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냉전 시기는 미국과 소련이 다방면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던 시대였습니다. 두 국가는 국력과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우주 경쟁, 군비 경쟁 등 다양한 경쟁을 펼쳤는데요. 그 중엔 지구 중심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놓고 벌어진 시추 경쟁도 있었습니다. 그 경쟁 결과, 세상에서 가장 깊은 구멍이 생겼습니다. 시추 경쟁의 시작은 1958년 멕시코 과달루페 섬 근처에서 시작된 미국의 ‘모홀 프로젝트(Project Mohole)’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해저 시추를 통해 지구 맨틀에 도달해서 맨틀의 샘플을 채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자금난, 기술 문제 등으로 인해 해저 183 m 밖에 시추하지 못하고, 1966년 프로젝트가 종료됩니다. 1970년 5월 24일, 소련은 바렌츠해 근처 노르웨이 국경 바로 외각에 있는 무르만스크에서 시추를 시작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구멍으로 알려진 이 구멍은 ‘콜라 수퍼딥 시추공(Kola Superdeep Borehole)’입니다. 이 프로젝트는1979년까지 약 9.5 km를 파는 데 성공해 세계에서 가장 깊은 시추공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1989년 25억 년 나이의 암석을 뚫고 12,262 m(12.2 km) 깊이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해저인 마리아나 해구의 깊이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산의 높이보다 큰 숫자입니다. 대륙 지각의 평균 두께인 40 km의 약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깊이죠. 하지만 지구 반지름이 6,371 km라는 것을 고려하면, 지구 중심까지 거리의 약 0.2 % 만을 판 것에 불과합니다. 왜 더 깊이 시추하지 못했을까요? 약 4.5 km 깊이에서는 높은 온도로 인해 암석이 점성도가 높은 플라스틱처럼 거동해 시추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12 km에 도달하면 더 이상 시추 장비가 고온, 고압 환경을 견디지 못하게 되죠. 1992년까지 계속 시추를 시도하며 더 깊게 들어가려고 노력했지만, 1989년에 도달한 깊이보다 더 깊이 파고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2005년, 시추 현장은 공식적으로 폐쇄됐고, 구멍이 봉쇄됐습니다. 과학 시추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비교적 얕은 시추는 대개 화석 연료나 광물 자원을 추출하기 위해 이뤄집니다. 반면 깊은 시추는 지구에 대한 중요한 데이터를 얻고자 실시하죠. 이를 통해 지진과 화산의 원인인 지각 내부의 응력 변화나 마그마 활동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거의 환경과 기후 변화를 분석해 미래 지구 환경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구와 생명체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됩니다. 콜라 수퍼딥 시추공을 통해서도 여러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첫째, 기존의 지온구배 모델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지구 깊이에 따른 온도 상승 비율을 지온구배(geothermal gradient)라고 합니다. 지표면 부근의 평균 지온구배는 1 km 깊이 당 30 ℃인데, 지구 심부로 들어갈수록 구배율이 감소합니다. 콜라 수퍼딥 시추공에서 약 3 km 깊이까지는 예상 지온구배와 비슷한 값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선 예상했던 것과 다른 값이 나왔습니다. 시추공의 최종 깊이인 약 12 km 깊이에서의 예상 온도는 100 ℃였는데, 실제 측정된 온도는 180 ℃였습니다. 이로 인해 전 지구의 지온구배를 재검토하고 수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시추한 암석에서 생물학적 활동이 발견된 것 또한 중요한 성과입니다. 7 km 깊이에서 20억 년 전에 활동한 단세포 생물의 화석 수십 개를 발견했습니다. 높은 압력과 온도 조건에도 불구하고 놀라울 정도로 온전한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콜라 수퍼딥의 노하우로 다양한 시추 프로젝트가 실행됐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미국 산안드레스 단층 시추 프로젝트인 SAFOD(San Andreas Fault Observatory)와 일본 난카이 해구 시추 프로젝트인 NanTroSEIZE(Nankai Trough Seismogenic Zone Experiment)가 있습니다. 이 두 프로젝트 모두 지진이 일어나는 단층과 매우 가까운 지점까지 시추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콜라 수퍼딥 시추공 사례를 통해 맨틀 깊이까지 수직으로 시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특정 깊이 이상에선 수평으로 시추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구멍은 콜라 수퍼딥 시추공보다 얕지만, 더 깁니다. 이들 프로젝트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지진이 발생하는 단층대의 구조지질학적 특성을 분석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단층에 가장 인접한 부근에서 지진 전후로 유의미하게 변화하는 물리량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근거리에서 실시간으로 관측한 물리적, 화학적 데이터를 통해 실험실에서나 컴퓨터 모델링으로는 알기 어려운 과정을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콜라 수퍼딥 시추공 프로젝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도 전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시추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 탐사, 지질학적 연구, 자원 탐사, 에너지 개발 등 그 목적도 다양하죠. 이를 통해 지구 내부의 비밀에 한발짝 더 다가가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