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life)이란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스쳐가나요? 하늘을 나는 독수리, 봄 햇살 아래 파릇하게 돋아나는 새싹, 활기차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떠오르나요? 아니면 생로병사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나요? 삶과 죽음의 존재론적 고민을 했던 햄릿의 대사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화성 탐사에 나섰다가 우주에서 감자 재배를 하는 영화 ‘마션($\textit{The Martian}$)’처럼 SF적 상상을 할 수도 있겠죠. “선충, 박테리아, 바이러스, AI 중 생물이 아닌 것은 무엇일까요?”라는 객관식 질문을 받으면 답변은 더 쉬워집니다. 그런데 답이 하나일까요, 여러 개일까요? 이 문제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생물’, 즉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2004년에 개봉한 SF 영화 ‘아이, 로봇($\textit{I, Robot}$)’은 인간화된 로봇(AI)과 함께 사는 미래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속 로봇은 인간처럼 청소를 하고 요리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 나오는 인간화된 로봇은 생물일까요? 당연히 ‘아직은’ 아닙니다. 생물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로봇이 계속 발전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인간화’ 혹은 ‘생물화’가 가능할까요? “모든 살아있는 세포는 그 조상들이 수십억 년에 걸쳐 쌓아 온 실험의 경험을 간직하고 있다.” 196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막스 델브뤼크(Max Delbruck, 1906~1981)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any living cell)의 공통적 특성을 설명했습니다. 이 문구에는 생물을 규정짓는 여러 중요 개념들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세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대략 수십 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반면, 예쁜꼬마선충($\textit{C. elegans}$)이라 불리는 작은 선충은 1,000개 내외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죠. 하나의 세포로 작동하는 생물도 있습니다. 박테리아나 아메바와 같은 단세포 생물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생물은 호흡을 통해 산소와 이산화 탄소를 교환하기도 하고, 생체 활동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거나 소비하기도 합니다. 자극에 반응하기도 하고, 자손을 낳기도 하죠. 살아있다는 것은 일련의 ‘행위’를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의 기본 단위가 바로 세포입니다. 세포도 호흡을 하고 자손을 만듭니다. 세포는 어떻게 이런 일을 처리하는 걸까요? 인간화된 로봇은 개발자가 프로그래밍한 대로 행동합니다. 청소를 하기도 하고, 요리를 하기도 하고, 전쟁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포도 프로그래밍 정보를 바탕으로 움직입니다. 성장하고, 분화하고, 분열하고, 호흡하고, 환경에 반응하며 살아가죠.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모든 생물체가 각각의 정체성(identity)을 규정하는 고유의 프로그래밍 정보를 암호화해서 가지고 있기(carry) 때문입니다. 앞서 말한 ‘수십억 년 동안 조상(ancestor)에 의해 수행된 모든 종류의 시행착오’는 바로 DNA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문구는 생물을 규정짓는 핵심 조건인 ‘유전(inheritance)’과 ‘진화(evolution)’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은 오랜 시간 살아남아 그 유전 정보를 다음 세대에 전달한 조상의 자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종류, 상황, 생존의 기록이 DNA라는 화학물질로 암호화돼 남겨져 있습니다. 현대 생명과학자들은 생물이 보유하고 있는 DNA 염기서열 정보를 분석하고 해독합니다. 공룡처럼 멸종된 생물의 DNA를 화석에서 추출해 복원하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하지만 DNA 염기서열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는 아직 생물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바이러스는 어떨까요? 생물일까요?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고, 동일한 유전 정보를 갖는 자손을 만들 수 있으며, 진화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지 못해 ‘숙주 세포’를 필요로 합니다. 생물의 속성을 갖고는 있으나 생물로 간주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 동토층에 얼어 있던 고대의 바이러스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공상과학적 상상 같지만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고대 바이러스의 유전물질이 안전하게 증식할 수 있는 숙주 세포만 찾는다면 되살아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질문이 생기네요. 그렇다면 되살아난 바이러스는 생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