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매일 ‘면역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문고리를 잡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음식을 먹는 동안에도 수많은 세균과 바이러스 같은 병원성 미생물이 우리 몸에 닿습니다. 그때마다 이들을 막아내는 방어전이 바로 면역반응입니다. 면역반응은 다양한 면역세포가 복잡하게 협력하는 정교한 시스템입니다. 예를 들어, 각각의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특이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B 세포가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감염이 일어나면 해당 미생물에 특이적인 B 세포가 선택적으로 활성화되고, 항원 특이적인 항체(antibody)가 생성되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작용을 방해하거나 이들의 제거를 촉진시키죠. 또 세균과 바이러스에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T 세포도 다양하며, 역할도 나뉘어 있습니다. 이 중 CD8 이라는 마커(marker)를 발현하는 킬러 T 세포(CD8$^+$ T cell)는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직접 제거하죠. CD4 마커를 발현하는 도움 T 세포(CD4$^+$ T cell)는 B 세포나 대식세포(macrophage) 등 다른 면역세포들의 작용을 도와 면역반응을 조율합니다. 그런데 이런 면역세포들이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남’에게만 반응한다면 좋겠지만, 만약 내 세포나 단백질인 ‘나’에게도 반응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 발생하는 질병이 자가면역질환(autoimmune disease)입니다. 다행히 대부분의 사람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세포들은 ‘남’만 공격하고, ‘나’에게는 반응하지 않거든요. 이렇게 자기(self)에 대해 면역반응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몸은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나’와 ‘남’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면역관용의 첫 단계는 흉선(가슴샘, thymus)에서 시작됩니다. T 세포는 처음에 전구 T 세포(pro-T cell)라는 미성숙한 상태로 골수(bone marrow)에서 생성된 후 흉선으로 옮겨져 본격적인 훈련을 받으며 성숙한 T 세포로 발달합니다. 이 훈련의 핵심은 ‘자기(self)’를 구별하는 선별 과정이죠. 흉선에 들어온 전구 T 세포들에는 ‘남’을 공격할 세포와 ‘나’를 공격할 세포가 섞여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모두 그대로 성숙한 T 세포로 발달한다면 자가면역질환을 일으키겠죠. 하지만 다행히도 흉선에서는 ‘나’에 대해 반응하는 세포들은 선별을 통해 모두 제거되고, ‘남’에 대해 반응하는 세포들만 살아남아 성숙한 T 세포가 됩니다. 이렇게 흉선에서 일어나는 자기 인식의 선별 과정을 ‘중추 면역관용(central immune tolerance)’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면역세포가 ‘아군과 적군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는 단계인 겁니다. 하지만 중추 면역관용은 항상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나’를 공격할 수 있는 T 세포가 선별 과정을 지나 성숙한 T 세포가 된 뒤 말초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세포가 활성화되면 자가면역질환이 생길 수 있겠죠.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몸에는 이걸 막는 두 번째 방어선이 존재합니다. 바로 ‘말초 면역관용(peripheral immune tolerance)’입니다. 이 단계의 핵심 주인공이 ‘조절 T 세포(regulatory T cell; Treg)’입니다. “말초 면역관용의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조절 T 세포의 발견”, 이것이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핵심 업적입니다. 수상자 가운데 한 사람인 사카구치 시몬(Shimon Sakaguchi, 1949~)은 1995년에 조절 T 세포를 발견하여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서 CD4 마커와 CD25 마커를 모두 발현하는 T 세포(CD4$^+$CD25$^+$ T cell)가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조절 T 세포임을 처음으로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면역학 연구에서는 특정 세포를 가려낼 마커(marker)를 찾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커가 있어야 특정 세포를 분리할 수도 있고 그 특성을 규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사카구치 교수는 T 세포가 없는 생쥐에 CD25$^+$ T 세포를 제거한 CD4$^+$ T 세포(CD4$^+$CD25$^-$ T cell)만 주입하면 자가면역질환이 유발되고, CD4$^+$CD25$^+$ T 세포를 함께 넣어주면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조절 T 세포가 말초 면역관용을 유지하며 자가면역질환을 막는 핵심 억제자임을 실험으로 입증한 순간이었습니다. 또 다른 수상자인 프레드 램즈델(Frederick J. Ramsdell, 1960~)과 메리 브룬코(Mary E. Brunkow, 1961~)는 언뜻 보면 조절 T 세포와는 관련이 없는 듯한 다른 연구를 하고 있었죠. 이들은 자가면역질환이 저절로 생기는 생쥐, 이름하여 스커피 생쥐(scurfy mouse)를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이 생쥐에게는 $\textit{Foxp3}$라는 유전자가 결손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여 2001년 논문으로 발표하였습니다. 사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IPEX 증후군(Immune dysregulation, Polyendocrinopathy, Enteropathy, X-linked)이라는 희귀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textit{Foxp3}$ 유전자 결손임이 밝혀졌죠. 그리고 2003년, 사카구치 교수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완성합니다. 그는 자신이 1995년 발견했던 조절 T 세포의 핵심 조절 전사인자가 바로 $\textit{Foxp3}$임을 증명하여 발표했죠. 일반 T 세포에 $\textit{Foxp3}$ 유전자를 넣어주자, 조절 T 세포처럼 면역을 억제하는 기능을 한다는 데이터를 보여준 것입니다. $\textit{Foxp3}$는 면역관용의 분자적 “스위치”, 곧 조절 T 세포의 마스터 조절 전사인자(master regulator)였던 거죠. 이로써 CD4$^+$CD25$^+$$\textit{Foxp3}$$^+$ 조절 T 세포가, 말초 면역관용을 통해 자가면역을 억제하고 면역의 균형을 지키는 핵심 원리임이 밝혀졌습니다. 이후 조절 T 세포는 면역학 연구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조절 T 세포의 불균형은 다양한 질병과 큰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자가면역질환이나 이식거부반응(allograft rejection) 환자에서는 조절 T 세포가 부족한 경우가 많고, 반대로 암(cancer) 환자의 종양(tumor) 조직에서는 조절 T 세포가 과도하게 많아 면역 감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절 T 세포의 불균형을 교정하여 자가면역질환, 이식거부반응, 암을 치료하려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스스로를 공격하지 않는 법, 그것이 바로 생명이 살아남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 아닐까요?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기초 원리를 연구하다 보니 새로운 세포를 발견하였고, 그 세포를 연구하다 보니 질병의 기전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