상을 낼 수 있는 부화소가 자리잡을지도 모릅니다. 그만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색상의 대부분을 디스플레이 화면에 구현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이런 면에서 디스플레이의 미래는 풍부한 가능성의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