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을 걷다 보면 형형색색의 꽃에 꿀벌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때 꿀벌들은 꽃과 꽃 사이를 오가며 무언가를 옮기는데요. 이 평화로운 장면은 사실 수술의 꽃가루를 암술로 옮겨 생식을 하게 하는 ‘수분’ 과정입니다. 이렇게 꿀벌은 식물의 번식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식물은 어떻게 곤충을 유혹해 꽃가루의 매개자로 만들었을까요? 먼저, 생명의 출현과 식물의 진화 과정에 대해 알아봅시다. 지구 최초의 생물은 물속에서 생활하는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이었고, 차츰 진화해 다양한 생물이 생겨났습니다. 육지에 생물이 살기 시작한 건 오르도비스기(Ordovician) 이후부터입니다. 물속 박테리아가 광합성을 해 만든 산소가 오존층을 형성하고, 그 결과 자외선이 차단돼 육지에서도 생물이 살 수 있게 됐죠. 최초의 육상식물은 오르도비스기에 출현한 선태식물, 즉 이끼입니다. 물속에 살던 녹조류가 육지로 올라와 이끼로 진화한 것이죠. 이끼는 물가에서만 살 수 있는 식물로, 관다발이 없고 포자를 통해 번식합니다. 4억 2500만 년 전인 실루리아기(Silurian)에는 종자가 없는 관다발식물이 진화합니다. 관다발식물은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로, 관다발을 통해 물과 양분을 전달합니다. 이 시기에는 쿡소니아(Cooksonia)라는 최초의 관다발식물이 번성했습니다. 그 다음으로 종자식물이 진화합니다. 이때부터는 습지가 아닌 환경에서도 식물이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종자식물은 겉씨식물과 속씨식물로 나뉩니다. 겉씨식물은 겉에 씨앗이 있는 식물로, 은행나무와 소철 같은 식물이 포함됩니다. 속씨식물은 속에 씨앗이 감춰진 식물로, 꽃을 피웁니다. 현존하는 90 % 이상의 식물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이렇게 진화한 식물은 종류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자손을 퍼뜨립니다. 포자로 번식하는 선태식물과 양치식물은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물이나 바람을 이용합니다. 종자식물은 꽃가루를 퍼뜨려 번식합니다. 겉씨식물은 바람을 이용하고, 속씨식물은 물이나 바람을 이용하죠. 특이한 점은, 속씨식물은 곤충을 통해 꽃가루를 확산시키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식물은 곤충에게 영양분이 많은 꿀을 제공하고, 곤충은 꽃가루를 몸에 묻힌 채 다른 꽃으로 이동해 번식에 필요한 수분이 이루어지게 합니다. 이렇게 다른 생물들이 서로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것을 공생이라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서로 협력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을 공진화라고 합니다. 한 생물이 진화하면 공생하는 다른 생물도 함께 진화하는 것이죠. 많은 식물들은 특정 곤충만 자신의 수분을 도울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1862년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마다가스카르에서 $\textit{안그레쿰 세스퀴페달레(Angraecum sesquipedale)}$라는 난초를 관찰합니다. 이 난초에는 길이가 28 cm나 되는 꿀주머니가 있었습니다. 다윈은 25~28 cm 의 주둥이를 가진 곤충이 난초의 수분을 도울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5년 뒤, 영국 생물학자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는 이러한 조건을 가진 나방을 발견했습니다. 다윈의 예측이 맞았던 것이죠. 다른 예로는 사막식물인 유카(Yucca)가 있습니다. 유카는 수분을 위해 유카나방이 필요합니다. 유카나방은 유카에 알을 낳고, 알에서 나온 애벌레는 유카의 종자를 먹고 자랍니다. 곤충 역시 수분 매개를 더 잘할 수 있도록 진화했습니다. 꽃에는 자외선 파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무늬가 있습니다. 곤충은 가시광선 파장의 빛만 볼 수 있는 인간과 달리 자외선을 볼 수 있습니다. 영국 식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Attenborough, 1926~)는 곤충의 시각 체계를 더 잘 이해하려면 자외선 필터를 사용해 사물을 보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필터를 통해 꽃을 보면, 지금까지 맨눈으로 볼 수 없었던 무늬가 보입니다. 곤충들은 이 무늬를 보고 꿀샘에 찾아가서 꽃가루를 많이 묻혀 더 효율적으로 수분을 돕습니다. 속씨식물들은 왜 곤충을 수분에 끌어들였을까요? 어떤 식물들은 바람을 통해 수 km까지 꽃가루를 날리고 물에 띄워 보내기도 하는데 말입니다. 영국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는 산탄총을 쏘듯 낭비가 심한 바람 수분보다 곤충 수분이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어마어마한 양의 꽃가루를 바람에 날려보내는 것보다 벌들이 이 꽃 저 꽃으로 날아다니며 꽃가루를 옮기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곤충들은 식물과 공생 관계를 유지하며, 식물의 번식에 큰 도움을 줍니다. 꿀벌이 멸종하면 4년 안에 인류가 멸종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속씨식물의 수분을 매개하는 곤충이 멸종하면 우리가 먹는 식물이 멸종할 것이고, 그 연쇄효과로 인류도 멸종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사는 지구는 46억 년 전에 만들어져, 약 38억 년 전부터 생명을 키워왔습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수십만 년 동안 지구에서 살고 있고 어쩌면 몇만 년 후에는 멸종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인간이 지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은 인간에게도,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도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