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을 비롯해 절대온도가 0K보다 높은 물체는 모두 전자기파 형태로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태양은 주로 가시광선에서, 사람과 동물을 포함해 실온에 있는 물체는 적외선에서 대부분의 에너지를 방출합니다. 적외선은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물체의 절대온도가 약 800K(섭씨 527도)보다 높아지면 우리 눈에 붉게 보입니다. 시뻘겋게 달궈진 쇳덩이, 마그마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물체가 열 에너지를 전자기파 형태로 방출하는 것을 ‘열복사’라고 합니다. 열복사의 특성은 물체의 온도뿐 아니라 재질, 모양, 크기 등에 의해서도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특성이 다양한 열복사의 본질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1860년, 독일의 물리학자 구스타프 키르히호프(Gustav Kirchhoff)는 열복사를 이해하기 위해 ‘흑체’라는 이상적인 물체를 고안했습니다. 흑체의 정의는 ‘입사하는 모든 파장의 빛을 완전히 흡수하는 물체’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흑체는 까맣게 보여야 할 것 같지만, 빛 에너지를 흡수하면 온도가 올라가므로 열복사를 하면서 밝아집니다. 따라서 온도가 같은 여러 물체가 빛에 노출된다면 빛을 일부 반사하거나 통과시키는 물체보다 모든 빛을 흡수하는 흑체가 에너지를 더 많이 방출합니다. 흑체는 스스로 그보다 더 밝아질 수 없는 ‘완전 복사체’입니다. ‘검은 물체’라는 이름은 단지 실온의 흑체가 있다면 우리 눈에 검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흑체가 특별한 건 흑체의 열복사, 즉 흑체복사의 특성이 흑체의 모양이나 재질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흑체의 온도에만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알아보기 위해 흑체의 이상적인 모델인 공동, 즉 속이 빈 통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공동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나 있고 그 안은 한두 개의 물체가 있을 뿐 비어 있습니다. 또, 공동은 일정한 온도 T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동 안쪽의 벽과 물체는 빛을 흡수하고 방출합니다. 반드시 모든 파장의 빛을 완전히 흡수하지는 않아도 됩니다. 구멍이 공동 크기에 비해서 매우 작기 때문에 외부에서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다시 공동 밖으로 빠져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공동은 거의 완벽한 흑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공동 안은 벽과 물체가 방출한 전자기파, 즉 빛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물체는 이 빛을 흡수하는 동시에 스스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벽면과 같은 온도를 유지합니다. 이 과정에서 빛도 공동의 온도에 해당하는 고유의 특성을 갖게 됩니다. 이런 ‘열역학적 평형 상태’는 벽면의 재질, 모양, 크기 등과 관련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빛의 특성 역시 온도 T에만 의존합니다. 이 빛의 극히 일부는 구멍을 통해 항상 밖으로 새어 나옵니다. 그 빛이 흑체가 방출하는 ‘흑체복사’에 해당합니다. 즉, 흑체복사는 흑체의 모양이나 재질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흑체의 온도에만 의존합니다. 흑체 개념의 도입으로, 복잡해 보였던 열복사의 본질을 파악하는 문제는 이제 온도 T의 흑체가 각 파장에서 얼마나 밝은지를 밝히는 문제로 훨씬 단순해졌습니다. 물리적으로는 흑체복사의 세기를 나타내는 함수 B를 구하는 문제에 해당합니다. 키르히호프는 “개개의 물체의 특성에 의존하지 않는 기존의 모든 함수가 그렇듯이 이 함수의 형태도 단순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러나 키르히호프가 제안한 흑체를 실험실에서 실제로 구현하고 복사 세기를 측정해 정확한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얻는 데는 거의 40년이 걸렸습니다. 초기에는 금속판을 검게 코팅하거나 표면을 거칠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흑체를 구현하려고 시도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습니다.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하는 물체를 만들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던 1895년, 빌헬름 빈(Wilhelm Wien)과 오토 루머(Otto Lummer)가 작은 구멍이 난 공동을 사용해 흑체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키르히호프가 그의 1860년의 논문에서 제시한 흑체복사의 핵심을 학자들이 뒤늦게야 깨달은 것이지요. 이후 여러 실험을 통해 특정 파장에서 최대값을 갖는 흑체복사 스펙트럼의 온전한 모습을 얻어냈습니다. 그리고 1900년 막스 플랑크(Max Planck)는 흑체복사 스펙트럼을 기술하는 함수 B의 올바른 형태를 얻었습니다. 플랑크는 복사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불연속적으로 방출된다는 획기적인 가설을 통해 이 함수를 도출했습니다. 이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빛이 광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비로소 흑체복사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함수 B는 오늘날 플랑크 함수라고 부릅니다. 고체, 고밀도의 액체 및 기체가 방출하는 열복사는 흑체복사와 유사합니다. 태양을 비롯한 별의 온도를 색을 이용해 추정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태양은 앞에서 이야기한 공동과 어떤 관련이 있기에 흑체복사와 비슷한 복사를 방출할까요? 태양도 매우 큰 공동과 같습니다. 그 안은 물질과 광자로 가득 차 있고, 표면에서는 아주 적은 양의 광자가 방출됩니다. 즉, 광자를 조금씩 통과시키는 얇은 막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공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태양의 내부는 온도가 일정하지 않고, 중심부로 갈수록 뜨겁습니다. 흑체와 비슷하지만, 열역학적 평형상태에 있는 완벽한 흑체는 아닙니다. 따라서 태양을 비롯한 별들의 스펙트럼은 흑체복사 스펙트럼과 약간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물체는 온도, 물질의 조성, 구조 등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며, 전자기파를 방출하는 복사 메커니즘 또한 다양합니다. 키르히호프의 통찰에서 비롯된 흑체복사는 이런 모든 복사 현상을 이해하는 출발점이자 핵심 개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