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영상을 멈추고 창밖을 바라보세요. 구름 한 점 없이 맑은가요? 그렇다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멀리 있는 건물이나 산도 잘 보이겠죠. 아니면 혹시 먹구름이나 안개가 잔뜩 끼었나요? 저런, 가까이 있는 건물이나 자동차, 사람도 잘 보이지 않아서 위험하겠어요. 이건 구름이나 공기에 물방울과 먼지가 얼마나 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멀리 있는 물체가 보인다는 건, 그 물체에서 나온 빛이 우리 눈까지 충분히 도달했다는 뜻이죠. 하지만 중간에 물방울과 먼지가 많이 있으면, 빛이 부딪혀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눈까지 빛이 충분히 오지 않거나, 우리 눈을 약간 비켜간 곳에 빛이 맺히게 됩니다. 그래서 날이 흐릴수록 물체가 어둡거나 흐릿하게 보이고, 심하면 아예 안 보이는 것이죠. 우주에도 구름이나 안개처럼, 빛의 진행을 방해하는 존재가 곳곳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말머리성운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하지만 구름이 지구 전체를 뒤덮지는 않듯, 빛을 방해하는 방해물이 우주 전체를 뒤덮고 있진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밤하늘에서 별도 은하도 볼 수 없겠지요. 다행히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천문학자는 천체와 우주를 연구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주가 항상 전체적으로 투명했던 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약 38만 년이 지난 우주는 마치 먹구름이 가득 낀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밝게 빛나는 구름이라고나 할까요? 지금은 우주 전체에 넓게 퍼져 있는 물질과 빛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작은 크기의 우주에 꽉 차 있었거든요. 그 당시 우주는 길이로 따졌을 때 지금의 1,000분의 1 정도였습니다. 부피로는 지금의 10억 분의 1이었습니다. 즉, 그 당시 우주의 물질은 지금보다 10억 배나 더 높은 밀도로 뭉쳐 있던 셈이지요.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양자역학 덕분에 우리는 빛을 파동으로도, 광자(photon)라는 입자로도 볼 수 있습니다. 빅뱅 38만 년 후에는 광자가 뭉쳐 있는 밀도가 지금보다 10억 배나 더 높았습니다. 게다가 광자 하나하나의 에너지도 지금보다 1000배나 더 높았습니다. 이토록 높은 에너지로 빽빽이 뭉쳐 있는 광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간에 다른 빛이나 물질과 부딪히고 맙니다. 이런 일이 일부 지역이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이때의 우주를 바라보면 어디서나 밝고 뿌연 빛만 보일 겁니다. 마치 밝게 빛나지만, 속은 전혀 볼 수 없는 구름의 겉모습처럼요. 사실 이 당시 우주의 모습을 구름에 비유하는 것은 약간 오해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구름을 이루고 있는 물방울과 먼지는 무거워서, 웬만한 광자가 부딪혀도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우주에 있던 광자는 에너지가 아주 높아서, 부딪히는 물질을 이리저리 움직였습니다. 거리에 있는 물건들이 폭풍에 휩쓸려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죠? 아주 오래전 우주의 모습도 비슷했습니다. 물질 전체가 빛이 휘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끌려다녔습니다. 우주는 마치 빛이라는 강력한 황제에게 지배받는 제국과 같았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는 계속 커져갔습니다. 물질도 빛도 좀 더 넓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광자 하나의 에너지가 커져가는 우주에 반비례하면서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광자의 에너지가 점차 작아지면서,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무거운 것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지요. 마치 제국의 힘이 점점 약해지면 이곳저곳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말이지요. 드디어 빅뱅으로부터 38만 년이 지났을 때, 광자는 이제 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중 가장 가벼운 전자마저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지난 38만 년간 우주 전체를 지배하던 빛의 제국에서 물질이라는 민족이 완전히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빛과 물질은 같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빛이 일방적으로 물질에게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라고 명령할 수 없습니다. 이후로도 구름이나 말머리성운처럼 빛과 물질이 서로 영향을 주는 일도 가끔 있지만, 우주 대부분의 역사에서 빛과 물질은 서로 제 갈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기 우주를 관측할 수 없습니다. 우주의 초기 38만 년 동안은 빛이 우리에게 도달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우주의 빛은 물질과 너무나 강하게 상호작용하여 멀리 퍼질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주를 바라볼 때,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는 가까운 과거의 빛을, 먼 곳에서는 먼 과거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과거의 빛은 바로 빅뱅으로부터 38만 년이 지났을 때의 빛입니다. 빛과 물질이 완전히 따로 떨어진 뒤의 빛이지요. 이때 하늘의 모든 방향에서 보이는 이 빛을 과학자들은 우주배경복사(cosmic background radiation)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빛의 흔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