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바지는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의류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35억 벌의 청바지가 생산된다는 놀라운 통계도 있는데요. 전 세계 인구 82억 명을 기준으로 하면, 2.5명당 한 벌씩 새로운 청바지가 만들어지는 셈입니다. 이는 단순히 수치상으로도 놀라운 생산량인데, 실제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청바지를 일상복으로 즐겨 입습니다. 평균적으로 한 사람이 2년에 한 벌씩 청바지를 구매한다고 가정하면, 청바지의 평균 수명인 3.5년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옷장에는 한두 벌의 청바지가 있을 것입니다. 청바지(jeans)는 내구성이 강한 면직물인 데님으로 만든 바지를 뜻하며 보통 청색 인디고 염료로 물들입니다. 청바지는 1873년, 미국에서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 1829~1902)와 제이콥 데이비스(Jacob Davis, 1831~1908)가 발명했습니다. 사실 이 두 사람이 특허로 출원한 것은 청바지의 원단이 아니라 주머니의 모서리와 바지의 앞쪽 여밈 부분의 밑단 등 힘이 가해지면 쉽게 손상되는 부분을 보강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실제로 등록된 특허의 이름 또한 “주머니 여밈의 개선(Improvement in Fastening Pocket-Openings)”입니다. 이 특허의 핵심인 디자인은 재단사였던 데이비스가 했고, 데님 원단을 공급했던 스트라우스는 사업 파트너로 참여했습니다. 이렇게 내구성이 크게 향상된 작업복은 캘리포니아에서 발견된 금광으로 사람들이 몰려든 골드 러시(Gold Rush; 1848~1855) 시기에 광부, 카우보이, 노동자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청바지가 인기를 끈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진한 파란색은 작업 중에 묻는 흙먼지나 얼룩을 잘 가려주었기 때문이죠. 특허권을 가진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 컴퍼니(Levi Strauss & Co)는 금속 박음핀, 리벳이 달린 청바지를 대량 생산하면서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었고, 청바지는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염료는 물이나 기름에 녹으면서 섬유에 색을 입히는 물질입니다. 청바지의 파란색은 바로 인디고(indigo) 염료에서 옵니다. 유기 분자인 인디고는 대칭 구조라 모든 원소가 짝수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디고는 자연에서는 인디고페라(indigofera) 식물의 잎에서 인디칸이라는 물질을 추출해 얻습니다. 이 인디칸(indican)을 가수분해해서 얻은 인독실(indoxyl)을 발효시키면 '백청'이라는 노란색 물질이 생성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백청 용액에 섬유를 담근 뒤 공기에 노출시키면 산화되어 인디고가 된다는 거예요. 이중 결합으로 연결된 인디고의 분자 구조가 주황색 파장의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선명한 파란색으로 보이는 것이죠. 색은 물리학과 화학 모두에서 중요한 연구 주제입니다.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연금술사)였던 뉴턴은 프리즘 실험을 통해 태양광을 일곱 가지 색으로 분류했는데요.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인디고 청색을 넣은 것은 단순히 숫자 7을 맞추기 위해서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인디고는 최소 6000년 전부터 인류가 사용해 온 귀중한 염료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직물을 파란색으로 물들일 수 있는 유일한 염료였기 때문에 "푸른 금"이라 불릴 만큼 값이 비쌌죠. 하지만 인도와 남미의 식민지에서 대규모 재배가 시작되면서 점차 대중화되었습니다. 합성 인디고는 1878년에 독일 화학자, 아돌프 폰 베이어(Adolf von Baeyer, 1835~1917)가 처음 만들었고, 1897년에 종합화학회사인 바스프(BASF)에서 ‘순정품 바스프 인디고’를 공장 규모로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대중화에 불이 붙게 됩니다. 인디고는 대표적인 배트(vat) 염료입니다. 여기서 ‘배트’는 염료를 담아 두는 큰 통(vat)에서 온 이름입니다. 인디고는 그 자체로는 물에 녹지 않아 염료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분자 구조를 살펴보면, 양쪽 끝에 물을 싫어하는 소수성의 벤젠 고리가 있고, 가운데에는 탄소-탄소 이중 결합으로 연결된 오각 고리가 있습니다. 이 오각 고리에는 카보닐기와 아민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죠. 이런 대칭 구조 때문에 극성이 없고, 분자들이 반데르발스 힘으로 쌓여 만드는 고체는 물에 잘 녹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염기성 환경에서 환원제로 처리하면 옅은 색의 류코인디고(leucoindigo) 음이온이 되어 물에 녹습니다. 이 류코인디고는 음전하를 띤 산소 원자와 아민기를 통해 면 섬유의 하이드록시기와 수소 결합을 형성해 표면에 고정됩니다. 염색액에서 천을 꺼내면 공기 중의 산소가 산화시켜 다시 인디고로 되돌려놓죠. 그 결과, 인디고 분자는 섬유 깊숙이 흡수되어 강한 화학 결합을 만들지는 못하고 대부분 표면에 약하게 흡착됩니다. 따라서 옷을 입고 생활하면서 생기는 마찰이나 세탁 과정에서 조금씩 떨어져 나갑니다. 그래서 청바지는 입는 사람의 체형, 행동 습관에 따라서 자주 마찰되는 부분에 고유의 ‘워싱 패턴’이 생깁니다. 마치 청바지를 구분하는 지문처럼 말이죠. 앞으로 여러분의 옷장에 반드시 걸려 있을 청바지를 입을 때는 색 바랜 선, 물 빠진 무릎에 숨겨진 화학을 한번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청바지는 산화 반응, 환원 반응, 분자와 표면 사이의 상호작용과 같은 다양한 원리를 통해 푸른색이 입혀지고 빠지죠. 한때는 금과 맞먹는 가치가 있었던 작은 분자의 패셔너블한 과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