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의 암석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 가운데 지구에만 바다가 남아 있습니다. 다른 암석행성들이 과거에 물을 잃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비슷한 조건의 지구 역시 같은 결과를 맞았을 법합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구에만 바다가 남아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각 행성의 환경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구와 화성의 차이점을 먼저 살펴볼까요? 두 행성에서는 각각 산소가 만들어지는 속도가 매우 다릅니다. 이를테면 화성에서는 산소 생성 속도가 매우 느립니다. 행성 표면의 풍화작용과 화산활동으로 새로운 암석이 노출되면, 그 속의 철이 생성된 산소와 결합하여 모두 소모됩니다. 따라서 화성 대기에는 산소가 축적되지 않습니다. 반면 지구에서는 생명체가 대량의 산소를 생성하여 암석의 철이 소모할 수 있는 양을 훨씬 초과했습니다. 그 결과 지구 대기 중에 산소가 축적될 수 있었습니다. 이 산소가 바로 지구 바다의 생명줄이 되었습니다. 태양의 자외선이 바닷물을 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로 나뉘는데, 가벼운 수소는 우주로 달아나려 합니다. 하지만 대기 중에 충분한 산소가 있으면, 달아나는 수소가 다시 산소와 결합하여 물이 됩니다. 화성처럼 대기에 산소가 부족하면 수소가 계속 우주로 빠져나가 결국 물을 잃게 되지만, 지구는 이 과정을 통해 바다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대량의 산소를 만들어낸 작은 생명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박테리아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박테리아가 지구의 바다를 구한 것이죠. 이 박테리아는 햇빛 에너지를 이용하여 이산화탄소와 황화수소로 양분을 만들었는데, 이 광합성 과정에서 부산물로 산소가 배출되었습니다. 이렇게 생성된 산소는 물 분해로 생긴 산소와 함께 지구에 축적되기 시작했습니다. 암석과 바닷물 속의 철 성분만으로는 이 많은 산소를 모두 소모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대기 중에 산소가 남게 되었습니다. 대기 중에 산소가 있으면 바다는 손실되지 않습니다. 자외선으로 분해된 수소들이 지구 중력권 밖으로 달아나기 전에 다시 산소와 결합하여 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구도 수소를 잃습니다. 매년 30만 톤의 수소가 우주로 방출되어 약 300만 톤의 물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이런 식으로 45억 년이 지나면 지구 바다의 1%가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의 바다를 구해낸 박테리아들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었을까요? 다른 암석 행성들에는 없는 이런 특별한 생명체가 유독 지구에서만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생명 자체의 기원을 추적해봐야 합니다. 1920년대 존 버든 샌더슨 홀데인(John Burdon Sanderson Haldane, 1892~1964)과 알렉산드르 이바노비치 오파린(Aleksandr Ivanovich Oparin, 1894~1980)이 각각 제시한 이론에 따르면 지구의 초기 대기는 목성과 비슷하여 메테인, 암모니아, 수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그로부터 원시 수프가 형성되었고, 번개 에너지를 이용한 화학반응을 통해 생명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이 이론은 1950년대 스탠리 로이드 밀러(Stanley Lloyd Miller, 1930~2007)와 해럴드 클레이턴 유리(Harold Clayton Urey, 1893~1981)의 실험으로 검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생명이 화학적으로 합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지구 생명이 대기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연유로 현재 우주생물학자들은 다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바로 바다 깊은 곳에서 생명이 시작되었을 가능성입니다. 태초의 바다를 살펴봅시다. 바다 한가운데에는 주변 분지보다 2,500~3,000m 솟아오른 산맥인 중앙해령이 있습니다. 해령 가운데에는 열수분출구가 존재합니다. 바닷물이 해저 지각의 틈새로 스며들었다가 마그마를 만나 고온의 수증기가 되어 솟구쳐 오르는 곳입니다. 황 성분이 많아 강산성을 띠고, 구리, 금, 아연 같은 중금속들이 녹아 있는 400℃까지 오르는 극한 환경입니다. 빛도 들어오지 않고 산소도 없으며, 압력과 온도가 매우 높은 이 극한 환경에서도 생명체들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우주생물학자들은 바로 이곳에서 지구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중앙해령에서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발생했을 수 있지만,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들은 그중 단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진화했을 것입니다. 지구 생명체의 기본 구조가 모두 같기 때문입니다. 조상 생물이 서로 다른 종류로 나뉘기 직전의 단계를 공통조상(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 LUCA)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최초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추적하던 생물학자들은 하나의 모순에 직면했습니다. 유전정보 흐름의 기본 법칙인 분자생물학의 중심원리(Central Dogma)에 따르면, 생명체 유전정보는 'DNA→RNA→단백질'의 방향으로 흐릅니다.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프랜시스 해리 컴프턴 크릭(Francis Harry Compton Crick, 1916~2004)이 1958년에 제안한 이 개념에 따르면 단백질로 만들어진 정보는 다른 단백질이나 핵산으로 전달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생명활동을 관장하는 단백질 효소를 만들려면 DNA나 RNA 같은 핵산이 필요한데, DNA→RNA 과정과 RNA→단백질 과정 역시 단백질이 주관한다는 점입니다. 단백질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단백질이 필요하다는 순환논리에 빠진 것입니다. 이 문제는 1981년 토머스 로버트 체크(Thomas Robert Cech, 1947~)가 효소처럼 작용하는 RNA 분자인 리보자임(ribozyme)을 발견하면서 해결되었습니다. 이 발견으로 생명이 RNA에서 시작되었다는 RNA 기원설이 정립되었고, 바다 깊은 곳에서 시작된 최초 생명체들이 결국 광합성 박테리아로 진화할 수 있었던 과정이 설명되었습니다. 토머스 체크는 리보자임을 발견한 공로로 1989년 노벨화학상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초기 박테리아들이 광합성을 통해 대량의 산소를 생산하지 않았다면, 지구 또한 화성처럼 물을 잃었을 것입니다. 138억 년 전 빅뱅으로 우주가 탄생하고, 46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된 후, 38억 년 전 마침내 바다가 생겼습니다. 다른 행성의 바다는 사라졌지만, 지구에는 바다가 남았습니다. 작은 박테리아들이 만든 산소가 지구 전체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생명은 지구 환경을 변화시켰고, 변화된 환경은 다시 생명을 보호하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