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라는 단어를 알고 있나요? 데칼코마니는 미술에서 사용하는 장식 기법 중 하나입니다. 종이 한쪽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후에 그 종이를 접거나 포개어 문지르고 떼어내는 기법이죠. 데칼코마니를 활용하면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그림을 만들 수 있습니다. 마치 하나의 물체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말이죠. 그런데 데칼코마니는 미술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화학에도 데칼코마니가 존재합니다. 탄소 원자는 다른 원자와 최대 네 개의 단일 결합을 할 수 있습니다. 탄소 원자와 네 개의 원자들이 결합하면 입체적인 배열이 나타납니다. 이 때, 만약에 네 개의 결합이 서로 가까이 붙어있게 배치되어 있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마치 네 명의 사람이 좁은 소파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 같은 모습입니다. 생각만해도 답답한 상황이죠.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옆 사람 때문에 싸움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화학의 세계에서도 비슷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탄소 원자에 결합된 네 개의 원자들은 서로 가까이 있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서로 최대한 멀리 떨어지도록 배치되고 싶어 합니다. 3차원 공간에서 중심 탄소 원자를 기준으로 네 개의 결합이 가장 멀리 떨어지려면 결합각이 109.5°여야 합니다. 입체적으로 사면체 혹은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각 꼭짓점에 네 개의 서로 다른 원자들이 달려 있는 사면체를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이 사면체를 거울로 비춰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봅시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칼코마니 사면체 쌍은 서로 똑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답은 ‘똑같지 않다’ 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좌우대칭 관계입니다. 막상 양 손을 포개어 보면 절대 똑같지 않은 것과 같죠. 이러한 현상은 화학에서는 카이랄성(chirality)이라고 표현합니다. 방금 상상한 사면체처럼 카이랄성을 가진 화합물은 카이랄 화합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데칼코마니 쌍의 관계를 광학 이성질체, 혹은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릅니다. 카이랄 화합물은 두 구조의 화학적, 물리적 성질이 대부분 동일합니다. 그래서 카이랄 화합물은 실험적인 방법으로는 분리가 어렵습니다. 특수한 장비를 활용하는 경우는 빼고 말이죠. 재밌는 점은, 화학 실험실에선 거의 동일한 성질을 보이는 이 데칼코마니 쌍이 인간의 몸 속에선 전혀 다른 성질을 보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몸은 여러 장기의 활동에 의존합니다. 각각의 장기들은 효소와 수용체로 구성된 신호전달체계에 의해 조절되죠. 장기들은 이 신호전달체계에서 화학 물질로 이루어진 신호를 주고받으며 인체를 운영합니다. 이 과정에서 수용체와 효소는 정확한 상대를 인식해야 하는데, 여기에서 카이랄성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몸은 탄소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중요한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효소들 역시 탄소를 기반으로 한 카이랄성을 가집니다. 체내의 효소는 그 자체로 카이랄성을 갖는 복합 구조를 갖기 때문에 거울상 이성질체를 분류할 수 있습니다. 간에 존재하는 특정 효소의 경우, 외부에서 들어오는 물질들의 카이랄성을 적절하게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카이랄성을 변화시켜 잘못된 물질이 신호로 쓰이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죠. 하지만 과학자들이 이러한 반응을 예측하거나 조절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간의 효소가 수행하는 복잡한 화학 반응이기 때문이죠.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할 때는 간 효소 반응을 고려하여 카이랄성을 따져야 합니다. 의약품을 구성하는 화합물 역시 대부분 탄소 기반의 카이랄성을 갖습니다. 카이랄성 화합물은 두 개의 겹치지 않는 거울상 구조를 가지며 각각 R형과 S형으로 구분됩니다. 일반적으로 실험실에서 의약품을 합성하면 두 구조가 반반씩 섞인 혼합물이 생성됩니다. 이런 혼합물을 라세미(racemic) 혼합물, 또는 라세미체(racemate)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화학적, 물리적으로 거의 유사하므로 분리도 어렵습니다. 따라서 과거에는 라세미체를 그대로 의약품으로 활용했습니다. 문제는 두 데칼코마니 구조가 인간의 몸 속에서는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역사상 최악의 의약품 사고가 일어나게 되죠. 탈리도마이드(Thalidomide)는 1950~60년대에 판매된 구토를 방지하는 효과를 가진 의약품입니다. 이 약 역시 탄소 기반의 카이랄성을 갖는 물질이었죠. 실제로 R형 탈리도마이드는 구토 억제 효과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반대인 S형 탈리도마이드가 혈관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을 막는 부작용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입덧을 줄이기 위해 약을 먹은 임산부들이 출산한 신생아들에게 치명적인 기형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로 인류는 의약품을 개발할 때에는 R형, S형, 그리고 두 구조가 섞인 라세미혼합물의 효능과 부작용에 대해 모두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모든 의약품은 R, S, 그리고 R+S에 대한 모든 정보를 가지게 됩니다. 미술에서의 데칼코마니는 자연의 대칭을 닮아 조화로우면서도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그러나 화학에서의 데칼코마니는 겉보기엔 완벽한 대칭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인간에게는 전혀 다른 이면을 드러내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뼈아픈 사건에 희생된 사람들로부터 인류는 카이랄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는 의약품뿐만 아니라 카이랄성을 이용한 다양한 연구들이 수행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지금 우리가 먹는 모든 의약품은 거울 속의 모습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분류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안심하고 약을 먹어도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