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유리로 만들어진 거울 앞에서 세수를 하며, 유리로 된 스마트폰 화면을 확인합니다. 유리는 투명하면서도 단단한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 쓰임새가 다양합니다. 실험실에서도 유리로 만들어진 도구를 이용해 각종 실험을 하고 있죠. 우리는 보통 유리를 단단한 고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리가 액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리가 액체라는 주장은 과연 타당할까요? 액체 상태의 물은 0 ℃ 보다 낮은 온도에서 고체 상태의 얼음이 됩니다. 100 ℃ 보다 높은 온도에서는 기체 상태의 수증기가 되죠. 물질의 상태는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얼음은 물 분자들이 잘 정렬된 결정 구조입니다. 고체 물질에 열을 가하면 분자의 운동에너지가 증가해 분자들이 빠르게 움직입니다. 이로 인해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해져 액체로 변하면서, 흐르는 성질을 갖게 됩니다. 액체 물질에 열을 더 가하면 분자의 운동은 더욱 활발해지고, 끓는점에 도달하면 기체 상태로 변화합니다. 액체와 기체 상태는 모두 유동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기체에 압력을 가하면 부피가 크게 변화하는 반면, 액체는 부피가 거의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물질은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 상태로 변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하는 과정은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인력의 범위 밖으로 각 분자들이 퍼져 나가는 과정입니다. 분자량이 매우 큰 고분자 물질은 분자 사이의 인력이 매우 커서 쉽게 이 힘을 떨쳐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고분자 물질은 대부분 끓는점에 도달하기 전에 더 낮은 온도에서 연소가 시작됩니다. 유리의 주성분은 이산화 규소($\text{SiO}_2$)입니다. 이산화 규소가 결정을 이루고 있는 물질을 석영이라고 합니다. 석영은 규소($\text{Si}$) 원자와 산소($\text{O}$) 원자가 규칙적으로 결합되고 배열된 구조입니다. 석영 결정은 모두 공유결합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이러한 결정을 공유결정이라고 합니다. 유리는 액체 상태의 이산화규소가 냉각돼 굳은 물질입니다. 그런데 유리는 석영과 달리 전체적으로 규칙적인 구조를 갖진 않습니다. 오히려 액체 상태의 불규칙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굳어진 것이지요. 따라서 유리를 ‘과냉각된 액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리는 서서히 가열하면 특정 온도 이상에서 흐물흐물하게 변합니다. 이 온도를 유리전이온도(glass transition temperature)라고 합니다. 과학적인 표현으로는 딱딱한 유리질(glassy) 상태에서 부드러운 고무(rubbery) 상태로 변화하기 시작하는 온도라고 표현하죠. 유리전이온도는 유리처럼 불규칙한 구조를 갖는 물질에서 관찰됩니다. 액체 상태의 유리에서는 기존의 공유결합이 깨지고 새로운 공유결합이 형성되는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실제로 깨진 유리조각은 높은 온도에서 녹여서 다시 붙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새로운 공유결합이 형성되는 과정인 것이죠. 따라서 유리는 원하는 형태로 가공하기 쉽습니다. 유리의 이러한 특성은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엄청난 기여를 했습니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의 실험에서도 유리로 만들어진 음극선 관을 사용했습니다. 화학 실험에서는 유리로 만든 비커나 플라스크, 시험관 등을 자주 사용합니다. 물론 이산화 규소도 1800 ℃ 이상의 고온으로 가열하면 산소가 날아가 규소만 남게 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죠. 고체의 사전적 의미는 ‘단단하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물질’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상온에서의 유리는 고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화학적인 관점에서 고체는 결정을 이루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고체는 특정한 온도, 즉 용융점에서 녹아서 액체로 전이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유리는 결정성(crystalline)이 없고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 서서히 유동성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녹을 때의 온도도 일정하지 않죠. 유리는 오히려 액체 상태에 가까운 화학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리가 액체라는 주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리를 액체로 본다면 나무, 섬유, 고무와 같이 뚜렷한 결정 구조를 갖지 않는 물질은 모두 액체라고 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유리는 고체와 액체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물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유리는 단단하고 모양이 변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므로 ‘비결정성(noncrystalline) 고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모든 물질의 상태를 고체, 액체, 기체로 반드시 정확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조금은 유연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 물질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화학은 이처럼 애매하거나 예외가 많은 학문입니다. 따라서 익히기 어려운 학문이기도 하죠. 그러나 유리처럼 융통성 있는 태도를 바탕으로 물질 특유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바로 화학의 매력이 아닐까요? 화학은 그만큼 다채로운 물질들을 탐구하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