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는 우리 지구의 자료 보관실입니다. 아주 오래전 지구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죠. 지구의 기후 변화와 빙하의 거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보물 창고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빙하에서 얼마나 오래된 과거 기록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가장 오래된 빙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중위도나 열대지역에서는 높은 산에만 빙하가 있는데, 사실 이곳의 빙하들은 비교적 어립니다. 대체로 천 살을 넘기지 않죠. 반면 남극과 그린란드의 빙하는 연륜이 좀 있습니다. 게다가 이곳의 빙하는 하나의 대륙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로 거대하고, 평균 두께도 무려 2,000미터를 웃돕니다. 과학자들은 남극에 최초의 빙하가 생긴 것을 약 3,400만 년 전으로 추정하는데요. 그린란드는 1,800만 년 전으로 추정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남극에 가면, 3,400만 년 된 빙하를 볼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그건 아니랍니다. 빙하는 계속해서 흘러가거든요. 바다로 흘러간 빙하는 빙산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이동 과정 중에 완전히 녹기도 합니다. 따라서 현존하는 빙하들은 아무리 오래되어도 3,400만 년보다 훨씬 어리죠. 현재 과학자들은 오래된 빙하를 찾아 시추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래된 빙하는 어떤 지역에 있을까요? 만약 평평한 산에 눈이 쌓여 만들어진 빙하 지역이 있다면 가능성이 있습니다. 수평적 이동 가능성이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또한 적설량이 적은 곳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빙하는 일정 두께 이상이 되면 불안정해지는데, 일정한 두께를 유지하면서도 형태를 오래 유지하려면, 적설량이 적어야 유리하죠. 남극 내륙은 그린란드 내륙보다 적설량이 훨씬 적습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그린란드 빙하 바닥을 약 10만 살로 추정하고, 남극 빙하 바닥은 수십만 살 내지 백만 살 이상으로 추정합니다. 오래된 빙하를 찾을 때, 바닥의 지열도 참고하면 좋습니다. 암석에서 따끈한 지열이 올라오면 빙하 바닥은 녹게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지열이 낮은 서늘한 곳에 오래된 빙하가 있을 확률이 높겠죠? 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곳은 남극 대륙의 동부입니다. 이곳은 백만 살 이상의 빙하 코어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죠. 연속적인 과거 기후 환경 자료가 잘 보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빙하 시추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속적인 빙하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남극의 돔 콩코디아(Dome Concordia) 지역에서 시추한 빙하입니다. 약 80만 년 된 귀중한 자료를 얻었죠. 이 자료를 통해 온실가스 농도와 남극 기후 변화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이 밝혀졌는데요. 과거의 온실가스 농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는 사실도 규명되었습니다. 더 오래된 빙하 기록은 없을까요? 최근 유럽연합, 일본, 중국 등 많은 국가가 남극 대륙의 동부에서 새로운 빙하 시추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150만 년 이상의 빙하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지열 자료가 정확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빙하를 뚫기 전에 다양한 표층 측정과 모델링 자료를 활용하는데, 여기에 지열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실제의 빙하 연령은, 직접 뚫어서 측정해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빙하의 나이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첫 번째 방법은 계절 변화를 이용한 성분 분석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이온의 농도가 계절적으로 변한다면, 이런 이온 농도가 반복되는 횟수가 연령이 될 것입니다. 얼음을 이루는 H_2 O의 경우 산소 원자나 수소 원자의 동위원소비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름에는 무거운 것의 비율이 높아지고, 겨울에는 낮아집니다. 이 비율을 연속적으로 측정하면, 연령 측정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한계도 있습니다. 깊은 곳 빙하의 하단은 무겁게 눌려 있기 때문에 1년에 해당하는 두께가 얇습니다. 따라서 화학적 분석이 어려워지죠. 그래서 화산재 광물의 성분을 이용하여 연령을 측정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방법은 공기 성분 분석입니다. 즉 빙하에 갇힌 과거 공기의 성분을, 이미 연령이 밝혀진 빙하 시료와 비교하는 것이죠. 최근에는 공기 중에 존재하는 크립톤 가스와 아르곤 가스의 동위원소비를 측정하는 방법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공식적으로 가장 오래된 빙하는 비교적 해안가 근처의 블루아이스(blue ice) 지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블루아이스는 햇빛을 받으면 푸르게 보여서 붙여진 이름인데요, 빙하가 흐르다가 바닥의 암석이 솟아난 곳의 상승 흐름을 타고 심부의 빙하가 표층으로 올라온 것이죠. 최근 미국 과학자들은 이 블루아이스가 있는 남극 동부의 앨런 힐즈(Allen Hills)에서 270만 년 된 빙하를 발견하여 학계에 보고했습니다. 비공식적으로는 600만 년 이상 된 빙하도 보고된 바 있죠. 한국의 과학자들도 약 10년 전부터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가까운 남극대륙횡단산맥 근처에 산재하는 블루아이스 지역에서 오래된 빙하를 찾고 있는데요. 엘리펀트 모레인(Elephant Moraine) 지역에서 100만 년 이상 된 빙하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지속적인 탐사와 시추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해저 퇴적물을 이용해서 빙하기의 결정적 비밀을 밝힌 바 있습니다. 최근 백만 년 동안 빙하기와 간빙기의 반복 주기가 약 4만 년에서 10만 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인데요. 과학자들은 아주 오래된 빙하에도 이에 필적할 만한 결정적인 자료가 있다고 예상합니다. 게다가 그 자료는 지구의 미래 기후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죠. 이를테면 지구의 온도는 약 6,000만 년 동안 계속 떨어져왔는데, 빙하에 그 흔적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흔적은 아주 중요한데요, 기후 검증 모델에는 실제 발생했던 과거 기후 자료를 적용하기 때문입니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처럼, 우리가 지금 빙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일부일지도 모릅니다. 푸르른 빙하가 품고 있는 지구의 비밀은 언제 속속들이 밝혀지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