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프랑스 생화학자 자크 모노(Jacques Lucien Monod, 1910~1976)와 프랑수아 자코브(François Jacob, 1920~2013)는 대장균의 유전자 조절 방식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대장균이 먹이 종류에 따라 대사 체계를 바꾼다는 것을 밝혔죠. 이 연구에서 눈여겨볼 것은 대장균이 젖당(lactose)보다 포도당(glucose)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도 인간처럼 포도당을 가장 중요한 탄소원이자 에너지원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포도당은 화학적으로 안정하고 양도 많습니다. 그래서 최초의 세포가 대사 핵심 물질로 썼을 것이라는 데는 다른 의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포도당이 어떤 화학적 특성을 갖는지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포도당을 절반으로 깨는 해당과정(glycolysis)은 10단계로 구성됩니다. 첫 두 단계에선 효소가 포도당에 인산기를 붙이고, 이성질체인 과당(fructose)을 만듭니다. 그런데 만약 세포가 포도당 대신 과당을 출발 물질로 사용했다면 초기 반응 단계가 간소화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앞의 두 단계가 사라지고 해당과정을 8개의 반응으로 간소화하면 효소를 적게 만들어도 되겠죠. 그렇다면 세포 물질대사에서 포도당은 과당에 비해 어떤 이점을 가질까요? 이 질문에 가장 설득력 있는 답을 한 사람은 캐나다 생화학자 존 브로스넌(John T. Brosnan)입니다. 브로스넌은 포도당의 알데하이드 작용기가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효소 없이도 단백질이 포도당 같은 단당류와 결합하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죠. 혈당이 높은 당뇨병 환자의 경우, 포도당이 알부민 같은 단백질과 결합하면 인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포도당은 세포 안에서 고리를 이뤄 자신의 알데하이드 작용기를 숨겨야 합니다. 포도당은 열린 상태일 때보다 고리를 이룬 상태일 때 더 반응성이 낮아 더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당은 화학적으로 가까운 갈락토스(galactose)에 비해 열린 상태로 존재하는 비율이 $\frac{1}{10}$에 불과합니다. 탄소가 6개인 케토오스(ketose) 중 가장 풍부한 과당은 열린 사슬 상태로 존재하는 비율이 포도당의 350배 정도에 이릅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프랭클린 번(H. Franklin Bunn)과 폴 히긴스(Paul J. Higgins)는 15종의 단당류와 헤모글로빈이 결합하는 반응의 속도를 분석해 ‘사이언스’에 발표했습니다. 포도당의 알데하이드 작용기는 과당의 케톤 작용기보다 반응성이 높다는 약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용액 안에서 고리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반응성이 줄어들어 안정적인 상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포도당은 과당과 결합해 설탕(sucrose)이 될 때도 반응성이 크게 낮아집니다. 포도당의 알데하이드와 과당의 케톤이 결합 자리를 서로 내놓아서 이런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죠. 이렇게 식물은 설탕을 운반 물질로 사용하면서 불필요한 화학적 잡음을 줄입니다. 이때 포도당이나 과당이 관다발 구조의 리그닌이나 셀룰로스와 반응하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합니다. 포도당을 줄줄이 엮어 저장하는 방식도 다 이런 이유에서 비롯한 것이죠. 동물의 간이나 근육에 저장된 글라이코젠과 감자의 전분 역시 포도당의 반응성을 최대로 줄여 오래 보관할 수 있는 화학적 형태로 바꿉니다. 그러나 이런 멋진 해결책도 단점이 있습니다. 포도당은 저장 용량이 한정되어 있어 다량으로 저장하기에 적절하지 않습니다. 바로 물 때문이죠. 포도당은 주로 글라이코젠 형태로 저장되는데, 간에는 약 100 g, 근육에는 300 g 정도의 글라이코젠이 저장됩니다. 글라이코젠 1 g이 저장되기 위해서 3 g의 물이 필요하니, 많은 양을 저장할 수 없는거죠. 잠을 자느라 밥을 먹지 못하는 동안 뇌에 공급할 포도당은 대체로 간 글라이코젠에서 충당합니다. 어지간해서는 근육 글라이코젠을 쓰지 않지요. 굶는 한이 있어도 먹잇감을 쫓거나 반대로 도망가야 할 때 요긴하게 쓰도록 근육 글라이코젠이 진화해 온 까닭입니다. 오래 굶으면 차선책으로 지방 조직을 사용합니다. 사실 지방은 중장기 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무게당 얻을 수 있는 에너지의 양도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포도당은 그램당 4 kcal, 지방은 9 kcal 만큼의 에너지를 냅니다. 글라이코젠이 물을 함유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에너지 차이는 순식간에 7~8배까지 벌어지겠군요. 하지만 지방산은 많은 에너지를 제공해도, 에너지원으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지방산 산화의 최종 물질인 아세틸-CoA는 미토콘드리아에서 시트르산 회로에 편입되어 에너지 생성에 활용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세틸-CoA는 완전히 산화되어 이산화 탄소가 생성되며, 전자전달계를 통해 ATP를 생성합니다. 이는 호흡의 핵심이죠. 이때 산소가 꼭 필요합니다. 따라서 산소가 없으면 세포는 지방산을 효과적으로 산화할 수 없습니다. 지구 역사에서 산소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방산은 주요 에너지원으로 활용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므로 포도당은 지방산을 비롯한 다른 에너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포도당은 산소가 충분할 때뿐만 아니라 부족할 때도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어, 생존에 유리한 선택이었죠. 또,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세포 내 불필요한 반응을 최소화하고, 체내에서 빠르게 흡수되어 효율적으로 활용됩니다. 무엇보다도 포도당은 물에 잘 녹고 자연에서 쉽게 얻을 수 있어 생명체의 주요 에너지원이 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렇게 포도당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빠르고 믿을 수 있는 원료’로 자리 잡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