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 1916~2004)은 ‘센트럴 도그마(central dogma)’라는 생명현상의 중심원리를 제안했습니다. 이 원리의 요점은 생명체의 유전정보가 DNA, RNA, 단백질 순서로만 흐른다는 것이죠. 즉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것은 DNA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1970년, 데이비드 볼티모어(David Baltimore, 1938~) 박사와 하워드 테민(Howard Temin, 1934~1994) 박사는 각각 독립적으로 과학계에 흥미로움을 더해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바로, 센트럴 도그마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었죠. 바이러스 중 일부는 RNA를 유전물질로 가지며, 이 RNA를 통해 DNA를 합성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바이러스를 분류하는 것은 국제바이러스분류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Taxonomy of Viruses, ICTV)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위원회가 분류한 바이러스 분류체계를 ICTV 분류체계라고 하죠. 그런데 이 분류체계는 바이러스를 ‘종-속-과-목’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복잡하게 느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이에 볼티모어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바이러스가 보유한 유전물질에 따라 바이러스를 구분하자는 것이었죠. 그는 바이러스의 유전물질, 그에 따른 유전자 발현방법과 복제방법을 고려해 하나의 분류체계를 제안했습니다. 이 분류체계는 바이러스를 총 일곱 개의 그룹으로 분류했기 때문에 ICTV보다 훨씬 간단했는데요. 바이러스가 속하는 그룹을 알면 그 특성과 증식방법을 추론해 볼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었습니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DNA 바이러스, RNA 바이러스라고 분류하는 것이 바로 이 볼티모어 분류체계를 따른 것이죠. 그 분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룹 1: dsDNA 바이러스(이중가닥 DNA 바이러스) *그룹 2: ssDNA 바이러스(단일가닥 DNA 바이러스) *그룹 3: dsRNA 바이러스(이중가닥 RNA 바이러스) *그룹 4: (+)ssRNA 바이러스(양성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 *그룹 5: (-)ssRNA 바이러스(음성 단일가닥 RNA 바이러스) *그룹 6: ssRNA-RT 바이러스(단일가닥 RNA-RT 바이러스) *그룹 7: dsDNA-RT 바이러스(이중가닥 DNA-RT 바이러스) 일반적으로 DNA 바이러스와 RNA 바이러스의 특성은 많이 다릅니다. 감염 과정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지죠. 먼저, DNA 바이러스는 진핵생물의 경우 숙주세포에 침투하면 자신의 유전물질을 숙주세포의 핵까지 이동시킵니다. 숙주세포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서이죠. 많은 DNA 바이러스는 숙주세포의 DNA 중합효소를 사용해 자신의 유전물질을 복제합니다. mRNA를 생성할 때에도 숙주세포의 전사인자와 RNA 중합효소를 이용합니다. RNA 바이러스는 어떨까요? RNA 바이러스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유전물질을 세포질까지만 이동시킵니다. 숙주세포 감염 과정에서 DNA 바이러스보다 빠르고 효율적이죠. RNA 바이러스는 유전물질 복제를 위한 RNA 의존적 RNA 중합효소(RdRp)를 자체적으로 생산합니다. 많은 RNA 바이러스는 자신의 RNA를 직접 mRNA로 활용하여 단백질을 합성하죠. 즉 DNA 바이러스와 다르게, 숙주세포의 전사 인자 및 RNA 중합효소 등의 자원을 두고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대량 복제에 유리한 장점으로 작용하죠. 또한, RNA 바이러스는 DNA 바이러스에 비해 변종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는 RNA 중합효소의 복제 정확도가 낮기 때문이죠. 감기 바이러스나 독감 바이러스 등에서 변종이 많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이들이 RNA 바이러스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은 태초에 생명체의 유전정보를 담았던 것은 DNA가 아닌 RNA였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는 1986년 월터 길버트(Walter Gilbert, 1932~)가 처음 제안한 ‘RNA 세계’ 가설에 잘 나와 있죠. 이 가설에 따르면, 최초의 생명체는 자신의 염기서열을 스스로 복제할 수 있는 RNA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RNA는 유전정보를 저장할 뿐만 아니라, 염기서열에 따라 특정 입체 구조를 형성해 라이보자임(ribozyme, RNA로 이루어진 효소)과 같은 효소적인 기능도 수행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죠. 또한 RNA는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가설과도 연결됩니다. 지금은 일부 바이러스만 RNA를 유전물질로 사용하지만, 최초 생명체 역시 RNA를 유전물질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후 생명체는 유전정보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점차 RNA보다 안정한 DNA로 유전물질을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죠. 이 관점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생명의 태고적 신비로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