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 지적생명체탐사(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SETI) 프로그램이 한창인 미래의 어느 날, 인류는 극적으로 외계 문명의 신호를 포착합니다. 외계인과의 통신에 성공한 인류는 먼저 수는 어떻게 세는지, 몇 진법을 쓰는지, 소수와 원주율을 알고 있는지 등 여러 수학적 개념을 비교해 봅니다. 사실 수학은 순수하게 논리로부터 나온 산물이라 외계인도 같은 수학을 사용할 것이 자명합니다. 서로가 같은 수학을 사용하는 것을 확인한 인류는 다음으로 서로의 물리학을 비교합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빛의 속도(c)의 크기를 외계인에게 전달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지구에서는 이 값을 \[c = 2.99792458 \times 10^{8}~\text{m/s}\]라 씁니다. 이를 외계인에게 정확하게 알려주려면 1 m는 어느 정도 길이인지, 1초는 어느 정도 시간 간격인지를 설명해야 하죠. 1 m는 눈으로라도 보여줄 수 있지만, 1초를 설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외계인에게 1초를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요? 하루를 24시간으로 정의하면, 1시간의 $\frac{1}{60}$이 1분이고, 그 $\frac{1}{60}$이 1초입니다. 얼핏 외계인도 그 뜻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구의 하루가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외계인에게 직접 망원경으로 지구의 자전을 관찰해 보라 할 수도 없고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외계인에게 정확한 1초의 정의를 알려줄 수 있을까요? 바로 지구인이나 외계인이나 똑같은 값으로 측정이 가능한 자연 현상을 이용하면 됩니다. 이를 기준으로 국제도량형위원회가 정한 1초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초란 절대온도 0도에서 세슘-133 원자의 바닥 상태에 있는 초미세 준위의 에너지 차로 발생하는 전파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할 때 소요되는 시간을 말한다.” 1초의 정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세슘-133 원자의 바닥 상태에 있는 초미세 준위의 에너지 차”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쉬운 설명을 위해 수소 원자를 기준으로 보겠습니다. 수소 원자 속 전자는 원자핵 주변의 특정 궤도를 돕니다. 그 궤도 중 에너지 준위가 가장 낮은 상태를 바닥 상태라 부릅니다. 바닥 상태인 수소 원자 속 전자가 갖는 에너지는 -13.6eV(전자볼트) 정도입니다. 지표면에 있는 공의 위치 에너지를 0이라 할 때, 우물 바닥에 빠진 공의 위치 에너지가 음수인 것과 같죠. 그런데 이 -13.6eV라는 값은 전자의 스핀에 따라 조금 달라집니다. 우선, 전자의 스핀 방향과 전자가 공전하는 궤도 각운동량의 방향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 정도가 작기 때문에 이를 미세구조(Fine structure)라 부릅니다. 건물을 멀리서 보면 위치에너지가 층 단위로만 있을 것 같지만, 속을 보면 계단, 진열장 등이 있어 미세하게 다른 위치에너지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초미세구조(Hyperfine structure)’는 미세구조보다 더 작은 에너지 준위 차를 말합니다. 핵과 전자의 스핀 상호작용 때문에 발생하죠. 핵과 전자의 스핀 방향이 서로 반대일 땐 낮은 에너지 상태, 나란할 땐 높은 에너지 상태가 됩니다. 이렇게 발생하는 에너지 준위의 차이를 초미세구조에 의한 에너지 준위 차라 부릅니다. 세슘 원자도 수소 원자와 비슷합니다. 바닥 상태의 세슘 원자가 가지는 초미세구조에 의한 에너지 준위 차는 0.000038eV로 매우 작습니다. 이 초미세구조로부터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진동수는 9,192,631,770 Hz입니다. 이는 전형적인 GHz(기가헤르츠) 대역의 전파입니다. 실험실에서 공진기를 통해 쉽게 잡아낼 수 있는 신호죠. 사실 이 정도로 작은 에너지 준위 차에서 나오는 전자기파를 측정하려면 세슘 원자를 절대온도 0도로 낮춰 놓고 실험해야 합니다. 실온에서 열에너지가 초미세구조의 에너지 차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자로 1mm를 재려고 하는데, 수전증이 있어 손을 cm 단위로 덜덜 떨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냉각한 세슘 원자를 마이크로파 공진기에 넣고 서서히 주파수를 변화시키면 9,192,631,770 Hz에서 공진이 일어납니다. 바로 이때가 초미세구조와의 공진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지만 1960년대까지는 1초의 정의가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초미세구조에 의한 진동수를 정밀하게 측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단위 시간당 전자기파가 몇 번 진동하는지를 세고 싶은데 시계가 엉터리라 정확히 셀 수 없었습니다. 1967년 국제도량형위원회는 역사적인 발상의 전환을 합니다. 부정확한 시간 단위를 고집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원자의 초미세구조에서 발생하는 전자기파가 9,192,631,770회 진동할 때까지의 시간을 1초로 정의하자는 것이었죠. 이에 따라 전 세계의 물리학자뿐만 아니라 외계인까지도 똑같은 1초를 계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자, 이제 어떻게 1초를 정의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되셨나요?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왕 정할 것이라면 왜 굳이 9,192,631,770회라는 어려운 수치로 정했을까? 사실 어떤 수로 정의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외우기 쉬운 숫자로 정했다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1초와 다른 값이 될 것입니다. 이는 커다란 불편함을 초래할 수 있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전통적인 1초와 가장 근접한 진동수로 1초를 정하게 된 것입니다. 학문적 편의를 위해 다른 것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