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적으로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은 혈연관계입니다. 소위 핏줄을 나눈 부모와 형제죠. 일단 겉모습이 닮았습니다. 어릴 때는 부모와 별로 닮지 않았던 사람도 나이 들수록 더 닮아간다는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얼굴이나 체형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행동도 비슷할 때가 많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조금씩 다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각자 다른 얼굴과 성격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타인과 구분되는 나만의 고유한 특징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물은 저마다 다양한 신체적, 기질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형질’이라고 합니다.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형질은 수없이 많죠. 이를테면 키, 몸무게, 목소리, 여드름, 피부색, 눈 크기, 치아 배열, 혈액형부터 특정 질병 이력, 혈당, 혈압, 간 수치, 각종 알레르기, 그리고 집중력, 참을성, 계산 능력, 공간지각력, 매운 음식을 잘 참는 능력 등등 아주 세세하고 다양한 형질이 인간을 구성합니다. 이렇게 수많은 종류의 형질들이 모두 합쳐졌을 때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만듭니다. 내가 부모와 닮았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부모의 여러 형질 중 일부가 나와 비슷하다는 의미이죠. 그렇다면 하나하나의 형질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어떤 형질은 유전적 요인만으로 결정됩니다. ABO혈액형이 가장 대표적이죠.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하는 특정 유전 질환들도 이에 해당합니다. 반대로 감기에 걸리는 것처럼 완전히 비유전적인 요인으로 결정되는 형질도 있습니다. 감기에 걸리는 건 유전적으로 결정되기보다는 전날 함께 있던 사람이나 내 몸의 컨디션 등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사실 대부분의 형질은 유전적 요인과 비유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결정됩니다. 이렇게 형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유전적 요인은 우리 DNA에 A, C, T, G의 서열로 저장되어 있습니다. 보통 인간은 약 30억 개의 A, C, T, G 서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30억 개의 서열이 ‘유전체(genome)’입니다. 이 유전체 서열은 개인마다 고유하죠. 어머니의 난자와 아버지의 정자에 있는 유전 정보가 결합하여 내 유전체가 형성되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포들이 나를 구성합니다.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나의 DNA 서열은 다른 사람들과 약간씩 다릅니다. 얼마나 다를까요? 유전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30억 개의 서열 중 약 0.1%, 즉 서열 1,000개 당 하나 이상이 달라집니다. 이렇게 서로 달라지는 DNA 서열이 ‘유전 변이(genetic variant)’입니다. 0.1%라고 하면 적어 보이지만 실제로 약 300만~400만 개나 됩니다. 유전 변이는 나를 독특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변이는 형태, 빈도, 기능이라는 세 가지 주요 특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유전 변이의 형태를 살펴볼까요? 가장 흔한 형태는 단일염기변이(single nucleotide variant, SNV)입니다. 여러 유전체의 같은 위치에서 특정 염기 하나가 다른 염기로 변하여 다른 형질로 표현되는 것이죠. 즉, 어떤 사람이 ACGACG라는 특정 서열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 ACGTCG라는 서열을 가지고 있는 경우입니다. 이처럼 단일염기변이는 서열의 수 자체는 변하지 않고 그 내용만 바뀝니다. 또 다른 형태로는 구조 변이(structural variant, SV)가 있습니다. 특정 서열이 삭제 혹은 첨가된 형태죠. 예를 들어, ACGACG라는 서열에 ACGGACG처럼 서열이 추가되거나(삽입, insertion) AC-ACG처럼 서열이 없어지거나(결손, deletion) 혹은 ACAGCG처럼 특정 변이들의 순서가 바뀌는(역위, inversion) 형태입니다. 특정 서열이 중복(duplication)되거나 서열의 위치가 이동하기도(전좌, translocation) 하죠. 여기서 삭제되거나 첨가되는 서열의 규모는 매우 다양합니다. 앞의 예시처럼 한 개일 수도 있고, 100만 개가 넘을 수도 있습니다. 보통 한 개인의 유전체에는 수백만 개의 단일염기변이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구조 변이는 수천 개밖에 되지 않지만 한 번에 많은 서열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유전 변이의 또 다른 특징, 빈도를 살펴봅시다. 빈도는 특정 변이가 특정 집단에서 얼마나 자주 발생하는지를 나타냅니다. 보통 1%가 넘으면 흔하다고 지칭하는데, 어떤 변이는 한국인의 60%에서 발생할 만큼 매우 흔합니다. 반면 어떤 변이는 0.1~0.001%에서만 발생할 정도로 희귀합니다. 본인과 가족들만 공유하는 변이도 있죠. 심지어 세상에서 나 혼자만 가지고 있는 변이도 있습니다. 최근의 유전체 연구를 통해 다양한 유전 변이의 발생 빈도가 체계적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전 변이는 어떤 기능을 하는 걸까요? 이를 밝히는 것은 현대 유전학이 맞닥뜨린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과제 중 하나입니다. 암, 알츠하이머, 자폐 스펙트럼, 파킨슨병 같은 질환의 원인부터 ‘나’를 구성하는 고유한 특징까지, 과학자들은 인간 유전체 속 유전 변이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이처럼 유전 변이는 인간의 다양성과 개별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미래에는 유전 정보의 해독이 더욱 정밀해져, 각자의 잠재력과 건강 상태를 예측하고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유전 변이의 기능을 규명하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공상과학 소설처럼 A, C, G, T로 이루어진 유전 서열 정보만 가지고 개인 형질의 많은 부분을 예측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