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균성 질환을 치료하는 항생제 페니실린은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 일컬어집니다. 1940년대 초에 제품화된 페니실린은 제 2차 세계대전 중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고, 이후에도 인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왔습니다. 페니실린 이후, 사람들은 더 다양한 종류의 항생제들을 개발해냈고, 이제 인류는 오랜세월 동안 속수무책으로 당해왔던 각종 세균성 질환에 대한 든든한 방어책을 갖추어 가는 중입니다. 최초의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1928년, 영국의 의사이자 생물학자인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 1881~1955)이 발견했습니다. 그는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textit{Staphylococcus aureus}$)을 배양하던 중, 우연히 푸른곰팡이의 일종인 페니실리움 노타툼($\textit{Penicillium notatum}$) 곁에서는 이 균이 자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페니실린이 인류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첫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페니실린 이전에도 ‘세균 잡는 곰팡이’, 즉 항생물질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서는 곰팡이가 핀 빵을 먹고 감염증을 치료하는 민간요법이 전해 내려왔습니다. 1870년대에 영국의 생리학자, 존 버든-샌더슨 경(Sir John Scott Burdon-Sanderson, 1828~1905)은 곰팡이로 덮어둔 배양액에서는 세균이 자라지 못하는 현상도 관찰했구요. 그렇다면 곰팡이는 어떻게 세균들의 천적이 되었을까요? 자연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먹이와 서식지 등 생존에 필수적인 자원을 두고 벌이는 생존 경쟁이죠. 그 생존 경쟁 중에 곰팡이들이 찾아낸 무기 중 하나가 바로 항생제입니다. 항생제(antibiotics)의 사전적 정의는 ‘자연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들의 성장과 증식을 억제하거나 사멸시키기 위해 만들어내는 물질’입니다. 이 짧은 문장에는 자연의 오랜 생존 경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습니다. 페니실린도 마찬가지입니다. 페니실린의 어원은 푸른곰팡이($\textit{Penicillium}$)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페니실린은 푸른곰팡이가 경쟁자인 세균들을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낸 공격용 무기입니다. 애초에 '무기'라는 것은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므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 오히려 내가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페니실린은 세균에게만 해롭고, 곰팡이에게는 전혀 해롭지 않습니다. 도대체 페니실린은 어떻게 경쟁자인 세균만을 골라서 공격하는 걸까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죠. 푸른곰팡이도 이 전략으로 적인 세균을 잘 이해하고 대응했습니다. 각각의 세포가 지닌 구조적 차이를 이용한 것이죠. 사람의 세포에는 세포벽이 없지만, 곰팡이와 세균은 모두 세포막 외부에 세포벽이라는 단단한 구조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둘의 세포벽은 구성 물질이 다릅니다. 푸른곰팡이의 세포벽은 주로 여러 종류의 다당류와 글루코사민으로 이루어진 반면, 세균의 세포벽은 주로 펩티도글리칸(Peptidoglycan)이라는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푸른곰팡이가 분비하는 페니실린은 이 펩티도글리칸을 단단하게 결합시키는 효소의 기능을 억제하여, 세균의 세포벽 합성을 방해합니다. 그래서 페니실린에 노출된 세균의 세포벽은 단단히 결합되지 못해 군데군데 틈이 생깁니다. 돌담의 틈새를 제대로 막지 않으면, 그 사이로 비바람이 새어들어오는 것처럼, 페니실린으로 느슨해진 세포벽은 주변 물질, 특히나 물이 내부로 흘러들어오는 것을 막지 못합니다. 풍선에 물을 계속 주입하면 풍선은 결국 터져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느슨해진 세포벽 사이의 틈으로 계속 넘쳐들어오는 물을 막지 못한 세균은 점점 부풀어 오르다가 결국 터져버리고 맙니다. 이처럼 세균의 펩티도글리칸 세포벽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페니실린의 특성 때문에, 페니실린은 세균에게는 치명적이지만 곰팡이에게는 해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페니실린이 모든 세균에 효과적인 것은 아닙니다. 세균에 따라 세포벽의 구조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입니다. 덴마크의 미생물학자 한스 그람(Hans Christian Gram, 1853~1938)이 개발한 세포 염색법인 그람염색법(Gram staining)은 세균을 분류하는 중요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람염색법으로 염색했을 때, 보라색을 띠면 그람양성균, 분홍색을 띠면 그람음성균으로 구분하지요. 이 염색법에서 사용하는 염색시약인 크리스탈 바이올렛은 세균의 세포벽에 있는 펩티도글리칸과 결합하여, 처음에는 모든 세균을 보라색으로 염색합니다. 세포벽이 두꺼운 그람양성균들은 이 염료를 유지하여 짙은 보라색으로 남습니다. 반면 그람음성균은 얇은 펩티도글리칸 층과 외막을 가지고 있어 탈색 과정에서 염료가 제거되고, 이후 대조 염색시약에 의해 분홍색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람양성균은 세포벽 합성을 방해하는 페니실린에 매우 취약합니다. 그러나 그람음성균은 외막이 페니실린의 투과를 제한하여 페니실린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세포벽이 없는 세균도 있습니다. 마이코플라즈마($\textit{Mycoplasma}$)는 아예 세포벽 자체가 없어서 페니실린이 아무런 효과도 없죠. 천만다행스럽게도 페니실린은 사람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사람의 세포는 세포벽이 없어서 페니실린이 작용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페니실린은 인체에 침투한 세균만을 선택적으로 공격하는 ‘마법의 탄환(magic bullet)’이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푸른곰팡이 외에도 항생물질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미생물들을 찾아내 여기서 항생제를 얻었습니다. 미생물들끼리의 생존경쟁에서 인간이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은 셈이죠. 이제 오랜 세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세균의 공격에 드디어 대응할 수단을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이제 할 일은 이 수단이 더 오랫동안 우리에게 유용할 수 있도록 조심스레 사용하고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미생물들의 생존경쟁은 현재진행형이기에 세균 역시도 항생물질에 대항하는 특성인 '내성'을 얻기 위해 꾸준히 변화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