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몇 장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있나요? 신용카드가 아니더라도 교통카드나 현금카드와 같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카드는 대부분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겁니다. 플라스틱 카드는 대부분 폴리염화바이닐(Polyvinyl chloride), 줄여서 PVC라 불리는 물질로 만들어집니다. PVC는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다른 플라스틱에 비해서 단단하고 잘 마모되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에도 강한 편이죠. 그렇다면 PVC는 왜 다른 플라스틱에 비해 특별한 성질을 가질까요? 바로 이름에도 숨어있는 염소($\text{Cl}$) 때문입니다. PVC는 ‘중합’이라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고분자 물질입니다. 중합이란 단량체(monomer)라 불리는 간단한 분자들이 서로 결합하여 분자량이 큰 중합체(polymer)를 형성하는 과정입니다.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중합체는 폴리에틸렌입니다. 마트에서 쓰이는 비닐봉지(plastic bag)가 대표적인 폴리에틸렌 제품이죠. 폴리에틸렌은 에틸렌($\text{C}_2\text{H}_4$)을 중합해 얻습니다. 에틸렌 분자는 두 개의 탄소원자가 이중결합으로 연결되어 있고 각 탄소원자마다 수소원자가 두 개씩 단일결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중합이 일어나면 에틸렌 분자의 탄소 사이의 이중결합이 끊어지면서 또 다른 에틸렌 단량체의 탄소와 단일결합을 형성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 개의 에틸렌 단량체가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분자량이 매우 큰 중합체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에틸렌에서 수소원자 하나가 떨어진 것($-\text{CH}=\text{CH}_2$)을 바이닐기(vinyl group)라 하는데요. 바이닐기를 포함한 단량체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습니다. 바이닐기를 포함하는 대표적인 단량체로는 에틸렌, 프로필렌, 스타이렌, 염화바이닐 등이 있습니다. 각각 중합 과정을 통해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타이렌(PS), PVC 등의 바이닐계 중합체가 만들어집니다. 중합체는 단량체가 길게 이어진 사슬들을 여러 개 갖고 있는데요. 바로 이 사슬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의 차이에 따라 중합체의 성질이 결정됩니다. 폴리에틸렌, 폴리프로필렌, 폴리스타이렌은 탄소와 수소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사슬 간의 인력이 비교적 작습니다. 따라서 열을 가하면 사슬 간의 결합이 쉽게 끊어집니다. 그러면 중합체는 말랑말랑해집니다. 특히 폴리에틸렌은 당기면 쉽게 늘어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닐봉지로 사용됩니다. 폴리프로필렌은 폴리에틸렌보다 사슬 간의 인력이 큽니다. 그래서 비교적 단단한 성질을 가져 액체를 담는 용기로 많이 사용됩니다. 폴리스타이렌은 폴리프로필렌보다 더 단단하지만 쉽게 깨지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스티로폼(styrofoam)에 쓰이는 물질입니다. 이처럼 중합체는 그것을 이루는 단량체의 종류에 따라 사슬 사이의 인력의 차이가 발생하게 되고, 이에 따라 성질의 차이가 나타나게 됩니다. PVC는 앞서 언급된 바이닐계 중합체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PVC를 형성하는 단량체인 염화바이닐 분자는 에틸렌 분자 구조에서 수소 한 개가 염소 원자로 치환된 물질입니다. 염소 원자는 전자를 끌어당기는 성질이 강합니다. 그래서 탄소와 염소 사이의 결합은 극성 결합이 됩니다. 이로 인해 PVC는 다른 바이닐계 중합체에 비해 사슬 사이에 작용하는 힘이 큽니다. 따라서 PVC는 염소의 존재 덕분에 매우 단단한 성질을 갖고 있죠. PVC는 아세틸렌과 염산만 있으면 쉽게 만들 수 있어 가장 먼저 개발된 합성수지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단단해서 가공하거나 활용하기가 어려웠죠. 이를 극복하고자 가소제(plasticizer)라는 성분을 첨가합니다. 가소제는 고분자 사슬 사이에 끼어들어서 사슬끼리 미끄러지게 만들어 PVC를 부드러워지게 만듭니다. 따라서 다양한 모양으로 성형할 수 있게 변합니다. 여기에 첨가되는 가소제의 양을 조절하여 성질을 다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비교적 부드러운 성질인 연질PVC와 단단한 성질인 경질PVC가 있죠. 연질PVC는 장판지나 필름에 많이 쓰이고, 경질PVC는 플라스틱 파이프나 창틀을 만드는 데 쓰입니다. 가소제가 첨가된 PVC는 가격이 저렴하고 내구성과 내약품성 등 화학적 안정성이 매우 뛰어난 중합체입니다. 그래서 플라스틱 카드나 레코드판 등을 만드는 소재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여러분은 플라스틱 카드를 버려본 적이 있나요? 플라스틱 카드는 재활용이 되지 않습니다. PVC에 가소제 같은 여러 가지 성분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기 때문이죠. PVC는 곁사슬의 염소 때문에 불에 쉽게 타지 않지만 고온에서 불태우면 맹독성 가스를 발생합니다. 따라서 PVC를 소각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습니다. PVC는 정말 저렴하고 유용하지만 환경오염을 크게 일으키는 물질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PVC를 대체하는 친환경 물질 개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