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주변을 보면 다리에 굵고 꼬불꼬불한 혈관이 튀어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리가 무겁고 아프거나, 붓고 가려울 수도 있죠. 심지어는 밤중에 쥐가 나거나 경련이 생기기도 하고 피부가 검게 변하거나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이는 하지정맥류(varicose vein)라 부르는 혈관질환입니다. 다리에 있는 혈관에 피가 쌓이면서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죠. 정확한 원인이 알려지진 않았으나 노화, 운동 부족, 오래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경우 등이 발병 위험을 높인다고 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흔히 ‘혈압’이라는 단어를 ‘뒷목을 잡을만한’ 상황에 연결 지어 사용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혈압은 혈액의 움직임을 일으키는 생리적 힘을 의미하죠. 이는 혈액순환의 시작점인 좌심실에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점점 약해집니다. 좌심실에서 출발한 혈류의 평균혈압은 대략 100 $\mathrm{mmHg}$ 정도입니다. 대동맥과 소동맥을 거쳐 우리 몸 곳곳에 퍼진 모세혈관 직전까지 가면 30 $\mathrm{mmHg}$ 정도로 낮아지죠. 그러다 혈액이 모세혈관을 지나 다시 말초정맥으로 모였을 때의 평균혈압은 처음의 $\frac{1}{10}$ 수준인 10 $\mathrm{mmHg}$ 정도까지 떨어집니다. 이 정도의 혈압으로 대정맥을 거쳐 우심방까지 도달해야 하는데요. 누워 있을 때라면 몰라도 오래 앉아있거나 서 있는 자세로는 순환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역류하지 않으면 다행이죠. 하지정맥 혈액이 역류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은 하체 근육을 활용해 혈관을 짜주는 것입니다. 걷기, 앉았다 일어나기 등의 움직임을 통해 의도적으로 근육의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는 것이죠. 율동적인 정맥 압박을 발생시켜 혈액의 이동을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근육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혈액이 역류하는 것은 막을 수 있어도 정방향으로 흐르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중력 때문에 혈액이 계속 아래로 향하기 때문이죠. 하지정맥 혈액이 정방향으로 흐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판막(valve)’이라는 구조가 수행합니다. 판막은 나비 날개 또는 위가 넓고 아래는 좁은 주머니 모양의 질기고 매끈한 구조이죠. 판막은 한쪽 방향으로만 열리고 반대쪽에서 압력이 오면 살짝 겹치듯 닫히기 때문에 혈액의 역류를 막아줍니다. 보통 판막이라 하면 심장에 있는 구조를 말하지만 정맥 곳곳에도 존재합니다. 하지정맥의 위 아래에 존재하는 판막을 상상해보세요. 종아리 근육이 이완된 상태에서는 정맥이 확장되고 혈액이 들어와 가득찹니다. 이때 종아리 근육이 수축하면 위 아래 판막 사이의 정맥 지름이 감소하여 정맥압이 증가합니다. 이 힘은 아래쪽 판막을 닫게 하지만 위쪽 판막은 열리게 하여 혈액을 심장 방향으로만 흐르게 하죠. 이어서 다시 근육이 이완되면 위쪽 판막이 닫혀서 더 위에 있는 혈액이 내려오는걸 막습니다. 그 동안에 정맥에는 다시 혈액이 진입할 수 있게 되지요. 의도적으로 하체 근육을 긴장-이완시키는 동작은 바로 이 과정을 돕는 것입니다. 하지정맥류는 바로 이 판막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판막이 잘 닫히지 않아 혈액의 역류를 제대로 막지 못하기 때문에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죠. 17세기 초, 윌리엄 하비(William Harvey, 1578~1657)는 객관적인 관찰과 논리적 설명이라는 과학의 기본 관점을 적용하여 혈액이 순환한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 핵심적인 관찰들 중 하나는 정맥의 혈류 방향에 대한 실험 증거였죠. 피검사를 할 때 고무줄로 팔꿈치 위쪽을 적당히 묶어주면 정맥이 파랗게 부풀어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하비는 이처럼 자신의 팔을 묶은 후 부풀어 오른 정맥을 눌러보며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그림의 B와 C 사이 임의의 위치를 꾹 눌러보았죠. 이때는 그가 누른 위치와 B 사이의 혈액만 사라졌습니다. 다음으로 하비는 이 상태를 유지하며 다른 손가락으로 B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손가락의 압력을 유지하며 A까지 올렸다가 떼어보았죠. 그랬더니 B에서 A까지의 혈액도 사라졌다가 다시 B까지만 혈액이 차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정맥혈액은 심장 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으며, 판막이 그 역류를 막는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죠. 해부학적 관찰이 생리학적 이해로 이어지는 역사적 무대의 현장을 제공한 것입니다. 프랑스 의학자 장 페르넬(Jean Fernel, 1497~1558)은 해부학의 선구자인 동시에 ‘생리학(Physiology)’의 의학적 개념을 정립한 사람입니다. 그는 ‘해부학과 생리학의 관계는 지리학과 역사학의 관계와 같다. 해부학은 사건이 일어난 무대를 묘사한다’고 말했죠. 이처럼 ‘정맥 판막과 혈액순환’이라는 주제는,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은 따로 떼어놓고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일깨워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