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체세포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있습니다. 침팬지는 48개, 개는 78개, 벼는 24개, 옥수수는 20개로 모두 짝수 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죠. 그러나 인간의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는 23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습니다. 왜 고등 생물은 짝수 개의 염색체를 갖고 있을까요? 그리고 왜 생식세포에는 염색체가 절반만 들어 있을까요? 이 질문을 이해하려면 이배체와 반수체, 그리고 감수분열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생물이 염색체를 쌍으로 갖고 있진 않습니다. 예를 들어, 대장균 같은 세균은 대부분 하나의 원형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왜 고등 생물은 염색체를 2배수로 가지고 있을까요? 쉽게 말하자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더라도 다른 정상 유전자가 기능을 대신해 문제없이 생존할 수 있도록 진화했기 때문입니다. 수명이 긴 고등 생물은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모든 유전자를 쌍으로 갖는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염색체를 쌍으로 갖는 생물을 ‘이배체(diploid)’, 염색체를 한 벌씩만 갖는 생물을 ‘반수체(haploid)’라 합니다. 한편 세균 같은 단세포 원시 생물들은 매우 빠르게 증식하기 때문에 돌연변이가 생겨도 치명적인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개체가 훨씬 많아서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죠. 따라서 굳이 이배체로 진화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면 수명이 긴 고등 생물은 유전적 안정성을 위해 이배체로 진화한 것이 종을 보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죠. 현미경으로 인간의 염색체를 관찰해 봅시다. 상염색체인 1번부터 22번 염색체, 그리고 성염색체인 X, Y 염색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쌍으로 존재합니다. 내 몸을 구성하는 염색체 46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입니다. 어머니에게서 받은 23개의 염색체와 아버지에게서 받은 23개의 염색체가 합쳐진 것이죠.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받은 염색체는 사실상 같은 유전 목록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와 아버지에게서 한 개씩 받은 1번 염색체는 동일한 유전자 목록과 유전자 배열 순서를 가지고 있죠. 즉, 사람의 1번 염색체 유전자 목록과 배열 순서는 동일합니다. 그러나 두 염색체의 DNA 염기서열은 완전히 동일하진 않습니다. 각 사람마다 DNA 염기서열이 대략 1천 염기쌍 당 하나 정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염기서열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유전자 목록과 유전자 배열 순서가 동일한 염색체 쌍을 ‘상동 염색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생식세포에는 염색체가 절반만 있는 걸까요?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는 감수분열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감수분열은 염색체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세포분열 과정입니다. 세포분열이 연속적으로 두 번 일어나, 46개의 염색체를 가진 세포가 23개의 염색분체를 가진 반수체 생식세포로 변하죠. 그러나 수정이 이루어질 때, 각 생식세포가 가진 23개의 염색체가 결합해 다시 46개 염색체를 가진 수정란이 됩니다. 이렇게 생식세포에 염색체 수가 절반만 있기 때문에 생물은 세대를 거듭해도 염색체 수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지요. 대장균 같은 미생물은 한 개의 염색체만으로도 잘 생존합니다. 생물은 모든 유전자를 쌍으로 갖고 있지 않아도 생존할 수 있다는 얘기죠. 그렇다면 반수체로 살아가는 고등 생물도 있을까요? 네, 제법 많은 생물들이 반수체로 살아갑니다. 대표적인 예가 이끼입니다. 이끼는 거의 대부분의 조직이 반수체지만, 이파리에서 솟아오른 작은 갈색 고깔, 즉 포자낭만 이배체 조직입니다. 이끼는 생활사의 대부분을 반수체로 살아가고, 생식이 필요할 때 일부 조직만 이배체가 되는 것이죠. 이보다 조금 더 진화된 형태의 식물인 고사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먹는 고사리의 이파리는 이배체이지만, 고사리 숲 아래쪽에서 발견되는 초록색 껌딱지 같은 것은 반수체 다세포 조직입니다. 고사리 역시 반수체와 이배체를 오가는 생활사를 가지며, 이를 세대교번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고등 식물 역시 세대교번을 합니다. 고등 식물의 꽃가루와 밑씨는 사실 반수체 다세포 조직입니다. 반수체의 잎 조직에 이배체의 포자낭이 기생하는 형태의 이끼와 달리, 고등 식물은 반수체가 이배체의 조직 위에서 기생하는 형태인거죠. 이와달리 동물은 일반적으로 세대교번을 하지 않습니다. 고등 동물의 경우, 감수분열로 생성된 반수체 세포는 정자나 난자가 되어 직접 생식에 참여하지요. 2000년 초,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24개 염색체’의 DNA 염기서열을 밝혀냈다고 발표했습니다. 인간은 23쌍, 즉 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는데, 왜 24개일까요? 이는 성염색체 때문입니다. 인간은 22쌍의 상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상염색체 쌍은 동일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반면, 성염색체인 X 와 Y 염색체는 서로 다른 유전 정보를 가지고 있죠. 따라서 전체 유전체를 분석하기 위해서 상염색체 22개와 X, Y 염색체를 합해서 총 24개의 염색체만 분석한 것입니다. 이렇게 생식세포에 염색체가 절반만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