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 역학은 19세기 말, ‘흑체 복사'라는 문제를 탐구하던 물리학자들의 고민에서 출발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흑체 복사 문제는 양자 이론의 초석이라고 할 플랑크 법칙의 발견으로 해결되었고, 현대 물리학의 기본이라고 할 ‘양자'라는 개념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럼 흑체라는 게 무엇인지, 양자라는 개념은 무엇이며 어떻게 흑체 복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 알아볼까요?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는 빛을 흡수하고 방출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빛을 흡수만 하고 방출하지 않으면, 흡수된 빛의 에너지는 물질의 온도를 높입니다. 따라서 물질이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흡수한 모든 빛의 에너지를 도로 방출해야 합니다. ‘흑체(blackbody)'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빛을 완벽하게 흡수하는 가상의 물체입니다. 흑체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은 한 번 흑체에 흡수된 빛이 결국 모두 방출된다는 뜻이지요. 실제 흑체는 검은색이 아니라 밝게 빛납니다. 흑체 복사라면 검정 물체를 연상하기 쉬운데 이건 ‘흑체’라는 단어가 주는 오해입니다. 흑체가 어떤 온도 $T$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흑체가 흡수와 방출을 계속하고 있는 빛도 역시 $T$라는 온도에서 열평형 상태를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빛이 열평형 상태에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빛은 그 파장으로 성격이 구분됩니다. 빨주노초파남보란 색깔은 해당하는 빛의 파장 차이가 색깔 차이로 드러나는 겁니다. 각 파장마다 빛이 갖고 있는 에너지도 다릅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 빛을 만드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보라색 빛 만드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많습니다.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1844~1906)이 만든 통계역학의 법칙에 따르면 어떤 에너지 값에 해당하는 빛의 양은 볼츠만(Boltzmann) 분포를 따릅니다. 열평형 상태에서 존재하는 빛의 양은 에너지가 클수록 적어지고 에너지가 작을수록 많아집니다. 속이 빈 금속 상자를 만들고, 작은 구멍 하나를 뚫습니다. 그런 다음 금속 상자의 온도를 높이면, 금속 자체가 가열되어 밝게 빛나기 시작합니다. 이때 상자 내부에서도 빛이 납니다. 이 빛은 안쪽 벽을 이리저리 반사하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겨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틈새로 흘러나온 빛을 파장별로 분석하는 분광기란 기계가 있습니다. 평평하고 잘 가공된 유리판에 촘촘히 금을 그으면 빛의 파장에 따라 회절각이 달라져서 어떤 색깔의 빛이 얼마나 많이 들어왔는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분광기를 사용하면 흑체에서 나오는 빛의 양을 각 파장별로 측정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독일의 과학자들은 분광기 실험을 통해 특정 온도에서 파장별로 흑체가 방출하는 빛의 양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이 결과를 그 당시 알려진 통계역학, 전자기학 등의 지식으로 이해하려 했지만, 한계가 있었습니다. 긴 파장 영역에서 측정한 빛의 양은 레일리-진스 법칙(Rayleigh-Jeans law)과 잘 맞았고, 짧은 파장 영역에서는 빈의 법칙(Wien's law)이 실험 결과를 잘 설명했지만, 모든 파장 영역에서 다 잘 맞는 이론이 없었습니다. 고전 물리학으로는 흑체 복사를 완벽히 설명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때 막스 플랑크(Max Planck, 1858-1947)가 대담한 제안을 했습니다. 금속에서 나오는 빛이 특정 파장을 가지면 그 빛의 에너지는 다음과 같이 $\frac{hc}{\lambda}$의 정수배로만 주어진다는 가정이었습니다. $\frac{hc}{\lambda}$,$\frac{2hc}{\lambda}$,$\frac{3hc}{\lambda}$ 여기서 $c$는 빛의 속도, $h$는 이전 물리학에서 사용된 적 없는 새로운 숫자였습니다. 빛의 에너지가 이렇게 띄엄띄엄 어떤 양의 정수배로만 존재한다는 가정을 빛에너지의 ‘양자화’ 가정이라고 합니다. 플랑크는 이 가정을 사용해 빛의 양을 다시 계산해 봤습니다. 적절한 $h$ 값을 사용하자 모든 파장 구간에서 이론과 실험 결과가 거의 완벽히 일치했습니다. 여기 등장한 상수 $h$가 바로 플랑크 상수입니다. 빛이 이렇게 양자화된 에너지를 가져야만, 흑체 복사 실험을 설명할 수 있었기에, 이후 물리학자들도 그 원인을 궁금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부터 차츰 생각이 발전하며 만들어진 것이 바로 양자 역학입니다. 흑체는 엄밀히 말해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물체입니다. 물리학은 종종 이렇게 이상적인 상황을 가정하고 문제를 풀어냅니다. 그래야 문제가 정확히 풀리고 이해가 잘 될 수 있죠. 덕분에 우리는 양자 역학이란 엄청난 자연의 진리를 찾아냈습니다. 양자 역학의 출발점은 흑체 복사였습니다. 당시 존재하던 분광학 기계의 정교함도 흑체 복사 문제를 푸는 데 큰 역할을 했죠. 분광학은 뉴턴 시절부터 시작된 빛에 대한 탐구의 산물입니다. 이처럼 과학은 오랜 시간 다져진 기술과 지식이 어느 순간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발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