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물은 70% 이상이 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많이 들어보셨죠? 그런데 지금 몸 안에 있는 물이 느껴지시나요?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물은 아무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습니다. 만약 우리 몸이 에탄올처럼 코를 찌르는 향의 액체로 이루어져 있다면 어땠을까요? 너무 황당한 질문 같나요? 우리는 에탄올과 같은 유기용매는 독성이 강하고 냄새가 심하기 때문에, 물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진화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감각 시스템이 물은 무미무취로 느끼고, 반면 알코올 향은 강하게 감지하도록 진화한 것이죠. 우리는 왜 이렇게 진화했을까요? 만약 광활한 우주에 몸체가 에탄올로 이루어진 외계의 생물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우리와 반대일수도 있습니다. 에탄올을 무미무취로 느끼고, 물의 맛과 향을 강하게 느낄지도 모르죠. 우리 인간이 다양한 액체 중에서 물을 친숙하게 느끼는 이유를 더 살펴봅시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의 모든 생물은 공통적으로 물을 생명의 용매로 사용합니다. 지구의 최초 생명체는 물 속에서 단세포 형태로 태어났습니다. 그 후로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몸을 이루는 분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용매로 물을 사용하도록 진화했지요. 그런데 왜 하필 물이 선택된 것일까요? 물이 생명의 용매로 선택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온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물이 생물의 체온을 조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물은 어떻게 생물의 체온을 조절할까요? 이를 이해하려면 물 분자의 구조를 살펴봐야 합니다. 물 분자는 산소 원자 한 개와 수소 원자 두 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이 수소 원자와 산소 원자가 이루는 각도가 180도가 아니고 104.5도로 약간 휘어져 있습니다. 이 구조 덕분에 물 분자에는 극성이 생기죠. 전자를 좀 더 좋아하는 산소 쪽에는 부분 음전하가 생기고 수소 쪽에는 부분 양전하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극성 때문에 물 분자는 서로 강하게 결합할 수 있으며, 이를 수소 결합이라고 합니다. 이 수소결합 때문에 물은 다른 용매와는 다른 여러 독특한 성질을 갖게 됩니다. 그 성질 중 하나는 바로 높은 비열입니다. 비열이란 무엇일까요? 어떤 물질의 단위 질량을 단위 온도만큼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을 뜻합니다. 어떤 물질 1g의 온도를 1 °C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cal/g·°C]이라는 뜻이지요. 물의 비열은 1 cal/g·°C로 다른 용매인 에탄올(0.58 cal/g·°C)이나 헥세인(0.51 cal/g·°C)보다 훨씬 높습니다. 왜 물의 비열은 다른 용매에 비해 높을까요? 바로 수소 결합 때문입니다. 물을 가열하면, 먼저 물 분자 사이의 수소결합을 끊는 데 많은 열이 사용되며, 그 이후에야 물 분자의 평균 속도가 증가해 온도가 올라갑니다. 즉, 물의 온도가 오르기 위해서는 수소결합이 먼저 끊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상당한 열이 소모되는 것이죠. 이러한 특성 덕분에 물은 열을 흡수하거나 방출할 때 온도 변화가 비교적 느리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높은 비열 때문에 물은 지구의 기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물로 이루어진 바다는 육지보다 비열이 높아, 천천히 데워지고 천천히 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름에는 바닷가가 내륙보다 좀 더 시원하고, 겨울에는 좀 더 따뜻하답니다. 또 비열이 높은 물은 열에너지를 흡수해도 쉽게 온도가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자동차 엔진의 열을 식히는 데도 사용됩니다. 물을 이용해 열을 식히는 이러한 엔진을 ‘수랭식 엔진’이라고 합니다. 과거에는 자동차에서 공기를 이용해 엔진의 열을 식히는 공랭식 엔진이 많이 쓰였지만, 현재는 물의 높은 비열을 활용한 수랭식 엔진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고성능 CPU의 열을 식히기 위해 수랭식 냉각 시스템을 선호하는 게이머들도 많지요. 우리 몸의 세포도 마치 수랭식 엔진처럼 물에 의해 안정적인 온도를 유지합니다. 자동차 엔진이나 컴퓨터 CPU처럼 높은 열이 나지도 않는데, 왜 냉각수가 세포에 필요할까요? 세포 안에서는 수많은 효소들이 촉매하는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이 화학 반응들은 대부분 외부로 열을 내는 발열반응입니다. 만약 세포가 물로 둘러싸여 있지 않다면, 물이 생명의 용매로 사용되지 않았다면, 생물을 이루는 세포는 내부의 온도가 너무 높아져 생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은 이렇게 체온이 상승하지 않도록 도와주며 생명체의 안정성을 지켜줍니다. 지구 이외의 행성에서는 물 대신 다른 액체가 생명의 용매로 사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자들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에 지구 외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합니다. 유로파와 타이탄의 표면에 존재하는 유기물질을 분해해서 에너지를 얻는 생명체말이죠. 물론 이 생명체는 지구상의 생물들과 완전히 다른 에너지 대사과정을 가지도록 진화했을 것입니다. 우선 이 위성들의 표면 온도는 영하 100 °C 이하로 매우 낮아서 물은 얼음으로 존재할 테니 지구에서처럼 생명의 용매가 되지는 못하겠죠? 그 대신 메테인이나 에테인이 액체로 존재하여 이들이 물 대신 사용될 수도 있을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체온은 영하 100 °C 이하일 것입니다. 이들도 이렇게 낮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장치를 가지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