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북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뜻밖의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강한 폭풍으로 인해 한 화물선에서 노란색 오리 장난감(플로티; Floatees) 약 2만 8,800개가 바다로 쏟아져 나온 것이죠. 사고 이후, 수년 동안 전 세계 곳곳의 해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해안으로 떠밀려온 플로티를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양의 해류를 연구하던 해양학자 커티스 에비스마이어(Curtis Ebbesmeyer, 1943~)는 태평양으로 떠내려온 장난감의 움직임을 연구했습니다. 장난감 오리가 전 세계 해류의 흐름을 보여주는 생생한 자료가 된 것입니다. 이 사건은 '플렌들리 플로티(Friendly Floatees)'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해류의 존재와 그 복잡성을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닷물이 어디서 와서, 어느 경로를 따라 움직였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깊은 바다에 머물러 있었는지를 알아보려면, 단순한 장난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해류의 속도와 방향을 측정할 수 있는 관측장비들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일부 과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화학 추적자(chemical tracer)’라는 화학적인 분석 도구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바닷물에는 다양한 화학 성분이 녹아 있는데, 이 중 일부 원소들의 농도와 동위원소 비율은 해수의 움직임, 섞임, 그리고 생물학적 작용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성분을 분석하면 바닷물의 출처, 이동 경로, 그리고 고립된 시간까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원소가 화학 추적자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먼저, 그 기원과 공급 경로가 명확해야 하고, 바닷물에 들어온 시점과 양을 비교적 정확히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분석 방법이 간단하고 적은 시료로도 정밀한 측정이 가능하면 더욱 유리하지요. 미국의 해양화학자 하몬 크레이그(Harmon Craig, 1926~2003)는 화학 추적자를 크게 네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습니다. 이 기준은 해수 내에서의 반응성, 방사성 여부, 시간에 따른 변화 가능성, 공간적 보편성입니다. 첫 번째 기준 반응성을 살펴볼까요? 여기서 반응성이란 바닷물 속에서 추적자의 농도가 그대로 유지되는지, 아니면 화학 반응이나 생물의 활동에 따라 달라지는지 여부를 일컫습니다. 바닷물 속에서 변화하지 않고, 오직 물의 움직임만을 따라 이동하는 성분을 우리는 ‘보존적 추적자(conservative tracer)’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해양 속에서 반응을 하거나 분해되어 농도가 달라지는 성분은 ‘비보존적 추적자(non-conservative tracer)’라고 하죠. 보존적 추적자에는 헬륨(He), 네온(Ne), 아르곤(Ar) 같은 불활성 기체가 있습니다. 반면, 용존 산소(DO: Dissolved Oxygen)나 영양염류(질산염, 인산염 등)는 생물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 농도가 달라지는 비보존적 추적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비보존적 추적자 중 하나는 용존 산소입니다. 표층수는 대기와 접촉하며 산소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산소 농도가 높습니다. 하지만 수심이 깊어지면 유기물이 분해되면서 산소가 소비되고, 외부로부터 보충도 어려워지므로 농도가 줄어듭니다. 그 대신 영양염은 증가하는데, 이 두 값은 레드필드 비(Redfield ratio)라는 일정한 비율(탄소:질소:인=106:16:1)로 서로 대응합니다. 따라서 두 성분을 함께 분석하면 유기물의 분해 정도와 수괴의 이동 경로를 추정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기준은 해수 속 성분의 시간적 변화 특성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정한 속도로 붕괴하여 양이 점점 줄어드는 물질을 '방사성 동위원소(radioactive isotope)'라고 하고, 반대로 장기간 농도나 성질이 유지되는 물질은 '안정 동위원소(stable isotope)'이라고 부릅니다. 방사성동위원소의 양이 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half-life)는 원소마다 다릅니다. 따라서 방사성 추적자를 해수 연구에 활용할 때는 반감기가 중요합니다. 반감기가 너무 짧으면 바닷물의 흐름을 이해하기 전에 물질이 모두 붕괴되어 사라져버리고, 너무 길면 시간에 따른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해수 연구에 적합한 방사성 추적자는 적절한 시간 범위의 반감기를 가져야 합니다. 방사성 추적자의 예로는 탄소-14가 있습니다. 이는 대기 중 질소-14가 우주선과 반응해 생성되며, 이산화탄소 형태로 대기와 해양 사이를 오갑니다. 대기와 직접 접촉하는 표층수는 대기 중 탄소-14와 유사한 탄소-14의 농도를 포함하지만, 심층수로 내려가면 대기와의 접촉이 사라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방사성 붕괴로 농도가 감소합니다. 이 원리를 이용하면 오래된 심층수일수록 탄소-14 농도가 낮다는 사실을 통해 물의 나이와 이동 경로를 추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70년대 미국의 GEOSECS(Geochemical Ocean Sections Study) 프로젝트에서는 전 세계 해양에서 고해상도 탄소-14 데이터를 수집하여, 심층수가 약 1,000~2,000년 주기로 순환한다는 ‘해양 컨베이어 벨트’ 이론을 뒷받침했습니다. 이 외에도, 짧은 기간 동안 해양으로 유입된 인위적으로 생성된 물질들을 화학 추적자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핵실험이나 산업 활동으로 인해 바다에 들어간 인공 화합물이 이에 해당합니다. 대표적으로 1960년대에 대기권 핵실험에서 생성된 삼중수소와 탄소-14, 세슘-137, 그리고 지금은 국제적으로 생산이 중지된 염화불화탄소(CFCs) 등이 있지요. 이들은 일정 시점에 한정된 양이 바다로 유입된 덕분에 시간과 공간의 단서를 제공합니다. 특히 CFCs는 해양 대기 교환을 추적하는 데 널리 활용되며, 현재까지도 유용한 지표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화학 추적자를 활용하면 단순히 바닷물이 어디서 왔는지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떤 경로를 따라 이동했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생물화학적 변화가 있었는지를 세밀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마시는 물 한 모금이, 수천 년 전 극지방의 얼음 속에 갇혀 있다가 지구를 돌고 돌아 이곳에 도달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닷물 속 화학 성분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은, 바로 지구의 시간과 순환을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