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때로는 심각한 재해를 일으키지만, 지진학자에게는 직접 도달할 수 없는 행성 내부를 파악하는 유일무이한 도구입니다. 마치 의사가 청진기에서 들리는 소리로 인체 상태를 파악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지진이 발생하면 행성 내부에서 에너지가 방출되면서 지진파가 생성됩니다. 이 지진파는 행성이라는 매질을 통해 전파되면서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지진파는 행성의 내부 구조, 특히 중심부인 핵의 유무와 그 구조를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지진학자는 밀도에 따른 지진파의 속도 차이나 지진파가 특정층에서 반사되거나 굴절되는 현상을 분석해 행성의 층상 구조를 파악하죠. 이 지진파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실체파는 매질의 입자를 진동시켜 행성 내부에 전파됩니다. 실체파는 파동의 진행 패턴에 따라 P파(종파)와 S파(횡파)로 구분됩니다. P파의 경우, 파동의 진행 방향과 매질의 진동 방향이 동일합니다. 이때 매질은 압축과 팽창을 반복해 부피가 변합니다. 반면 S파는 파동의 진행 방향과 매질의 진동 방향이 수직입니다. 이때 매질은 파면에 수평인 방향으로 진동합니다. 따라서 매질의 형태는 변하지만 부피는 변하지 않습니다. 파의 진행 방향과 진동 방향이 서로 수직을 이루며 앞에 있는 매질을 밀기만 합니다. 이러한 S파의 특별한 전파 특성 때문에 특이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기본적으로 지진파는 매질의 탄성 반응으로 발생하기에, 매질이 원래 상태로 복원돼야 파동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S파가 전파되려면, 변형된 매질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려는 힘, 즉 전단강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기체나 액체는 파동의 진행 방향과 평행한 압축강도만 가질 뿐, 전단강도는 갖지 않습니다. 따라서 기체나 액체는 본질적으로 S파를 전달할 수 없고, 전단강도를 가진 고체만 S파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핵은 이러한 P파와 S파의 서로 다른 전파 특성을 통해 발견됐습니다. 1906년, 영국 지질학자 리처드 올덤(Richard Oldham, 1858~1936)은 지구 내부를 통과한 P파의 진폭 변화를 분석해 지구의 핵을 최초로 발견했습니다. 이 핵은 고체 상태로 지구 반지름의 0.4배였습니다. 지구 중심부에서 지진파 전파 속도가 줄어드는 구간을 발견해, P파가 관측되지 않는 암영대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이후 1914년, 미국 지진학자 베노 구텐베르크(Beno Gutenberg, 1889~1960)는 지진파의 전파 속도 변화를 분석해 ‘구텐베르크 불연속면(Gutenberg discontinuity)’을 발견했습니다. 이 특별 경계면에선 P파의 속도가 급격히 변화했고, 반사파가 나타났습니다. 구텐베르크는 고체 상태인 핵의 크기가 지구 반지름의 0.54배라는 것도 발표했습니다. 1936년, 덴마크 지진학자 잉에 레만(Inge Lehmann, 1888~1993)은 P파 암영대의 특정 지역에서 약한 P파가 관측된다는 점으로부터 새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P파가 핵을 통과할 때 특정 경계면에서 속도가 크게 증가한 것입니다. 이 경계면을 레만 불연속면(Lehmann discontinuity)이라 하며, 이 경계를 기준으로 액체 상태인 외핵과 고체 상태인 내핵을 구분합니다. 액체 외핵의 반지름은 2900 km, 고체 내핵의 반지름은 1405 km였습니다. 그렇다면 달과 화성의 내부 구조는 어떻게 돼 있을까요? 1960년대 미항공우주국(NASA) 아폴로 계획 때 수집된 월진 데이터를 통해 달 내부에 액체 상태의 핵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후 2011년과 2023년 최신 분석 기술로 1960년대 월진 데이터를 분석해 고체 상태의 내핵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죠. 2023년 발표된 모델에 따르면 달의 외핵 반지름은 약 362 km, 내핵의 반지름은 약 258 km입니다. 내핵의 크기는 달 전체 반지름의 약 15 %라고 합니다. 화성의 경우, 2018년 NASA 인사이트 미션을 통해 수집된 화진 자료를 통해 핵의 존재가 밝혀졌습니다. 핵의 반지름은 1780~1810 km로 화성의 절반 수준이며, 거의 액체 상태입니다. 과학자들이 다른 행성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리 행성 지구의 기원과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까지 지진파로 내부 구조가 추정된 천체는 지구, 달, 화성이 유일합니다. 이는 S파가 고체 매질만을 통과한다는 단순한 특성으로 얻게 된 최대 성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