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한여름, 쪽동백나무 옆을 걷다가 신기한 풍경을 마주쳤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매우 넓은 쪽동백나무잎마다 동그랗게 오려져 있었습니다. 마치 누가 모든 잎에 동전을 갖다 대고 오려낸 것처럼, 매끈하게 잘려 있었죠. 언뜻 보면 어떤 곤충의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애벌레나 애벌레의 배설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잎의 잘려 나간 부분이 너무나 반듯했죠.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쪽동백나무 옆에서 한참을 지켜보던 끝에 드디어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마리의 벌이었습니다. 잎을 오려내고 있는 그 순간, 사건 현장을 딱 들켜버린 것이죠. 이 벌은 큰 턱으로 나뭇잎을 정교하게 오려 낸 뒤, 다리로 동그랗게 말아 들고 유유히 날아갔습니다. 나뭇잎을 오려 나르는 벌이라니! 잎꾼개미라면 몰라도, 벌은 처음 봅니다. 이 벌의 정체는 가위벌과(Megachilidae)에 속하는 ‘장수가위벌($\textit{Megachile pseudomonticola}$)’입니다. 보통 벌이라고 하면 꿀을 만드는 ‘꿀벌’이나, 꿀벌을 사냥하는 ‘말벌’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꿀벌이나 말벌은 여왕벌을 중심으로 군체를 형성하는 ‘사회성 벌(social bee)’이죠. 하지만 장수가위벌은 이들과 달리 혼자서 생활하며 둥지를 만드는 ‘단독성 벌(solitary bee)’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등 아시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북미와 유럽으로 확산되어 외래종으로 정착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장수가위벌은 왜 굳이 나뭇잎을 오려가는 걸까요? 새끼에게 먹이로 주려고 오려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로 새끼를 위한 ‘육아방(brood cell)’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장수가위벌 암컷은 고목의 구멍이나 갈대 줄기, 배수구 등 다양한 원통형 공간을 찾아 둥지를 틉니다. 오려온 나뭇잎을 원통형으로 잘 엮어서 총알 모양의 육아방을 만들고, 그 안에 꽃가루와 꿀을 섞은 화분단자(pollen ball)를 만듭니다. 각 육아방에 화분단자를 충분히 채워 넣은 후, 그 위에 알을 하나만 낳습니다. 알을 낳고 나면 나뭇잎으로 마개를 만들어 입구도 막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며 한 구멍안에 여러 개의 육아방을 만듭니다. 육아방 하나를 만드는 데에는 오려낸 쪽동백나무 잎이 약 25장이 필요합니다. 입구 마개를 만드는데만 따로 6~10장 정도의 잎을 더 사용합니다. 이 모든 일은 암컷 혼자 해냅니다. 즉, 나뭇잎을 오려가는 범인은, 정확히 장수가위벌 암컷이군요! 구멍이 있는 산란장에서 여러 개의 육아방을 만들고 산란이 끝나면 암컷은 생을 마감합니다. 이렇게 암컷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육아방 안에서 부화한 애벌레는 어미가 준비해 둔 화분단자를 먹으며 자랍니다. 애벌레는 여러 차례 허물을 벗은 뒤 번데기가 되고, 이 번데기 상태로 육아방 안에서 겨울을 납니다. 이듬해 이른 여름이 되면 성충으로 변태하여 세상 밖으로 나와서 새로운 새대를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만든 둥지도 안전하지만은 않습니다. 나뭇잎과 꽃가루 등 육아방을 만드는 재료를 얻기 위해 암컷 가위벌은 수백번 비행해야 하니, 둥지를 비울 수밖에 없죠. 그 틈을 노려, 기생벌들이 일종의 ‘뻐꾸기 전략’을 펼칩니다. 가위벌에 기생하는 기생벌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몰래 침입하여 둥지에 알을 낳거나 장수가위벌의 애벌레에 직접 알을 낳습니다. 기생을 당한 둥지에서는 내년 여름에 장수가위벌 대신에 기생벌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장수가위벌 암컷은 이러한 기생벌들의 기생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암컷은 놀라운 진화적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장수가위벌 어미는 둥지 입구 쪽에는 수컷이 될 알을, 안쪽 깊숙한 곳에는 암컷이 될 알을 낳습니다. 장수가위벌 암컷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인 전략을 사용한 것입니다. 수컷은 짧은 생애 동안 교미만 하면 되니 개체수가 적어도 문제가 적지만, 암컷은 새 둥지를 만들고 알을 낳아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번식 가치가 높은 암컷은 한 마리라도 더 살아남게 하려는, 생존을 위한 진화입니다. 종의 번영을 위한 놀라운 전략이네요. 장수가위벌을 포함한 야생벌들은 자연 생태계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이들은 꽃가루받이를 통해 다양한 식물의 열매 맺기를 돕고, 이는 다시 여러 생명들의 먹이와 서식지가 되어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합니다. 최근에 꿀벌군집 붕괴현상(CCD)으로 양봉 꿀벌의 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야생벌의 가치는 더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들은 꿀벌보다 더 효율적인 수분 매개자로 알려져 있지요.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과일과 채소, 숲과 들의 풍요로움 모두 이 작은 벌들 덕분입니다. 인간 역시 지구 생태계의 일부입니다. 야생벌을 지키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과 자연을 지키는 일입니다. 서식지 보호, 살충제 사용 줄이기, 기후변화 대응 등 적극적인 보호 노력이 그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