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히말라야 등반 장면을 본 적이 있나요? 타지에서 온 등반가들은 숨을 헐떡이며 산 정상을 향해 힘겹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런데 이들과 달리 등산을 안내하는 원주민 셰르파(Sherpa)는 더 많은 짐을 지고도 가볍게 움직입니다. 폐에서 산소를 받아들여 세포로 운반하는 적혈구가 일반 사람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왜 셰르파는 적혈구가 더 많을까요? 셰르파는 오랜 세월동안 고산지대에 살면서 그 환경에 맞게 적응해 왔습니다. 해발 수천 미터 이상의 고산지대는 공기 밀도가 낮습니다. 따라서 공기의 20%를 차지하는 산소량도 적죠. 하지만 체내 생리 기능을 원활하게 유지하려면, 고산지대에서도 저지대와 같은 양의 산소가 필요합니다. 적혈구 하나가 운반하는 산소량이 비슷하다면, 산소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은 결국 적혈구 수를 늘리는 것입니다. 셰르파가 적혈구 수가 많은 건 산소량이 적은 고산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응한 결과입니다. 적혈구 수가 적으면 빈혈이 생깁니다. 빈혈이 심한 사람은 운동을 할 때 쉽게 힘들어하거나 뇌에 산소 공급이 잘 되지 않아 어지러움을 느낍니다. 셰르파가 저지대 출신 등반가들을 보면, 마치 빈혈 환자를 보는 것처럼 느낄겁니다. 자, 만약 더 많은 수의 적혈구가 운동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저지대 주민들은 왜 그렇게 진화하지 않았을까요? 적혈구가 많아지면 혈액의 점성도(viscosity)가 높아집니다. 점성도가 높으면 혈액을 순환시키는 펌프 작용이 제대로 안되어 심장에 무리가 생기기 쉽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지대 사람들의 적혈구 밀도는 산소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면서도 심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최적의 상태인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 고지대에서 훈련하거나 산소가 희박한 텐트에서 머무는 훈련을 종종하는데, 심장과 혈관에 대한 부담이나 부작용을 생각하면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일정한 용적의 혈액 속 적혈구가 차지하는 비율을 적혈구용적률(Hematocrit, HCT)이라 합니다. HCT가 지나치게 낮으면 빈혈 증상이 나타납니다. 반대로 HCT가 지나치게 높으면 폐 질환이 생기거나 산소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흡연으로 인해 HCT 수치가 높아질 수도 있습니다. 흡연을 하면 일산화탄소가 몸에 들어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혈액의 산소 운반 능력을 저하시킵니다. 마치 산소가 부족환 환경인 고산지대에 노출된 것과 비슷한 상황을 만드는거죠. 결국 적혈구 수는 몸 안의 세포에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됩니다. 적혈구 수가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어야 체내 세포에 산소가 충분히 전달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도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는 물질을 ‘호르몬’이라 합니다. 대기가 희박한 환경에서도 혈액의 산소량을 유지하고, 세포에 산소를 원활히 공급하려면 적혈구 수를 증가시켜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호르몬이 바로 적혈구 생성 인자(erythropoietin, EPO)입니다. 적혈구 생성 인자(EPO)는 골수의 적혈구 전구세포를 자극하여 적혈구 생산을 촉진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호르몬은 콩팥 안쪽 조직에서 분비됩니다. 왜 폐나 심장이 아니고 콩팥일까요? 콩팥이 우리 몸의 산소 상태, 즉 혈액의 산소 분압을 감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여러 기관들의 표준화된 혈류량을 비교해 보면 됩니다. 평소 콩팥으로 가는 혈류량은 놀랍게도 우리 몸의 다른 기관들보다 많습니다. 심지어 뇌나 심장보다 많죠. 콩팥은 지속적으로 체액을 여과하고 필요한 물질은 재흡수하며 노폐물을 배출하는 대사 과정이 활발하므로 혈류가 많이 필요합니다. 더 놀라운 점은, 다른 기관들은 상황에 따라 혈류량이 크게 변하지만, 콩팥은 최대 혈류량과 안정 혈류량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콩팥의 혈류량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다른 기관이 아닌 콩팥에서 산소분압을 감지하고, 이에 맞춰 EPO를 분비하여서, 우리 몸의 산소 수요를 적절히 조절합니다. 이 이야기는 ‘EPO를 만드는 세포가 낮은 산소분압을 어떻게 감지해서 호르몬 생산을 증가시킬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는 2019년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이 연구한 저산소증 유도인자(Hypoxia-Inducible Factor, HIF)라는 세포 내 신호 전달 과정을 발견한 내용과 연결됩니다. HIF는 산소 농도가 낮을 때 세포가 이를 감지하고 적응하는 방식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산소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것은 생명체의 핵심 기능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 남아있습니다. 도대체 산소는 왜 중요할까요? 산소 없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