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2014)’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새로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우주 탐험가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우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낯선 행성에서 만난 산은 실제로 거대한 파도였고 잠잠한 바람은 어느새 모래폭풍으로 돌변하죠. 주인공이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놓칠 수 없는 명장면입니다. 놀란 감독이 블랙홀 장면을 찍은 비밀을 알아볼까요? 블랙홀은 빛이 탈출할 수 없는 천체라는 개념으로 1783년 존 미첼(John Michell, 1724~1793)이 처음 발표했습니다. 어떤 천체에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속력을 탈출 속도라고 합니다. 만약 천체가 매우 무겁거나 반지름이 매우 작으면 탈출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집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빛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천체가 될 것이라 생각했죠. 블랙홀은 이론적으로 고전 역학에서 도입된 개념입니다. 하지만 그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의 상대성 이론이 필요했습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중력을 시공간의 왜곡으로 설명합니다. 즉 질량이 시공간을 왜곡시키고 이렇게 왜곡된 시공간 속에서 주변 물체들이 떨어지는 것을 중력이라 설명합니다. 블랙홀은 중력의 힘이 매우 강한 천체입니다. 블랙홀 외부에 있는 물질이나 빛은 블랙홀의 큰 질량에 의해 블랙홀 안쪽으로 끌려 들어갑니다. 블랙홀 안에 있는 어떤 것도 외부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산이 없는 넓은 초원에서 땅끝을 보았을 때 땅과 하늘이 맞닿아 이루는 선을 지평선이라 합니다. 블랙홀에서 빛이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계를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 부릅니다. 즉 블랙홀을 정확히 정의하면 ‘사건의 지평선 내부’인 것이죠. 블랙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독일의 물리학자인 카를 슈바르츠실트(Karl Schwarzschild, 1873~1916)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이용해 블랙홀의 존재 가능성을 증명하고 블랙홀의 반지름을 계산했습니다. 질량 ${M}$인 물체가 블랙홀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반지름을 수식으로 정리했습니다. \[r_s = \frac{2GM}{c^2}\] 이 식에서 ${G}$는 중력상수(6.67×10⁻¹¹ N·m²/kg²)이고 ${c}$는 빛의 속도(3.0×10⁸ m/s)입니다. 이 값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이라 부릅니다. 지구의 슈바르츠실트 반지름은 약 8.87 mm 정도입니다. 지구가 콩알 크기로 압축되면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영화처럼 우주 여행을 하다가 블랙홀 안쪽으로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블랙홀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버티면 무거운 중력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몸무게가 수만 수십만 배로 증가해 버티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중력에 몸을 맡기고 자유낙하를 하게 되면 아인슈타인의 등가 원리에 의해 중력의 힘은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잠시동안은 안전하겠죠. 블랙홀의 중력은 중심에 가까울수록 커지기 때문에 블랙홀 중심에 가까운 쪽이 먼 쪽보다 더 강한 중력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중력의 크기가 다른 것을 조석력 또는 기저력이라 부릅니다. 이 조석력 때문에 물체는 세로로 길게 늘어나고 가늘어집니다. 이런 현상을 길고 가늘게 변한다는 뜻으로 스파게티화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블랙홀에서는 빛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했는데 영화 속 블랙홀은 어떻게 그려냈을까요? 영화가 개봉된 후 5년이 지난 2019년 4월 블랙홀과 관련된 놀라운 결과가 발표됩니다. 사건의 지평선을 회전하는 빛과 물질을 관측해서 블랙홀의 형태를 확인한 것이죠. M87(처녀자리A) 은하는 그동안 너무 멀어서 관측하기 어려웠습니다. MIT 솁 돌먼(Sheperd Doeleman, 1967~) 교수가 전 세계에 흩어진 망원경을 모아서 관측해보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미국, 스페인, 칠레, 멕시코, 남극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 EHT(Event Horizon Telescope) 연합이 6대륙의 망원경으로 인류 역사상 최초로 블랙홀 실물을 관측해 낸 것이죠. 놀랍게도 관측 결과는 ‘인터스텔라’ 영화 속 블랙홀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놀란 감독은 영화를 준비하면서 오랫동안 여러 물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실제와 비슷한 블랙홀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리학과 영화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영화 ‘인터스텔라’의 블랙홀 장면을 다시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