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수상 기준을 아시나요? 노벨 물리학상은 그 해의 ‘가장 중요한 발견 또는 발명’, 노벨 화학상은 그 해의 가장 중요한 발견 또는 개선’을 이룩한 과학자에게 수여하죠. 우리가 지금부터 살펴볼 노벨 생리의학상은 ‘그 해의 가장 중요한 발견’을 한 과학자에게 수여합니다. 물론 ‘인류의 안녕에 기여한다’는 공통 조건도 충족해야 합니다.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빅터 앰브로스(Victor R. Ambros, 1953-)와 게리 러브컨(Gary Bruce Ruvkun, 1952-)은 어떤 발견을 한 걸까요? ”내가 남들보다 더 멀리 봤다면, 그것은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선 덕분이다.” 이 문장은 뉴턴이 인용하면서 유명해졌죠. 새로운 지식은 과거에 축적된 지식의 토대에서 탄생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노벨 생리의학상도 예외는 아닙니다. 과거의 연구가 있었기에 가능한 성취였습니다. 그 시작은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생물학자 시드니 브레너(Sydney Brenner, 1927-2019)의 예쁜꼬마선충($\textit{C. elegans}$) 연구입니다. 그는 세포의 발생과 신경계를 이해하기 위한 단순한 동물 모델을 강조하며 예쁜꼬마선충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는 무려 40년 넘게 계속되었죠. 그 결과 2002년에 두 명의 제자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예쁜꼬마선충의 세포 계통을 완벽하게 밝혀낸 공로였죠. 그들은 예쁜꼬마선충의 세포 계통에서 죽기 위해 태어나는 세포를 발견합니다. ‘프로그램되어 있는 세포사멸’이라는 새로운 생명현상이었습니다. 이 발견은 이후 수많은 연구에 시발점을 제공합니다. 이 성취를 이어받은 대표적인 연구 중 하나가 세포 계통(lineage)의 돌연변이 연구입니다. 이 연구에서 세포 계통, 즉 lineage가 잘못되었다는 의미로 돌연변이 유전자 이름에 $\textit{lin-}$ 이라는 접두어를 붙였죠. 1981년, 로버트 호비츠(Howard Robert Horvitz, 1947-), 존 설스턴(Sir John Sulston, 1942-2018), 마틴 챌피(Martin Lee Chalfie, 1947-) 박사들은, 계통이 비정상적으로 반복되는 돌연변이에 대한 공동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 돌연변이 중 하나가 $\textit{lin-4}$ 유전자였죠. 1980년대 후반, 빅터와 게리는 MIT의 로버트 호비츠 연구실에 합류합니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탐구한 돌연변이가 있는데요. 바로 특정 발생 단계가 반복되거나 생략되면서 ‘발생 지연’ 또는 ‘조숙’이 표현형으로 나타나는 ‘이종시성(heterochronic)’ 돌연변이입니다. $\textit{lin-4}$ 유전자의 기능이 상실된 돌연변이는 발생이 지연되는 형질을 나타냅니다. $\textit{lin-14}$ 유전자의 기능이 상실된 돌연변이는 조숙한 형질을, 반대로 $\textit{lin-14}$ 유전자의 기능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면 발생이 지연되는 형질을 보이는 흥미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즉 $\textit{lin-4}$ 유전자 발현의 억제는 예쁜꼬마선충이 성체가 되는 속도를 지연시켰고, $\textit{lin-14}$ 유전자의 발현 억제는 성체가 되는 발달 속도를 높였죠. 이것은 “발생의 시간 역시 유전적으로 조절된다”는 중요한 통찰입니다! 이후 두 과학자는 연구실을 따로 독립하면서 $\textit{lin-4}$ 유전자와 $\textit{lin-14}$ 유전자를 나눠 연구하게 됩니다. 사실 초기 연구는 운이 나빴습니다. 기껏 $\textit{lin-14}$ 유전자를 발견했지만, 그 서열이 매우 특이했죠. 단백질 정보를 제외하면 다른 생물과 유사점이 거의 없는 생소한 정보투성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textit{lin-4}$ 유전자는 단백질 정보마저 없었습니다. 이후 $\textit{lin-4}$ 유전자는 매우 작은 RNA 서열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유로, ‘마이크로RNA’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단순히 작은 RNA라면 small RNA라고 했을 텐데, ‘아주 작은’ 것을 강조한 거죠. 주변에서는 운이 나쁘다고 한마디씩 거들었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사람의 것과 비슷하지도 않은, 너무 특이한 유전자를 발견했으니까요. $\textit{lin-4}$ 유전자와 $\textit{lin-14}$ 유전자의 표현형은 반대인데, 둘 다 돌연변이를 일으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결과는 $\textit{lin-14}$ 유전자의 단독 변이와 똑같은 표현형을 보였습니다. 즉, $\textit{lin-4}$ 유전자가 $\textit{lin-14}$ 유전자의 작용을 억제한다는 것을 시사했죠. 빅터와 게리는 이 상호 억제 작용을 확인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textit{lin-4}$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RNA가 $\textit{lin-14}$ 유전자의 mRNA 끝부분에 있는 상보적 서열과 결합해 이중 가닥을 형성한다는 점입니다. 즉, $\textit{lin-4}$ 유전자의 RNA가, $\textit{lin-14}$ 유전자의 mRNA에서 단백질로 번역되는 것을 막음으로써 그 작용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새로운 조절자는 1993년 12월, 학술지 <셀(Cell)>에 발표됩니다. 유전자가 단백질이 아닌 RNA를 통해 조절될 수 있다는 중요한 발견이였죠! 한 가지 의문이 남았습니다. $\textit{lin-14}$ 유전자를 처음 발견했던 1993년 당시, 비슷한 유전자를 다른 생물에서 찾지 못해 실망했었죠. $\textit{lin-4}$ 유전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쁜꼬마선충에만 발생하는 특정 현상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팽배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이 의문은 보란 듯이 해소됩니다. 게리 연구실에서 $\textit{let-7}$ 이라는 마이크로RNA 유전자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 유전자는 진화적으로 잘 보존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이후 많은 마이크로RNA가 다양한 생물에서 발견되었고 사람의 질병과 관련된 유전자로도 확인되었습니다. 빅터와 게리의 성취는 학술적 의미를 넘어섭니다. 마이크로RNA의 발견은, 암, 심혈관 질환, 파킨슨병 등의 신경질환과 각종 난치병에서 유전적 조절 메커니즘을 밝히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앞으로도 차세대 치료제 분야에서 계속 주목받으며 인류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제 마이크로RNA는 ‘아주 중요한 발견’에다 ‘인류의 안녕에 기여’라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갖추어졌습니다. 그야말로 노벨 생리의학상 감입니다! 물론 여전히 유전체에는 우리가 모르는 서열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새로운 유전자 서열이 발견될 가능성도 열려 있습니다. 두 교수의 발견은 차세대 과학자들의 연구를 자극할 것입니다. 자 이제,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의 수상자, 빅터와 게리가 올라탄 거인의 윤곽이 보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