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록색맹은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를 말합니다. 적록색맹은 유전자의 변이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적록색맹은 여자보다 남자에게 훨씬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 이유는 남자의 성염색체 구성은 XY이고, 여자의 성염색체 구성은 XX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 염색체 구성의 차이가 적록색맹이 일어나는 빈도와 관련이 있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해하려면 먼저 염색체와 유전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몸은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각 세포에는 DNA의 형태로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가 존재합니다. 염색체는 우리 몸의 모든 설계도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기록한 책 혹은 컴퓨터 파일과 같습니다. 각 염색체에는 많은 유전자가 존재하죠. 사람의 체세포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있는데, 이 중 2개는 성별을 결정하는 성염색체입니다. 성염색체는 X 염색체와 Y 염색체로 구분됩니다. 성염색체는 성을 결정하는데 관여하는 유전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질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포함합니다. 특히 적록색맹에 관련된 유전자들은 성염색체 중 X 염색체에 위치합니다. X 염색체에 존재하는 빨간색과 초록색을 감지하는 광수용체 유전자에 한꺼번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적록색맹이 된답니다. 돌연변이가 한꺼번에 두 유전자에 일어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두 유전자가 한꺼번에 변했을까요? 적록색맹은 바로 불균등 교차(unequal crossing over)를 통해 생긴 돌연변이이기 때문입니다. 불균등 교차는 유전자 재조합 과정에서 유사한 DNA 서열이 잘못 연결되어, 유전자의 일부가 중복되거나 누락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빨간색과 초록색 광수용체 유전자는 염색체 상의 위치가 매우 가깝고 유전자 서열이 유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균등 교차가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합니다. 그 결과 불균등 교차는 빨간색과 초록색 광수용체 유전자 모두의 기능에 이상을 초래해 적록색맹을 일으키는 돌연변이를 만들어냅니다. 남자는 하나의 X 염색체와 하나의 Y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X 염색체에 적록색맹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 반드시 적록색맹이 나타납니다. 반면, 여자는 두 개의 X 염색체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의 X 염색체에 변이가 있더라도 다른 하나의 정상 X 염색체가 그 기능을 대신할 수 있죠. 왜냐하면 적록색맹 유전변이는 열성이기 때문입니다. 적록색맹 여자는, 적록색맹인 아버지와 적록색맹 유전자를 가진 보인자(carrier)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들 중 50%의 확률로 태어납니다. 이는 매우 희박한 확률입니다. 유전학에서 보인자는 특정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나 표현형이 나타나지는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유전자가 특정 질병이나 조건을 발생시키지는 않지만 후손에게 전달될 수 있는 상태를 말하죠. 따라서, 어머니가 적록색맹의 돌연변이를 가진 보인자일 때, 어머니는 적록색맹이 발현되지 않지만 돌연변이 유전자는 자녀에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남자는 어머니가 보인자인 경우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50%의 확률로 적록색맹이 됩니다. 보인자인 어머니에게서 아들로 주로 유전되는 이 패턴은 X 염색체 연관 열성 유전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아들은 X 염색체를 어머니에게서만 물려받기 때문이죠. 이와 관련해 질병이 한 세대를 건너 뛰고 전달되는 유전 패턴인 격세유전의 패턴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령 외증조할머니가 적록색맹이 아니지만 보인자인 경우, 그 아들인 외할아버지는 50%의 확률로 적록색맹이 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세대에서 어머니가 보인자이면, 아들도 50%의 확률로 적록색맹이 나타나는 것이죠. 자, 이제 적록색맹이 왜 남자에게 더 많이 나타나는지 그 이유를 아시겠죠? 남자는 X 염색체가 하나뿐인 반수체(hemizygote)이기 때문에 그 하나에 돌연변이가 존재하면 열성이건 우성이건 상관없이 바로 영향을 받죠. 하지만 여자는 두 개 중 하나가 정상이고 돌연변이가 열성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X 염색체에 존재하는 열성 형질은 적록색맹처럼 남성에게서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