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뒤를 이은 미국과 소련(러시아) 간의 냉전은 과학기술의 진보를 불러왔습니다. 군비 경쟁으로 인해 핵폭탄 등이 개발되면서 핵 기술이 발전했고, 우주 경쟁으로 로켓 기술과 우주 탐사 기술이 발전했죠. 하지만 전쟁과 냉전은 다른 과학 분야의 발전도 불러왔는데요. 그 분야는 바로 지구과학입니다. 1950년대 초만 하더라도 오늘날 대부분이 받아들이는 ‘판구조론’의 근간이 되는 ‘대륙이동설’을 지지하는 사람은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20년간, 대륙이동설은 물론 판구조론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발견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발견이 쏟아진 주요 계기는 다름아닌 전쟁이었습니다. 냉전시대에는 전 세계에 핵무기 개발 경쟁이 일어났습니다. 1945년 미국에서 인류 최초의 핵 실험이 성공한 지 불과 4년 만인 1949년에 소련도 첫 핵 실험에 성공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흥미롭게도 군대와 지구과학자 사이에 계약 관계가 성립됩니다. 군대는 적국의 잠수함 위치를 파악해야 했고,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얻어야 했으며, 적국이 핵 실험을 하는지 감시해야 했습니다. 국방부의 막대한 예산 지원하에 지구과학자들은 군대에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판구조론 확립에 기반이 된 자료를 수집하게 됩니다. 국방부는 세계대전 당시 개발한 장비를 개조해 연구에 사용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그 장비는 바로 해저 음향탐지기와 자력계입니다. 이 두 장비는 어떻게 활용됐을까요? 첫째, 음향탐지기를 이용해 해저면의 높낮이를 파악했습니다. 해양 탐사선에서 음향탐지기로 해저에 음파를 발사하면, 음파가 해저면에 반사돼 되돌아옵니다. 이때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면 높낮이를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국방부는 잠수함 작전을 위해 고해상도의 해저 지형도가 필요했습니다. 지구과학자들은 수백 차례의 항해를 거듭하며 음향탐지기를 통해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해저지형도를 작성했습니다. 둘째, 자력계로 해양지각 암석의 고지자기를 측정했습니다. 땅속 마그마가 식고 굳는 과정에서 자성이 있는 광물은 생성될 당시 지구 자기장 방향으로 자화됩니다. 탐사를 통해 채취한 암석 샘플들을 보면, 해령을 중심으로 지구 자기장의 방향이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해저의 자기극성은 마치 얼룩말 무늬처럼 양극과 음극이 규칙적으로 변화하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암석 샘플의 절대 연대를 측정한 결과, 해양 지각은 1년에 약 1~6 cm씩 확장된다는 것 또한 밝혀졌습니다. 이 밖에도 1963년 체결된 ‘부분적 핵 실험 금지 조약’의 이행 여부를 상호 감시하기 위해 지진 관측망이 구축됩니다. 핵폭탄 실험을 지진파로 감지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지만, 지구물리학자들은 관측망에 기록된 지진 신호를 분석해 지구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데도 사용했습니다. 전쟁과 냉전 중 얻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륙이동설은 ‘해저확장설’이라는 새로운 가설로 발전합니다. 1963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수 해리 헤스(Harry Hess, 1906~1969)는 광범위한 해저산맥의 존재, 해양지각의 나이 변화, 지자기 패턴과 같은 증거를 통해 해저확장설을 제안합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때 해군 대령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해저 음향탐지기를 탐사선에 탑재해 가설 설립을 위한 자료를 축적했습니다. 해저확장설은 해령에서 상승한 마그마가 굳어 생성된 해양지각이 해령을 중심으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퍼져 나가다가 해구에서 맨틀 속으로 침강해 소멸된다는 가설입니다. 이 가설은 대륙이동설과 판구조론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후 해저확장설이 발전했고, 이는 판구조론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판구조론은 지구 표면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판으로 구성돼 있고, 판의 움직임이 지진이나 화산과 같은 지질 현상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렇게 지구과학은 냉전의 시기를 거치며 크게 발전했습니다. 군대의 개입은 자유분방한 연구를 어렵게 하기도 하지만, 국방부의 막대한 지원 덕분에 지구과학자들은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현대 지구과학의 핵심인 판구조론이 완성됐고, 이는 지구의 지각 구조와 변동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