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교육과정의 상징은 해부학 실습입니다. 한 번 상상해 볼까요? 흉곽을 구성하는 가슴뼈나 갈비뼈 안쪽에는 커다란 폐가 양쪽에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심장이 약간 왼쪽으로 치우쳐 위치해 있습니다. 가슴 아래 복부를 연다면, 그 안에는 구불구불한 소화기관이 있을 것입니다. 소장, 대장 등의 기관(organ)들이 가득 차 있죠. 복부 왼쪽에는 위가 있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간도 보이는군요. 하지만 이들만으로 호흡계와 소화계를 모두 설명할 수 있을까요? 폐가 바로 호흡계의 전부일까요? 창자가 소화계의 대부분일까요? 호흡계에는 폐(lung)와 함께 다양한 구조들이 있습니다. 폐의 기능적 목표는 공기를 내뱉는 호식과 들이 마시는 흡식입니다. 이 과정을 돕기 위해 코, 후두(larynx), 기관(trachea), 기관지(bronchus, bronchi)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만으로는 호식과 흡식이 불가능합니다. 폐 조직 자체에는 자발적인 운동 기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 번 숨 쉴 때마다 어떻게 0.5 L 정도의 공기가 드나들 수 있을까요? 숨을 쉴 때는 가슴뼈와 함께 늑간근 같은 근육들이 주기적으로 수축하고 이완합니다. 그때마다 말랑말랑한 폐의 바깥 표면이 흉곽 안쪽에 붙어 들어올리듯 확장됩니다. 마치 풍선을 입구에서 직접 부는 게 아니라, 풍선 바깥면을 잡아 팽창시키면 입구로 공기가 들어오는 방식인 것이죠. 늑간근뿐 아니라 가슴과 복부를 가르는 횡격막 근육도 수축하며, 폐의 아래쪽을 밑으로 당겨 팽창시킵니다. 이것도 호식과정에 중요하지요. 평상시 작은 숨에서는 오히려 횡격막의 상하 운동이 더 큰 역할을 합니다. 즉 흉곽과 횡격막도 호흡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늑간근과 횡격막의 수축, 이완 운동도 그들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뇌와 척수에서 내려오는 신호가 운동신경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규칙적인 숨을 쉬는 것은 운동신경과 자율신경계가 주기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이 운동신경의 주기적 작동을 조절하는 여러 무리의 신경세포들은 회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대뇌 바로 아래쪽 뇌줄기인 뇌간(brainstem)에 모여 호흡중추를 이루고 있죠. 즉 우리 몸의 산소와 이산화 탄소 농도를 감지하거나, 격렬한 운동에 대비해 호흡을 조절하는 이 호흡중추 신경들도 호흡계라 할 수 있습니다. 소화계는 어떨까요? 음식이 들어와 소화과정을 거친 후 최종 배출되는 경로는 입에서 식도, 위, 십이지장, 소장, 대장, 항문 순입니다. 그런데 실제 소화과정이 일어나려면 음식을 분자 수준까지 잘게 나누어야 합니다. 분해와 흡수가 필수적이죠. 분해를 위해서는 효소(enzyme)가 소화액 형태로 분비되어야 합니다. 침샘에서 침, 위에서 위액, 이자(pancreas)에서 이자액이 분비되죠. 또 쓸개즙(bile juice)도 있습니다. 간에서 만들어지고 쓸개주머니(담낭)에 저장되었다가 분비되죠. 담즙은 효소는 아니지만, 지방 성분을 잘게 녹이는 일종의 비누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담즙이 없으면 지방 흡수가 어렵습니다. 이 소화계의 기관과 조직들이 분비하는 하루의 소화액 양은 어마어마합니다. 침 1.5 L, 위액 1.5 L, 담즙 1 L, 췌장액 1 L, 소장 분비액 2 L, 그리고 약간의 대장 분비액이 0.2 L이죠. 사실 소화과정이라면 위장관들의 꿈틀운동이 떠오릅니다. 위장관벽을 구성하는 근육층은 골격근이나 심장근과 다른 형태의 근육세포들입니다. 이들의 수축을 조절하는 것은 소위 자율신경계 신경세포들의 그물망(plexus)이죠. 호흡 중추와 비슷하게 뇌간을 통해 오가는 입출력 신호들이 자율신경 신호를 만듭니다. 하지만 위장관벽에는 별도 독립적인 신경세포들의 그물망이 촘촘히 배열돼 있어, 이들을 '장의 뇌'(gut-brain)라 부릅니다. 심지어 장의 신경세포 숫자는 척수의 신경숫자와 비슷하거나 더 많다고 하죠. 어떤 본능적 감정을 느끼고 이를 뱃속의 신체증상으로 느끼는 것을 ‘gut feeling’이라 부르는데,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런 복잡한 자율신경계와 gut-brain도 소화계에 포함시켜야 할 것입니다. 호흡계와 소화계 같은 기관계(organ system)는 단순한 해부학적 구조나 외관을 넘어, 다층적이고 복잡하게 연결된 네트워크입니다. 그리고 기관계 또한 각각 독립적인 기능을 수행하면서도 전체 생체 시스템의 조화를 위해 상호작용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눈에 보이는 구조물로만 판단하기보다는 이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기능하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는 인체뿐 아니라 모든 복잡한 시스템에도 적용되는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