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에서 본 지구는 대륙 대부분이 짙은 초록색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도심의 회색 빌딩과 도로에 익숙한 우리 눈에도, 이 초록빛 풍경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지구 곳곳의 광활한 지역에는 다양한 식물들로 뒤덮여 있고, 이들을 먹고 사는 수많은 초식동물들도 함께 살아갑니다. 이들은 매일같이 식물을 뜯어먹지만, 시간이 지나도 초록 지대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약 초식동물이 식물을 전부 소비하는 날이 온다면, 세상은 갈색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왜 세상은 여전히 녹색일까요? 세상이 녹색으로 보이는 직접적인 이유는 식물의 엽록체 때문입니다. 엽록체는 광합성을 통해 에너지를 생산하며, 이를 통해 식물은 스스로 영양분을 만들어내죠. 광합성에 필요한 에너지는 태양에서 오고, 이를 흡수하는 색소가 엽록소입니다. 엽록소는 빨간색과 파란색 빛을 주로 흡수하고 녹색 빛은 반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식물을 녹색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단순한 색의 이유 너머에, 훨씬 더 복잡한 생태학적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세상은 왜 녹색인가?', 이 질문은 1960년 생태학자 넬슨 헤어스톤(Nelson Hairston Sr., 1917~2008)과 동료들이 제기했습니다. 이 질문의 본질은 "왜 초식동물은 식물을 모두 소비하지 않는가?"입니다. 실제로 사막메뚜기(Schistocerca gregaria)가 대규모로 발생한 지역에서는 식생이 파괴되어 녹색이 거의 사라집니다. 하지만 지구 전체를 놓고 보면 이런 현상은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대부분 지역에서 초식동물이 꾸준히 식물을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식생은 녹색을 유지하고 있죠. 이 현상은 두 가지 조절 메커니즘으로 설명됩니다. 하나는 하향식 조절(top-down control), 다른 하나는 상향식 조절(bottom-up control)입니다. 하향식 조절은 포식자가 초식동물을 잡아먹어서 초식동물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식입니다. 반면 상향식 조절은 식물이 스스로 초식동물에게 먹히지 않도록 방어 전략을 사용하여 초식동물의 개체 수를 조절하는 방식이죠. 헤어스톤과 동료들은 초식동물에 의해 식물이 사라지지 않은 이유는 포식자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하향식 조절을 검증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간단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녹색식물, 초식동물, 포식자로 이뤄진 생태계에서 포식자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만약 하향식 조절이 옳다면, 포식자가 사라진 지역에서는 초식동물이 급격히 증가하여 식물을 모두 소비해야 합니다. 영국의 한 산악지대에서 진행된 실험을 살펴봅시다. 연구자들은 울타리를 쳐서 양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지역과 양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한 지역을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양이 접근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식물이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반면 양이 풀을 뜯을 수 있는 지역에서는 풀들이 짧아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즉 초식동물의 영향이 분명히 있었지만 식물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이후 야생동물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포식자의 유무에 따라 식물의 양과 조성은 달라졌지만 초식동물이 식물을 전부 없애 버리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포식자가 있는 곳에서는 초식동물 개체수가 적어 다양한 풀들이 번성했지만, 포식자가 없는 곳에서는 초식동물이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풀부터 먹어치워서 결국 맛없거나 독성이 있는 식물들만 남게 되었죠. 이처럼 하향식 조절은 식생의 구성을 변화시키지만, 초식동물이 모든 식물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초식동물이 식물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식물 스스로의 방어전략에 있습니다. 상향식 조절이죠. 식물은 동물처럼 도망치거나 싸울 수 없지만, 세 가지 방어 전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물리적 방어로, 가시나 딱딱한 외피를 통해 초식동물의 접근을 막습니다. 둘째는 화학적 방어로 독성 화학물질을 생성하여 섭식을 방해합니다. 셋째는 영양적 방어로 영양물질의 함량을 조절하여 초식을 제한합니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전략은 화학적 방어입니다. 식물은 대사 과정에서 피톤치드, 카페인, 니코틴, 모르핀, 타닌 같은 이차대사산물(secondary metabolite)을 만들어냅니다. 이런 화합물은 초식동물에게 독성이 있거나 맛이 없어 섭취를 피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죠. 또한 식물은 질소 함량을 의도적으로 조절하여 초식동물의 섭식을 유도하기도 하고 방어하기도 합니다. 식물은 단백질의 주성분인 질소 함량이 높을수록 영양가가 높고 맛도 좋아진다는 원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죠. 꽃이나 열매처럼 번식과 종자 분산을 위해 동물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질소 함량을 높여 맛있게 만들어서 동물이 꽃이나 열매를 먹도록 유인합니다. 한편 잎이나 줄기는 광합성과 구조 지지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므로 먹히면 식물에게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은 일부러 질소 함량을 낮춰 맛없고 영양가 없게 만듭니다. 생물량(biomass) 데이터는 이러한 상향식 조절의 중요성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 모든 식물의 생물량은 약 450기가톤 탄소(GtC)인 반면, 모든 동물의 생물량은 2기가톤 탄소에 불과합니다. 즉, 지구의 모든 동물을 합쳐도 식물 생물량의 0.44%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죠. 이 수치는 초식동물이 소비하는 식물의 양은 극히 일부이며, 식물은 다양한 방어 전략을 통해 초식을 제한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듀크대학교의 생태학자 스튜어트 핌(Stuart Pimm, 1949~) 교수는 이 현상을 간단히 요약했습니다. "초식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세상은 가시투성이이고 맛이 없다." 도망칠 수 없는 식물은 초식동물에 대항하여 가시를 세우고, 독을 품고, 영양소를 조절하여 스스로 방어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오늘도 초록으로 푸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