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류는 수렵과 채집으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농사를 짓게 되면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확보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모여 살며 농경 사회 문명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만약 인간이 초식동물처럼 풀을 뜯어 먹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문명은 형성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은 풀을 소화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그 이유를 알고 있나요? 그리고 우리가 먹는 곡물, 채소, 과일들이 사실은 풀과 같은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나요? 사실상 풀과 곡물의 성분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섭취하는 동물의 몸에 따라 소화가 다르게 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탄수화물은 탄소, 수소, 산소로 이루어진 유기 화합물입니다. 단당류, 이당류, 다당류로 구분하죠. 대표적인 단당류로는 포도당(glucose)이 있는데 가장 간단한 형태의 당입니다. 생명체의 주요 에너지원이며 탄수화물의 가장 작은 단위체이죠. 이당류는 단당류 두 개가 결합된 형태로 설탕과 엿당이 있습니다. 다당류는 여러 단당류가 결합하여 형성된 생체 고분자로 전분(녹말, starch)과 셀룰로스(cellulose)이 있습니다. 곡물은 주로 전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풀은 셀룰로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전분을 소화할 수 있지만 셀룰로스를 소화하지 못할까요? 정답을 살짝 알려주면 이들의 구조에서 기인하는 물리·화학적 특성 차이 때문입니다. 탄수화물을 비롯한 대부분의 유기화합물은 삼차원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포도당도 삼차원 구조를 가지고 있죠. 이들이 글라이코시드결합(glycosidic bond)으로 반복적으로 결합하여 다당류인 전분과 셀룰로스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이 결합은 수직 혹은 수평 방향에 따라 알파(α) 또는 베타(β) 결합, 2가지 방식이 가능합니다. 셀룰로스는 β-1,4 글라이코시드결합을 통해 포도당들이 수평으로 연결된 긴 선형 구조를 형성합니다. 반면 전분은 α-1,4 글라이코시드결합을 통해 포도당이 수직으로 결합함으로써 계단 모양의 구조를 가집니다. 또한 다당류 분자들은 수소결합(hydrogen bond)과 같은 분자 간 인력으로 겹겹이 쌓입니다. 선형 구조의 셀룰로스는 마치 30 센티미터 자 100 개가 겹쳐져 빈틈없이 촘촘하게 쌓인 것과 같습니다. 반면 전분은 쌓일 때 계단 모양의 모형 100 개가 모인 것처럼 빈 공간이 많아 상대적으로 느슨한 구조를 이룹니다. 그래서 셀룰로스는 빽빽한 구조 때문에 분해가 어렵고, 전분은 비교적 쉽게 분해되고 소화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소화를 한다는 것은 셀룰로스나 전분 같은 다당류를 분해해서 포도당을 얻는 과정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이빨로 음식을 씹어 물리적으로 분해하고, 위액을 통해 화학적으로 분해하죠. 이후 효소를 통해 생물학적으로 다당류를 더 작은 분자로 분해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단단한 구조를 갖는 셀룰로스는 전분에 비해서 물리적, 화학적 분해가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또한 셀룰로스의 생물학적 분해를 위해서는 셀룰레이스(cellulase) 효소가 필요한데 인간에게는 이 효소가 없습니다. 대신, 인간은 전분 분해 효소인 아밀레이스(amylase)를 가지고 있어 전분을 포도당으로 분해하고 이를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셀룰로스는 전분에 비해 물리적, 화학적, 생물학적으로 분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물질입니다. 그렇다면 분해하기 어려운 셀룰로스를 초식동물들은 어떻게 분해할까요? 초식동물들은 되새김질을 통해 음식을 오랫동안 씹어 물리적, 화학적 분해 과정을 더 오래 거칩니다. 그리고 셀룰레이스를 만드는 미생물들과 공생하여 생물학적으로도 풀을 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두 가지 과정을 통해 초식동물들은 풀을 효과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거죠. 우리는 셀룰로스와 전분의 차이를 통해, 단순히 같은 성분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는 물질의 특성과 기능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질의 구조와 결합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이것이 인간과 초식동물의 소화 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알게 되었죠. 이처럼 과학은 우리 주변의 일상적인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단순한 풀 한 포기에도 복잡한 화학적 구조와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숨어 있죠. 앞으로도 주변 현상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탐구하며 그 속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과학은 언제나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킬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