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핵세포의 핵은 마치 도라에몽의 '4차원 주머니'처럼 작지만 놀라운 수납력을 자랑합니다. 맨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만큼 좁은 공간에, 2m가 넘는 DNA가 빼곡히 들어가기 때문이죠. 쉽게 말하자면, 야구공 크기의 둥근 주머니 안에, 길이가 20km나 되는 엄청나게 긴 실을 모조리 접어 넣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긴 DNA가 어떻게 그렇게 좁은 세포핵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엄청나게 긴 DNA가 좁은 세포핵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첫번째 이유는, DNA가 매우 가늘기 때문입니다. 가닥으로 이루어진 DNA는 상보적인 염기들이 수소결합으로 붙어 있는 이중나선(double helix) 구조인데, 그 직경은 고작 2 nm 밖에 되지 않죠. 그래서 DNA의 길이는 길어도, 접어서 정리하기엔 아주 좋은 조건을 가진 셈입니다. 여기 매우 가늘지만 엄청나게 긴 실이 있습니다. 이 실을 자르지 않고 작은 상자 안에 넣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무런 도구 없이 시도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실을 꼬는 것입니다. DNA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이중나선 구조로 꼬여 있기 때문에, 완전히 펼쳐져 있을 때보다 훨씬 짧은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중나선 구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좀 더 강력한 압축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젠 도구를 이용할 때입니다. 마치 실패를 이용해 실을 감아서 길이를 줄이는 것처럼 말이죠. 세포 내에서 DNA를 감는 실패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히스톤(histone) 단백질입니다. DNA가 히스톤에 감기면 뉴클레오솜(nucleosome)이라는 작은 구슬 같은 구조가 생깁니다. 각 뉴클레오솜은 146쌍의 염기쌍이 히스톤을 한 바퀴 반 감은 구조입니다. 이렇게 되면 긴 DNA는 규칙적으로 작은 구조물이 반복되는 형태로 변환됩니다. 이중나선 상태에서 146쌍의 염기쌍 길이는 약 50 nm이지만, 뉴클레오솜 한 개의 크기는 약 11 nm에 불과합니다. 즉, 히스톤에 DNA를 감아 뉴클레오솜을 형성하면 전체 길이는 약 5분의 1로 줄어드는 거죠. 이제 DNA는 실뭉치가 아니라, 정돈된 구슬 목걸이처럼 규칙적인 작은 단위로 정리된 셈입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닙니다. 이렇게 형성된 뉴클레오솜들을 더 조밀한 구조로 조직화해야 합니다. 이제는 구슬 목걸이들을 더 조밀하게 뭉쳐야 할 차례입니다. 먼저 뉴클레오솜을 6개씩 묶어 원통형으로 쌓아 올려 염색사(chromatin)를 만들면, 길이를 더 줄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염색사의 직경은 약 30nm에 불과하므로, 실 여러가닥을 꼬아 밧줄을 만들 듯이 수퍼코일링(supercoiling)을 통해 효율적으로 접히면 지름이 10 μm 내외의 세포핵 내부에 충분히 수용될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염색사 형태로 세포핵 내부에 존재하던 DNA는 세포분열기가 시작되면 염색사 자체가 더욱 응축되어 염색체(chromosome)를 형성합니다. 사람은 총 23쌍(46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으며, 세포분열기 중기처럼 가장 응축된 상태에서는 염색체 하나의 너비는 700 nm, 길이는 2~10 μm 정도에 이릅니다. 이렇게 여러 단계에 걸쳐 압축된 덕분에, 이 모든 DNA가 세포핵 안에 깔끔하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죠. 매우 작은 세포핵에 2 m짜리 DNA가 들어갈 수 있는 이유는 뭘까요? 바로 DNA가 길이에 비해 매우 가늘다는 점뿐 아니라, DNA를 순서와 규칙에 맞춰 꼬고 감고 쌓아 올려 체계적으로 수납하는 전략 덕분입니다. 서랍에 아무렇게나 옷가지를 쑤셔 넣으면, 필요한 옷을 찾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생각만큼 옷을 많이 넣을 수도 없습니다. 반면에 좀 귀찮더라도 옷가지를 잘 개켜서 차곡차곡 수납하면, 필요할 때 원하는 옷을 찾기 쉬울 뿐 아니라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옷을 넣어둘 수도 있죠. 세포핵 속에 DNA를 접어 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을 활용적으로 쓰고,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꺼내 쓰기 위해서는 ‘질서 있는 정리’가 핵심이죠. ‘정리’는 공간을 아끼는 기술일 뿐 아니라, 필요한 걸 정확히 찾아내는 능력이기도 합니다. 세포는 이미 그걸 완벽히 해내고 있습니다. 그 정교한 질서 속에, 생명의 힘이 깃들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