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12 자루는 묶어서 한 다스라고 하고, 계란 30 개는 묶어서 한 판이라고 합니다. 어떤 물건이 여러 개 있을 때 묶음 단위를 정하면 매우 편리하죠. 그렇다면 물질의 기본 입자인 원자나 분자를 묶어서 셀 때 쓰는 단위는 무엇일까요? 바로 몰(mole) 입니다. 우리는 $6.02 \times 10^{23}$ 개의 입자를 묶어 1 몰이라고 합니다. 이 복잡한 숫자는 아보가드로 수라고 합니다. 그런데 왜 1 몰은 하필이면 6.02라는 숫자에 0이 23개 붙은 숫자로 결정된 것일까요? 훨씬 간단한 숫자로 정의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지금부터 그 사연을 파헤쳐 봅시다. 연필은 하나씩 눈으로 보고 셀 수 있습니다. 따라서 12 개를 묶어 한 다스로 정하면 사고 팔 때 편리하죠. 계란 역시 눈으로 셀 수 있으니 30개를 한 판으로 묶어서 팝니다. 그런데 원자나 분자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개를 한 단위로 묶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탄소 가루 한 줌 안에 몇 개의 탄소 입자가 있는지는 정확히 알 방법이 없었죠. 사람들은 원자, 분자 같은 입자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을 때도 원소들의 상대적인 질량비는 알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가장 가벼운 수소의 질량을 1 로 정의하고, 다른 원소들의 상대적인 질량을 표현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탄소는 12, 산소는 16 입니다. 과학자들은 탄소 12 g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수를 1 몰로 정의하기로 했습니다. 자, 이제 아보가드로 수의 기원은 ‘탄소 12 g’에서 출발합니다. 만약 과학자들이 수소를 1 몰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1 g, 또는 산소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16 g에 들어 있는 입자의 수로 정의했을 겁니다. 하지만 입자의 수는 동일할 것이기 때문에 아보가드로 수는 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질량의 단위로 그램을 기준으로 한 것은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만약 질량의 단위를 바꿔 1 몰을 탄소 12 파운드 속 입자 수로 정의했다면 탄소의 양이 달라지고, 아보가드로 수도 달라졌겠죠. 이제 아보가드로 수의 기원은 질량의 단위인 ‘그램’의 기원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램의 기준은 2019년에 새롭게 정의되었습니다. 하지만 최초에는 ‘얼음이 녹는 온도에서 $1 cm^3$의 정육면체를 가득 채울 수 있는 물의 절대적인 무게’를 기준으로 정해졌습니다. 물을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 cm인 정육면체에 채우면 1 g이 되는 것이죠. 물은 주변에서 매우 찾기 쉬운 순수한 물질이기 때문에 질량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아보가드로 수의 기원은 ‘그램’에서 부피를 표현하기 위한 길이, 즉 ‘센티미터’의 기원으로 옮겨 갑니다. 길이의 단위인 센티미터는 어떻게 정의된 것일까요? 질량의 단위인 그램, 길이의 단위인 미터 같은 단위들은 대부분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정의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 정부는 측정 단위 중에서도 가장 기본이 되는 길이의 표준을 고민했습니다. 이전에는 지역마다 다양한 도량형 단위가 제각각 쓰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물건을 서로 사고 팔 때 단위가 맞지 않아 불편했죠. 마침내 지구의 크기를 기준으로 미터법을 제정하게 되었는데요. 미터법에선 ‘파리를 지나는 경도를 기준으로 북극부터 적도까지의 자오선의 일천만분의 일에 해당하는 거리’를 1 m로 정의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루이 16세는 대혁명에 의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터법이 전세계로 퍼져 공식 도량형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가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었습니다. 따라서 길이의 기준을 정한 것이 루이 16세의 업적 아닌 업적으로 인정되기도 하죠. 이제 아보가드로 수의 기원이 명백하게 밝혀졌습니다. 지구 둘레 전체 길이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거리를 10000 km로 정했습니다. 여기서 1 m의 길이가 나왔고, 이것의 백분의 일이 1 cm가 된 것이죠. 이제 $1 cm^3$ 부피에 물을 채우면 1 g이 됩니다. 이렇게 정해진 그램 단위로 12 g에 해당하는 탄소에 들어 있는 원자의 수가 아보가드로 수가 된 것입니다. 훗날 과학자들이 정밀한 방법으로 실제 아보가드로 수를 측정한 결과, 구체적인 숫자는 $6.02 \times 10^{23}$ 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19년부터는 보다 정확하게 $6.02214076 \times 10^{23}$ 개의 입자로 구성된 물질의 양을 아보가드로 수로 정의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만약 질량의 단위를 물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더 무거운 금을 기준으로 삼았거나 길이의 기준을 지구가 아닌 다른 물체를 기준으로 삼았다면 아보가드로 수의 크기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따라서 아보가드로 수는 숫자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보가드로 수의 진정한 의미는 보이지 않는 원자와 분자를 묶어서 세는 기준이라는 것이죠. 아보가드로 수의 기원에서 볼 수 있듯이, 과학에서 사용하는 여러 상수의 실제 숫자는 인간이 선택한 기준의 결과물입니다. 그 기준이 바뀐다면 언제든지 변경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과학 상수의 숫자 자체를 외우는 것보다는 그 상수가 가지는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