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 기억하시나요?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기본 브릭을 이리저리 연결하면 기차나 건물, 로봇 등 여러 가지 사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레고의 매력은 단순한 브릭의 조합이 만들어 내는 다양성에 있습니다. 기본 단위체의 조합으로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이 원리는 우리의 인체 내에서도 발견됩니다. 바로 탄수화물, 단백질, 핵산과 같이 생명체를 구성하는 거대생체분자(macromolecules)의 합성과정이죠. 거대생체분자는 다양한 생화학 과정을 수행해 생명체가 생존하고 정상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데요. 모두 각각의 ‘기본 단위체’들을 갖고 있습니다. 브릭의 조합처럼, 이 기본단위체들을 차례로 연결하는 화학반응을 통해 거대생체분자가 만들어집니다. 우유에 있는 유당, 단맛을 내는 설탕, 곡물에 있는 녹말 등은 기본단위체가 단당류로 이루어진 탄수화물입니다. 단당이 두 개 혹은 그 이상 연결돼 있죠. 단당류는 포도당, 과당, 갈락토스와 같이 종류가 얼마 없습니다. 기본 브릭의 종류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다양한 종류의 다당류를 만들기 어려운 것이죠. 녹말, 셀룰로스, 글리코겐과 같이 가장 잘 알려진 다당류가 몇 종류 되지 않는 이유입니다. 탄수화물은 주로 에너지원으로서 기능하므로, 다양한 종류를 만들어낼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단백질은 다릅니다. 단백질은 생명 활동에 요구되는 다양하고 복잡한 생화학적 반응을 직접 담당합니다. 탄수화물과 달리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가 필요합니다. 사람의 경우, 생체 활동에 사용되는 단백질 종류는 수만 가지에 이릅니다. 인체는 어떻게 이런 다양한 종류의 단백질을 만들 수 있을까요? 단백질의 기본 단위체인 아미노산의 구조를 보면 중심에 탄소 원자가 위치합니다. 탄소 원자는 최외각에 4개의 전자를 갖고 있는데 이에 따라 최대 4개의 결합이 가능하죠. 좌, 우, 상, 하 방향으로 4개의 연결선을 갖고 있는 브릭을 상상하면 됩니다. 아미노산의 중심 탄소에는 각각 아미노기 ($\text{N}\text{H}_2$), 카복실기($\text{-COOH}$), 수소 원자($\text{H}$)가 연결되어 있으며, 나머지 하나에 각 아미노산을 구별하는 곁사슬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아미노산이 결합할 때 첫 번째 아미노산의 카복실기와, 두 번째 아미노산의 아미노기가 반응합니다. 이때 물 분자가 빠져나오며 남은 부분이 화학적으로 결합합니다. 이를 펩타이드 결합(peptide bond)이라고 합니다. 첫 번째 브릭의 오른쪽 연결선이 두 번째 브릭의 왼쪽 연결선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두 번째 브릭의 오른쪽 연결선에 세 번째 브릭의 왼쪽 연결선이 결합합니다. 이런 화학반응이 반복되면 기다란 형태의 아미노산 가닥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폴리펩타이드(polypeptide)라고 합니다. 이제,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폴리펩타이드를 만든다고 가정해 봅시다. 만약 기본 브릭, 곧 사용할 수 있는 아미노산의 종류가 4개라면, 이것을 이용해 만들 수 있는 조합의 수는 $\text{4}^{100}$입니다. 계산하면 다음과 같죠. 하지만,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아미노산은 20가지입니다. 그렇다면 만들어 낼 수 있는 폴리펩타이드 조합의 수, 계산이 되나요? 가능한 조합의 수는 $\text{20}^{100}$ = $ \text{1.26}\text{×}\text{10}^{130}$ 입니다. 참고로 아보가드로 수는 단지 $ \text{6.022}\text{×}\text{10}^{23}$ 이죠. 폴리펩타이드가 길어질수록 이론적으로 가능한 조합의 수는 더욱 커지며, 이는 지수적으로 증가합니다. 지금은 폴리펩타이드의 크기를 100으로 전제했지만, 실제 우리가 만들어내는 단백질은 보통 이것보다 훨씬 큽니다. 근육세포 내에서 작동하는 티틴(Titin)이라는 단백질은 3만 개가 넘는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다란 폴리펩타이드는 합성된 후 에너지적으로 안정한 구조로 접힙니다. 이 접힘은 아미노산의 곁사슬 사이의 수소 결합 같은 상호작용에 의해 조절되며, 단백질의 2차 및 3차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죠. 펩타이드 결합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화학반응인 반면, 접힘에 관여하는 수소결합에는 추가적인 에너지가 사용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salt), pH 등 주변 환경 조건에 따라 결합이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단백질 접힘은 가역적인 과정이 됩니다. 단백질의 구조, 즉 접힘은 형태를 결정하며, 이는 곧 단백질의 기능을 좌우합니다. 하지만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 정보를 알고 있더라도, 안정적인 구조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X선 결정학(X-ray crystallography)과 같은 전통적인 실험 기법을 이용해 구조를 풀기 위한 연구를 진행합니다. 최근에는 알파폴드(AlphaFold)나 로제타폴드(RoseTTAFold)와 같은 AI 프로그램들이 단백질 접힘(folding) 예측에서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단백질의 비밀을 완벽히 풀 수 있는 날도 조만간 오겠죠?