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공원을 걷다 다양한 색깔의 수국을 본 적이 있나요? 어떤 수국은 푸른색이고, 어떤 수국은 붉은색입니다. 심지어 다음날엔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기도 하죠.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이는 산(acid)과 염기(base)를 구분하는 리트머스 종이 실험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파란색 리트머스 종이는 산성 물질을 만나면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빨간색 리트머스 종이는 염기성 물질을 만나면 푸른색으로 변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수국도 토양이 산성이면 푸른색 꽃이, 염기성이면 붉은색 꽃이 핍니다. 수국에 포함된 델피니딘(Delphinidin) 색소가 지시약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이렇게 산과 염기는 빨간색과 파란색처럼 명확히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사용하거나 심지어 산과 염기를 혼동해 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산(acid)과 염기(base)의 정확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어원과 유래를 알아볼까요? 산과 염기를 구분하는 기준은 다양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바로 산성도인 pH 입니다. pH 7을 기준으로 pH가 이보다 낮으면 산성, 높으면 염기성으로 구분하죠. pH는 수용액의 수소 양이온($\text{H}^+$)의 농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pH 7은 수소 양이온 농도 0.0000001 몰농도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표현하기엔 너무 작은 값이라 로그(log)를 이용한 pH로 간단하게 표기한 것이죠. 한편 산과 염기의 가장 체험적인 특징은 바로 ‘혀에서 느껴지는 맛’입니다. 대표적인 산성 물질로는 레몬, 식초, 사과, 비타민C, 위액 등이 있습니다. 모두 신맛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수소 양이온을 혀의 수용체가 인식하며 신맛을 느끼는 것입니다. 반대로 pH가 높은 염기성 물질엔 비누, 베이킹소다 등이 있습니다. 모두 씁쓸한 맛이 납니다. 또한 염기성 물질은 단백질을 녹일 수 있어 피부에 닿으면 미끄러운 촉감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비누로 손을 닦으면 눌어붙은 때가 벗겨져 나가며 미끌미끌해지는 것입니다. 이번엔 산과 염기라는 명칭의 어원을 알아봅시다. 산(acid)은 ‘시다’라는 뜻을 갖는 라틴어 $acidus$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산을 의미하는 한자(酸) 역시 ‘시다’라는 의미이죠. 전세계 어디에서도 산은 신맛이 나는 물질이라는 정체성이 확립됐습니다. 하지만 염기의 어원과 관련된 서사는 약간 더 복잡합니다. 흔히 ‘염기성’이라는 단어 대신 ‘알칼리성(alkali)’이라는 단어가 사용됩니다. 염기성 물질의 특징과 어원에 초점을 맞춘다면 알칼리성이 더 적합한 표현입니다. 알칼리는 아랍어로 불탄 재를 의미하는 알콰리(al-qali)에서 유래됐습니다. 비누가 없던 옛날에는 불탄 재에 물을 붓고 걸러서 잿물을 만들어 빨래를 했죠. 불탄 재는 물에 녹아 알칼리성 물질을 만듭니다. 그렇다면 염기(base)라는 표현은 어떻게 나타나게 된 것일까요? 염기라는 단어는 조금 더 화학적인 맥락에서 나타난 표현입니다. 산과 염기가 pH 7을 기준으로 나뉘며, 이들이 만나면 흥미로운 화학 반응이 일어납니다. 같은 화학량의 강한 산과 염기가 뒤섞이면 중성(pH 7)으로 변합니다. 같은 크기의 양수와 음수를 더하면 중간 지점인 0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이것을 중화 반응(neutralization)이라 합니다. 대표적인 강산인 염산($\text{HCl}$)을 물에 녹이면 수소 양이온과 염화 이온($\text{Cl}^-$)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강염기인 수산화 나트륨($\text{NaOH}$)은 수산화 이온($\text{OH}^-$)과 나트륨 양이온($\text{Na}^+$)을 방출하죠. 같은 양의 염산과 수산화 나트륨을 넣어 중화 반응을 일으키면 수소 양이온과 수산화 이온이 결합해 중성인 물($\text{H}_{2}\text{O}$)이 됩니다. 그리고 남겨진 이온들은 염화 나트륨($\text{NaCl}$)을 형성합니다. 염화 나트륨처럼 산과 염기가 만날 때 서로 다른 전하를 갖는 이온들이 결합한 물질을 염(salt)이라 합니다. 땅속부터 바다까지 지구는 수많은 종류의 염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염은 안정하고 다양하며, 정제해서 유용하게 쓸 수 있어 중요한 물질로 여겨졌습니다. 중세 유명 연금술사이자 의사였던 파라켈수스(Paracelsus, 1493-1541)는 염을 지구의 모태(matrix)에서 자라나는 물질로 생각해 ‘매트릭스’라 표현했습니다. 이후 ‘매트릭스’는 프랑스 화학자 루이 레메리(Louis Lémery, 1677-1743)에 의해 기반을 뜻하는 단어인 ‘베이스(base)’로 변형됩니다. 현대의 염기라는 단어의 의미는 프랑스 화학자 기욤-프랑수아 루엘(Guillaume-François Rouelle, 1703-1770)이 정립했습니다. 그는 산(acid)과 반응하여 염을 만드는 기반(base)이 되는 물질이라는 의미로 ‘염기(base)’를 정의합니다. 당시에 알려져 있던 레몬즙, 식초와 같은 산성 물질들은 휘발성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염기가 이러한 산의 휘발성을 억누르고 견고한 염을 만드는 물질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산과 염기 혹은 알칼리라는 용어들은 간단하지만 명확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산’은 신맛이라는 미각적 특징에서, ‘알칼리’는 식물을 태운 재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만나 형성된 염에서 ‘염기’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과정을 거쳐 적합한 용어들이 만들어졌습니다. 언어는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집합체입니다. 과학 용어 역시 언어적으로, 나아가 과학사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이에 대한 호기심은 산과 염기를 구분하는 지시약처럼 어원의 비밀을 풀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